[매니저 프로파일]1세대 가치투자 적통 한투운용 김기백 주식운용팀장중소형주 유니버스 700개…보텀업으로 매크로 ‘차별화’
이민호 기자공개 2022-07-28 07:37:37
이 기사는 2022년 07월 26일 14:3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김기백 한국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2팀장(사진)은 이채원-엄덕기를 잇는 가치투자계의 적통이다. 스스로 ‘금융 노가다’라고 부르는 작업을 통해 구축한 600~700개에 이르는 광범위한 종목 유니버스는 가치투자 분야 내에서도 손꼽히는 김 팀장만의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성장 스토리: ‘가치투자 스승’ 엄덕기 매니저와의 운명적 만남
김 팀장이 주식 투자를 시작한 것은 대학생 시절인 2004년부터다. 당시 인천에 소재한 방위산업체에 근무하며 출퇴근하는 데만 3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 시간에 주식, 경제, 부동산, 기타로 파트를 구분해 신문기사를 꾸준히 스크랩하면서 기초지식을 쌓았다.
성균관대에서 시스템경영공학을 전공하는 등 금융공학에 관심이 많았던 김 팀장은 주식이나 부동산뿐 아니라 옵션이나 주식워런트증권(ELW) 같은 금융공학에 기반을 둔 파생상품도 시험삼아 투자했다. 2006년까지는 주식시장이 호황을 누렸던 만큼 투자성과도 좋은 편이었다.
김 팀장은 대학 졸업 후 2009년 유진투자증권 영업부에 입사했다. 당시 본격적으로 투자한 ELW에서 수익을 거머쥐었다가 곧 큰 손실로 전환한 경험은 변동성을 관리하면서 수익을 쌓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이는 가치투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가치투자를 공부하면서 자신의 기질과 일치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2012년 한국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본부로 자리를 옮기면서 주식 매니저로 입문했다. 입사 후 1년간 리서치 업무를 담당했던 김 팀장은 이듬해 현재까지도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는 엄덕기 매니저와 조우하게 된다. 엄 매니저는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 최웅필 에이펙스자산운용 대표와 함께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창립멤버로 2세대 가치투자 매니저로 꼽힌다.
김 팀장은 “엄덕기 매니저는 국내 펀드매니저 역사를 통틀어 가장 많은 종목을 커버했던 인물”이라며 “투자 가치관은 이채원 의장의 영향을 받았고 국내주식에 대한 실전 접근법은 엄 매니저의 영향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엄 매니저가 2013년 한국투자신탁운용으로 이동해 가치주와 중소형주 타깃의 중소가치팀을 만들었고 김 팀장도 함께 이동하게 됐다. 이때부터 ‘한국투자중소밸류’와 ‘한국투자롱텀밸류’ 등 김 팀장의 이름을 운용업계에 알린 펀드들을 본격적으로 운용하기 시작했다. 팀에 대한 애착은 가치주와 중소형주에 스페셜티를 갖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투자 스타일 및 철학: ‘금융 노가다’를 통한 저평가 중소형주 투자
김 팀장은 자신의 투자철학을 ‘소외되고 저평가된 종목 중심의 잃지 않는 투자를 위한 금융 노가다’라는 말로 표현한다. 코스피200지수 편입종목처럼 누구나 알고 시가총액도 큰 대형주보다 시장에 알려져 있지 않고 관심도 적은 종목군에서 히든밸류를 발견하면 수익을 낼 수 있는 폭이 훨씬 크다는 것이 김 팀장의 지론이다. ‘한국투자롱텀밸류’가 중대형주 타깃이기 때문에 대형주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투자중소밸류’처럼 중소형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 팀장의 운용 스타일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분산투자다. 하나의 펀드에 일반적으로 70~100개의 종목을 편입하는데 이는 주식 매니저 중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의 숫자다. 여기에는 ‘좋은 펀드는 변동성이 작아야 한다’는 김 팀장의 평소 생각이 깔려 있다. 김 팀장의 목표는 수익률 1등 펀드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수익률을 크게 높이려면 특정 한 두 종목에 베팅해 변동성을 키울 수밖에 없는데 매번 주도주를 맞히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입 시점에 따라 수익률이 다르다면 수익자들의 접근도 쉽지 않다.
김 팀장은 국내 가치투자 운용업계에서 회자될 정도로 방대한 종목 유니버스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 팀장이 이끄는 운용2팀은 김 팀장과 소속 매니저 1명을 합쳐 2명뿐이다. 하지만 관리하고 있는 종목은 600~700개에 이를 만큼 유니버스가 풍부하다. 현재까지 미팅한 누적 기업수가 1000개가 넘고 미팅횟수로 따지면 2600회가 넘어갈 정도다.
김 팀장은 600~700개 개별종목에 대해 사업보고서상 주요 수치뿐 아니라 매일 공시 내용을 수기로 표를 만들어 정리한다. 중소형주 특성상 하나의 종목을 사기 위해 30개 이상 비교기업이나 전후방 기업을 탐방하기도 한다. 크로스체크를 하면 할수록 투자실패율을 줄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 팀장이 굳이 ‘노가다’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다.
김 팀장은 자신만의 차별화된 분산투자 스타일을 ‘준(準)매크로 수준의 보텀업 투자’로 표현한다. 보텀업 매니저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가 소수 종목에 꽂혀 집중 투자하고 매크로 환경이 급변하면 수익률이 고꾸라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 팀장은 비록 보텀업 중심의 가치투자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매크로 분석도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지표에만 의존해 매크로 환경을 판단하지 않는다. 시중에 발표되는 매크로 지표들은 결국 후행지표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오히려 600~700개 기업을 직접 탐방하고 분석하면 매크로 변화를 캐치할 수 있다는 것이 김 팀장의 설명이다. 준매크로 수준의 보텀업 투자는 김 팀장이 약 10년 전 엄 매니저 아래에서 가치투자에 처음 입문하면서 자신과 약속한 것이기도 하다.
김 팀장은 “지표는 후행할 수밖에 없는데다 매니저의 통찰력이라는 것은 더더욱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며 “하늘을 향해 1000개의 화살을 쏘면 순간적으로 하늘이 뒤덮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같이 수많은 기업들을 직접 발로 뛰면서 분석하면 오히려 매크로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랙레코드1: 국내 대표 중소형주 펀드 반열 오른 '한국투자중소밸류'
김 팀장은 ‘한국투자중소밸류’를 국내 대표 중소형주 펀드 반열에 올려놓은 주인공이다. 이 펀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봤을 때 2018년 한 해를 제외하면 매년 플러스(+) 수익을 달성했다. ‘잃지 않는 투자’를 목표로 변동성 관리에 매진한 결과다.
김 팀장의 운용 스타일이 변동성 관리에 유효함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가 이 펀드에서의 2016년도 성과다. 2014년부터 강세를 이어오던 중소형주는 2015년 하반기 들어 바이오주가 꺾인데다 2016년부터는 삼성전자 주도 장세가 시작되면서 몰락을 길을 걷는다. 국내 전체 중소형주 펀드의 연간 평균 수익률이 마이너스(-) 11%로 고꾸라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투자중소밸류’는 10%에 육박하는 수익률로 국내 중소형주 펀드 중 1위 자리에 올랐다. 당시 수익률 2위에 오른 중소형주 펀드가 -1%였던 점을 고려하면 압도적인 성과였다.
김 팀장은 광범위한 커버리지 내에서 소외되고 저평가된 종목은 비중을 늘리고 시장이 열광하는 종목은 줄이는 비중 조절 매매를 선호한다. 이는 변동성 제어에 효과를 발휘한다. 일반적으로 다른 펀드들 대비 압도적인 수익을 냈다면 특정 종목이나 섹터에서 높은 기여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김 팀장은 이런 집중투자를 지양한다.
당시 우수한 성과도 과열된 종목과 섹터에 대한 투자를 피하고 오히려 과열됐을 때 과감히 비중을 줄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2019년 시장을 주도했던 5G 통신장비주가 정작 김 팀장의 ‘한국투자중소밸류’에는 연중 단 한 주도 편입돼있지 않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팀장은 “국내증시 특성상 주가가 장기 우상향하는 중소형주 수가 크게 적다”며 “이 때문에 특정 종목을 장기 보유하기보다는 다운사이드가 없는 종목을 끊임없이 발굴해 투자하는 방식이 유효하다”고 말했다.
◇트랙레코드2: 우량기업 과감한 편입 ‘유연함’
‘한국투자중소밸류’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유일하게 2018년에만 마이너스 수익률에 머물렀다. 2018년 당시는 상반기 대북테마주로, 하반기 바이오주로 강력한 시장 주도주가 형성되면서 개별 중소형주가 주가 상승 탄력을 받지 못하는 시기였다.
김 팀장은 당시 펀드에서의 부진한 성과를 경험한 이후 밸류에이션이 기존에 계획했던 수준까지 하락하지 않더라도 편입하는 가능성을 일부 열어놓게 됐다. 밸류에이션이 원하는 정도까지 낮아지기를 무작정 기다리다가 아예 사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만 밸류에이션이 다소 높을 때에도 편입하는 기업은 우량한 기업이라는 전제를 여전히 만족해야 한다. 기초체력이 우수하면서 비즈니스 내에서 경쟁우위가 있다고 판단되는 기업에 한해 높은 밸류에이션에도 편입할 가능성을 일부 열어두는 것이다.
◇업계 평가: 근면·겸손 겸비 ‘가치투자 젊은 기수’
국내 가치투자 운용업계에서는 무엇보다 김 팀장의 근면함과 겸손함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보텀업 분석을 넓은 종목군을 대상으로 수행하는 만큼 가치투자의 측면에서뿐 아니라 펀드매니저로서의 소양도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A 자산운용사 대표는 “김 팀장은 위험 회피 성향이 강한데 이를 공모펀드 포트폴리오에 적용하기 쉽지 않음에도 자신의 신념대로 고집스럽게 운용하는 것을 보면 가치투자 매니저 중에서도 희소성이 있다”며 “사수였던 엄덕기 매니저로부터 근로윤리를 배운 영향으로 광범위한 기업을 꼼꼼하고 부지런하게 분석하기 때문에 스스로가 말하는 ‘금융 노가다’라는 표현에 부족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B 자산운용사 대표는 “김 팀장은 국내 가치투자 분야 젊은 기수“라며 “스스로는 통찰력이 없다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결국 넓고 깊은 기업 분석과 변동성 관리를 앞세운 포트폴리오 운용은 김 팀장만의 차별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계획: 매크로 변화에 따른 밸류에이션 재평가 ‘촉각’
김 팀장은 인플레이션 심화로 금리가 인상되는 최근 매크로 환경의 변화가 그동안 유행했던 투자 전략이나 트렌드의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먼저 가치주와 성장주로 나누던 이분법에서 벗어나 성장에 대한 눈높이가 재조정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연간 밸류에이션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할 것으로 보는 이유다.
특히 자기자본 중심으로 투자할 수 있는 기업들이 성장에 유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기업은 풍부한 현금성 자산을 바탕으로 현재 진행 중인 금리 인상과 향후 불거질 수 있는 크레딧 리스크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부동산 장부가치가 재평가되거나 신사업이 성장하는 등 히든밸류를 보유한 기업이 출현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김 팀장은 2차전지 이후 장기적으로 국내시장에서의 유망산업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첫 번째가 신재생에너지다. 구체적으로는 시장이 개화하고 있는 해상풍력과 미래산업 종착지로 불리는 수소 산업을 제시했다. 두 번째는 데이터테크다. 타깃 마케팅이나 의료 AI 등 인적·물적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가능하게 하는 데이터 활용이 산업 전반에 퍼질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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