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2월 24일 07:4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연초 운용업계에서 가장 '핫'한 뉴스를 꼽는다면 VIP자산운용의 공모펀드(VIP 더 퍼스트) 완판 소식이다. 공모 운용사 라이선스를 받은 후 300억원 규모로 내놓은 첫 상품이 판매 당일 순식간에 동났다. 공모펀드의 위상이 오랫동안 추락해온 가운데 기념비적 성과를 거뒀다.비결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바로 이례적인 손익차등형 구조다. 트렌치를 나눠 수익자의 분배 비율을 다르게 적용한 구조가 아니다. 수익자의 분배 조건은 모두 동일한 대신 펀드를 설계한 VIP운용이 마이너스(-) 10%까지 손실을 책임지기로 했다. 고객 입장에서는 기준가가 -10% 하락해도 원금이 보장된다. 여윳돈이 있다면 가입을 고민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과감한 승부수의 배경엔 첫 펀드부터 이목을 끌어야 한다는 절실함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데뷔전에서 VIP라는 이름을 확실하게 인식시킬 카드를 고민해 왔다. 보기드문 강수는 제대로 먹혀들었고 업계 전반에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사양길에 들어선 것으로 여겨진 공모펀드가 여전히 불티나게 팔릴 수 있음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위축 일로를 걸어온 공모펀드는 운용업계와 금융 당국의 오랜 골칫거리다. 매년 활성화 대책을 내놨으나 결국 고객에게 더 큰 메리트를 안기는 게 가장 효과적 해법이었다. 운용사 입장에서 더이상 무언가 내줄 게 없다면 VIP운용처럼 고객의 손실을 나눠 지는 전략도 진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그간 쏟아냈던 해결책은 현실감이 떨어졌다. 오히려 개미 투자자를 탓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중장기 투자보다 투기성이 짙은 잭팟에 목매단다고 지적했다. 점진적으로 누적되는 수익률의 복리 효과를 알지 못한다며 얕잡아봤다. 하지만 VIP 더 퍼스트의 한나절 매진 기록을 되짚어보면 개인 투자자의 정보력과 이해도는 예상보다 뛰어나다.
평범한 공모펀드에 가입하는 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것으로 느낄 수 있다. 일단 정기예금 등 원리금보장형 상품과 달리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은 보장되지 않는다. 이 불확실성은 주식이라는 자산의 고유 특성에서 비롯된다. 직접 주식을 사거나 펀드에 가입하거나 변동성에 노출돼 있는 건 매한가지다.
하지만 펀드 운용사에서는 수수료(운용 보수)를 착실하게 가져간다. 그렇다고 펀드매니저가 내밀한 정보를 독점적으로 쥐고 있는 시대도 아니다. 국내 자본시장도 고도화되면서 투명성이 크게 강화돼 왔다. 이제 강력한 유인책이 없다면 여기저기에서 한번쯤 손실의 상처를 경험했을 공모펀드에 굳이 다가설 이유가 없다.
VIP운용이 손실차등형 구조를 내세웠을 때 무모하다고 얘기한 인사가 적지 않다. 운용사라는 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내놓을 수 있는 진단이다. 그러나 손실을 자기 돈으로 메우는 게 낯설지언정 아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선을 긋는 건 곤란하다. 펀드 시장에서 게임의 룰은 진작부터 바뀌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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