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활용법 변화]매입 후 소각, '뉴노멀'로 자리잡을까①쓸 곳 많은 자사주 소각하는 기업들, 시장·정부 기조에 발맞추기
김위수 기자공개 2023-03-13 07:30:27
[편집자주]
자사주 소각을 선택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자사주 소각에 인색한 태도를 취해왔다. 매입한 자사주를 경영권을 위해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변화하는 시장 분위기에 맞춰 자사주 소각을 통해 고강도 주주환원에 나서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 주된 이유지만, 기업에 따라 주가를 끌어올려 이루고 싶어 하는 '빅 픽처'가 있기도 하다. 더벨이 주요 기업의 변화하는 자사주 활용법을 분석해봤다.
이 기사는 2023년 03월 08일 07:36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자사주는 기업의 경영권 안정을 위해 활용할 여지가 많다. 우호지분 확보에 교환 카드로 사용할 수 있고 지주사 전환시 '자사주 마법'을 기대할 수 있다. 경영권과는 별개로 유사시 자사주를 매각해 자금을 확보하거나 상여금 지급 및 현물배당 옵션도 둘 수 있다.보유 중인 자사주의 소각까지 마쳐야 강력한 주주환원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음에도 소각까지 이어지는 사례가 드물었던 배경이다.
이 가운데 삼성 지배구조 최상단에 위치한 삼성물산이 3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겠다고 밝혔다. SK그룹, 현대차그룹 등 재계 선두에 선 곳들도 이미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자사주 소각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태도가 변화하는 모습이다. 실제 국내 기업이 자사주 소각을 위해 낸 공시 건수는 2021년 32건에서 지난해 64건으로 두 배 늘어났다.
◇주주 행동주의에 금융당국까지 "주주권 보호"
이런 분위기 변화는 무엇보다 자사주 소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기간을 지나며 소액주주들이 주식시장에 대거 유입됐다. 현재 우리나라 주식 투자자의 숫자는 10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투자자들이 늘어나며 주주환원 대한 관심이 커지며 주주행동주의 펀드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보유 중이거나 매입할 예정인 자사주를 소각하라는 요구는 행동주의 펀드 및 주주들의 '단골' 제안이었다. 이를테면 SK㈜가 2021년 매년 시가총액의 1%에 해당하는 자사주를 매입하겠다고 발표하자 국내 라이프자산운용 등이 자사주를 소각하라는 내용이 담긴 주주서한을 보냈다. 삼성물산 역시 지난해 '주식농부'로 유명한 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로부터 자사주를 소각해달라는 주주서한을 받은 바 있다.
올 주총 시즌 들어 자사주를 소각하라는 압박이 더 커지는 추세다. KT&G는 자사주를 소각하라는 행동주의 펀드들의 주주제안을 정기 주주총회 안건으로 채택했다.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은 KISCO홀딩스에 자사주 매입·소각을 요구한 상태고, 한국철강 소액주주들은 회사를 상대로 자사주 매입·소각을 주총 안건으로 상정해 달라며 가처분을 신청했다. 앞서 삼성물산에 주주서한을 보낸 박 대표도 12개 상장사에 자사주 소각 등을 요구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려는 금융당국의 움직임도 기업들의 자사주 활용 방안 변화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이 정부 기조에 보조를 맞추려는 모습이다. 금융위원회는 물적분할시 주주보호, 내부자거래 사전공시, 불공정거래 대응강화, 인수합병(M&A)시 의무공개매수 등의 일반투자자 보호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금융위가 자사주 매입 후 소각 의무화를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일부 기업의 경우 안정된 경영권이 자사주 소각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 되기도 했다. 이들의 경우 자사주 소각을 통한 주가 상승이 오히려 이득이 되는 상황이다.
◇자사주 매입 후 소각, 새로운 스탠다드 될까
자사주 매입이 소각으로 이어지는 관행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을지 주목된다. 삼성물산을 비롯한 주요 대기업에서 자사주 소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모습이 국내 산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른 기업들도 자사주를 매입할 때 소각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 SK와 같은 기업들은 재계를 선도하는 역할을 한다"며 "자사주 소각이 산업계 전반에 확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사주 소각이 활성화되면 유통주식수 감소에 따른 주가부양은 물론 자사주 매입의 주주환원 효과 역시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간 우리나라 기업들이 자사주를 매입한 후 재매각하는 사례가 많아 자사주 매입이 주주환원으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김우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경우 자사주 매입이 바로 주주환원으로 이어지지만 국내 현실상 자사주 매입이 바로 주주환원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며 "주주환원 정책의 일환으로서 자사주 매입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소각을 전제로 자사주 매입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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