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2년 12월 28일 08:4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영원무역그룹은 명절 때마다 임직원에게 양파를 나눠주는 관례가 있다. 부서별 사무실 한 켠에 양파가 가득 담긴 박스를 놔두고 임직원이 자유롭게 가져가도록 한다. 붉은 빛 황토에서 자라난 창녕 지역의 양파 냄새가 명절마다 영원무역그룹을 채운다.양파는 영원무역그룹에서 매입하는 것이 아니라 창업자 성기학 회장이 사비를 들여 매년 대량으로 구매한다. 1974년 영원무역의 전신인 의류 제조·수입사 영창실업을 설립해 현재 그룹으로 성장할 때까지 내부에서 양파는 오너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이러한 관례가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사업초기에는 임직원의 환영을 받기도 했다. 명절마다 치솟는 식자재 값의 부담을 덜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양파를 가지고 가는 사람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일부에서 불만이 제기되기도 했다. 사무실에 쌓아두다 보니 냄새가 나기도 했고 소진이 되기까지 관리해야 하는 문제도 발생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어져 오고 있는 관습으로 대부분의 임직원은 명절마다 양파가 생기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면 왜 하필 성 회장은 양파를 택한 것일까. 업계에 따르면 성 회장의 부친인 성재경 회장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고향인 창녕에 내려가 빈곤 퇴치 운동을 전개했다. 농사를 지으며 양파재배기술을 보급하면서 새마을운동이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농촌 근대화에 힘 썼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양파단지를 조성했고 이는 한 때 창녕이 국내 양파생산량의 50%를 점유할 수 있게 했다.
성 회장은 사비를 들여 이를 기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47년생으로 서울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해 지금의 그룹을 일궈내기까지 현재가 있을 수 있었던 그 바탕인 과거를 잊지 말자는 그의 신념은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그는 슬하에 3명의 딸을 두고 있다. 그중에서도 차녀인 성래은 부회장이 최근 현 직급으로 승진하면서 오너 2세 경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성 회장이 70대 중후반에 접어들면서 영원무역그룹도 2세 경영시대를 맞이한 셈이다.
특히 성 부회장은 올해 초 싱가포르에 850억원 규모의 기업형 벤처캐피탈(CVC)을 설립하면서 벤처기업 투자에 나서기도 했다. 영원무역그룹의 주력 사업인 섬유의 미래 먹거리 육성을 구체화하기 위해 첫 삽을 뜬 것으로 평가받는다.
부친의 뜻을 기리는 성 회장과 또 그를 보고 배운 성 부회장의 영원무역그룹. 올해는 성 회장이 섬유업계 진출한지 50년이 되는 해다. 이제 2023년은 성 부회장의 50년이 시작되는 해이기도 하다.
성 부회장에게 양파는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 볼 일이다. 농촌 근대화에서 국내 섬유산업의 발전사로 이어진 오너가의 신념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지. 성 부회장에게도 양파는 부친의 뜻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상징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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