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5월 12일 09시38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사옥 잃은 아픔을 조금이나마 안다. 10년 전 다녔던 회사는 모 그룹의 계열사였는데 월급이 좀 오래 밀렸다. 경영 능력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몇 해 전 그룹 회장님이 사옥을 담보로 했다가 약속을 못 지킨 게 화근이었다. 전체 계열사에 손해를 끼치고 내 통장을 비게 한 나비효과가 됐다.사옥 매각은 회사의 경제적 위기를 단번에 보여주는 사건이다. 부루마블에서 빌딩만 뺏겨도 억울한데 사옥 잃은 아픔이야 이루 말할 것이 없다. 그래서인지 회장님들도 사옥만큼은 최후의 보루로 남기곤 한다. 동국제강도 그랬다.
동국제강은 2015년 기업의 심장으로 불린 페럼타워를 팔았다. 동국제강의 페럼타워는 매각 자산 리스트의 제일 아래에 있었다. 장세주 회장이 '매각은 말도 안 된다'고 노여워할 만큼 애정이 깊었다.
사옥에 대한 애정은 당연하지만 그렇게까지 아꼈던 이유는 페럼타워가 창업주인 장경호 명예회장의 가르침을 투영해 지은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장 명예회장은 '동국제강은 철로 시작해 모든 것을 철에 걸어야 하는 회사'라 했는데 그 말을 따 이름을 지었다. 페럼타워는 라틴어로 철(Ferro)의 탑이라는 뜻이다.
매각 시점은 페럼타워가 준공된 지 겨우 5년이 된 때였다. 페럼타워를 팔아 4200억원의 자본금을 마련했다. 유동성은 정상화의 토대가 됐다. 덕분에 산업은행과 체결한 재무구조개선약정을 2년 만에 졸업했다. 페럼타워가 마지막까지 동국제강에 보탬이 된 셈이다.
지금 다시 페럼타워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장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 여부가 이제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장 회장은 2018년 가석방된 이후로 동국제강에 출근하며 경영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도 등기이사 복귀는 의미가 크다. 여태 실질적 경영을 했어도 활동은 물밑에서 이뤄져 왔다.
지금의 동국제강을 이룬 건 장 회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과감한 투자가 그룹의 규모를 키웠다. 포항제강소를 비롯해 고로 도전을 위해 브라질 CSP제철소를 세우기도 했다.
동국제강은 12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장 회장의 복귀와 인적분할을 결정한다. 동국제강으로서는 어려움을 겪기 전과 똑같이 장 회장이 리더로, 합쳐졌던 열연과 냉연 사업은 나눈다는 의미가 크다.
동국제강은 또 다른 아픈 손가락이던 골프장 페럼CC를 운영하는 페럼인프라의 지분을 사들이며 1대주주 자리를 되찾았다. 그만큼 그룹의 상징들을 되찾아오겠다는 의지가 뚜렷하다.
8년 만에 이름을 거는 장 회장이 성과를 입증하는 수단 중 하나도 페럼타워 탈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장 회장의 경영 능력에 임직원과 주주들의 명운이 달린 만큼 그가 과오보다는 공로를 쌓길, 그래서 그룹의 심장을 되찾아오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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