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충전 인프라 시장 분석]앞서가는 SK그룹, 질서 재편에 대처하는 길은②M&A 통해 밸류체인 경쟁력 확보, 급속 충전기 제조 및 CPO 1위
이호준 기자공개 2023-05-23 07:36:11
[편집자주]
전기차 충전 인프라 시장은 다양한 기회가 존재하는 곳이다. 실과 바늘이라는 말처럼 최근 몇 년간 세계적인 전기차 보급 증가 추세로 관련업계 역시 계속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파이가 커지면서 경쟁자도 많아졌다. 심지어 SK나 LG와 같은 대기업들이 기존 영세 중소사업자와 파이를 나눠먹는다. 결국 시장 재편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누가 패권을 장악할 것인가, 업계는 여기에 주목하고 있다. 제조·설비 업체부터 충전사업자(CPO)까지 국내 대기업들의 전기차 충전 인프라 시장 진출 현황을 더벨이 점검해 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5월 18일 15:2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성장하는 산업에서 리딩 컴퍼니를 고르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당장의 성과나 투자 현황을 확인하려고 해도 알 수 없는 경우가 적잖다. 하지만 매출과 연구개발비, 점유율 등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흔적을 고루 남기는 업체도 분명 존재한다.전기차 충전 인프라 시장에선 SK그룹이 그런 곳 가운데 하나다. 그룹 내 관련 사업자만 8곳이다. 이 중 급속 충전기 제조 부문은 미국 1등 사업자고, 국내에서도 급속 충전기 보유 대수·멤버십 가입자 수가 최다다. SK에너지 등 연관 계열사까지 고려하면 일찌감치 급속 충전기 '제조→운영→관리·감독'의 밸류체인을 확보했다.
다만 전기차 충전 인프라 시장은 과거 중소 사업자 위주에서 LG, 롯데와 같은 대기업들의 각축전으로 재편되고 있다. 성장 초기인 만큼 경쟁은 이제부터라는 의미다. SK그룹은 계속해서 한 발 앞서나갈 수 있을까.
◇인수합병(M&A)으로 올라섰다...충전 인프라 전 부문 참여
SK그룹이 경쟁력을 키운 핵심 방법은 인수합병(M&A)이었다. SK그룹은 올 1분기 기준 총 8개의 전기차 충전 인프라 관련 계열사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이 중 절반(SK시그넷, SK일렉링크, 에버차지, 아톰파워) 가량을 지난 2년간에 걸쳐 품에 안았다.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단숨에 시장에 침투한 셈이다.
물론 아무 곳이나 사들인 게 아니다. 전기차 충전기는 크게 충전 시간에 따라 완속과 급속으로 나뉘는데, SK그룹의 시선은 주로 급속 충전기에 있다. 급속 충전은 전력제어 기술 등을 개발해야 하므로 초기 투자 비용이 높다. 그럼에도 고속도로 휴게소나 백화점 등 상업용 공간을 중심으로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어 시장성이 더 크다는 평가다.
예컨대 인수 3년 차를 맞은 SK시그넷은 40분 안에 충전이 완료되는 급속 충전기를 제조해 미국과 국내에 판매한다. SK일렉링크와 에버차지는 이 급속 충전기를 받아 각각 북미와 국내에서 설치하고 관리·감독하는 충전사업자(CPO)다.
아톰파워의 경우 미국에서 완속·급속 충전기 제조사 및 CPO로 활동 중이다. 전력 사용 데이터를 측정하고 수집하는 회로차단기 '솔리드스테이트 서킷브레이커(SSCB)' 기술을 보유해 충전소 설치 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결국 급속 충전기 '제조(SK시그넷, 아톰파워)→운영(SK일렉링크, 에버차지)→관리·감독(SK일렉링크 등)'으로 이어지는 밸류체인 한 곳, 한 곳에 전략적으로 들어간 셈이다. 시장의 주목도도 단연 높다. 미국 초급속 충전기 점유율 1위(SK시그넷), 국내 급속 충전기 공급 대수 1위(SK일렉링크), 멤버십 가입자 수 1위(SK일렉링크) 등 타이틀만 여러 개다.
SK일렉링크 관계자는 "국내에 등록된 전기차 중 36%가량이 우리 고객"며 "SK그룹에 편입되기 이전부터 SK시그넷의 급속 충전기를 납품받아 오긴 했다"고 말했다.
◇SK시그넷, 매출 81%가 해외서 나와...연구개발비용도↑
그렇다면 수익은 어떨까. 발달 초기 산업은 당장 수익이 크지 않기 때문에 매출로 성장성을 가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급속·초급속 충전기 제조기업이자 SK시그넷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회사는 162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 1~2년간 매출은 790억원, 618억원에 불과했다.
특히 작년 기준 전체 매출의 81%가 해외, 19%가 국내에서 창출됐다. 국내 시장에서만 보면 대영채비(536억원)나 이브이시스(488억원)에 뒤쳐진다. 하지만 2030년 241억달러(32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보이는 미국 전기차 충전 인프라 시장 규모를 감안하면 경쟁사마저 한발 물러서게 하는 힘이 있다.
투자액도 꾸준히 늘어났다. 지난해에는 SK시그넷 연구개발(R&A) 비용은 100억원을 넘어갈 정도로 증가했다. 이전까지는 30~40억원 안팎이었다. SK시그넷은 투자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코넥스 시장을 넘어 이전상장을 고려 중이다. 2021년 8월 SK㈜에 인수되고 약 1년 반 만에 매출과 CAPEX, 비전 모두 성장한 것이다.
다른 계열사들 역시 격차를 벌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SK에너지는 아톰파워의 기술과 충전기를 국내로 들여오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고, 전국 2200여 급속 충전기를 운영 중인 SK일렉링크는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전국 고속도로 60여 곳에 충전소를 구축하고 있다. SK E&S는 올 초 자회사 에버차지의 충전 솔루션을 사용해 미국 텍사스주에서 CPO 사업자로 데뷔하기도 했다.
◇중첩되는 사업 영역...협업 가능성 열려 있어
이밖에 SK홈앤서비스, SK렌터카, SK쉴더스, 티맵모빌리티 등 'SK' 딱지가 붙은 회사들이 전기차 충전 인프라 시장을 누비고 있다. 전기차 충전산업이 크게 제조·생산업체와 운영을 맡는 CPO로 나뉜다고 보면 계열사들의 사업 영역은 서로 상당 부분 겹치고 있으리라 추론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교통정리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업부문이 중첩돼 한 사업자 공고에 여러 곳이 이름을 올리는 등의 일이 발생하면 시너지는커녕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이 생길 수도 있어서다. SK그룹 관계자는 "아직 그룹 차원의 컨트롤타워는 없다"라며 "각자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무턱대고 같은 업종을 묶을 수는 없는 법. 전기차 충전 인프라 시장이 어떤 형태로 기술이 진화하고 시장이 발전할지도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SK그룹은 일단 각 사별로 따로 또 같이 전략을 취하는 모양새다. 이에 일단은 M&A 후 통합(PMI) 작업에 속도를 내며 핵심 자회사로 키우기 위해 조직을 정비하고 있다.
올 3월 정한종 SK네트웍스 신성장추진본부장이 국내 완속 충전 CPO 에버온 기타비상무이사에 선임된 것이 대표적이다. 에버온은 SK네트웍스가 2022년 지분투자를 단행한 곳으로 현재 2대주주으로 있는 곳이다. 이밖에 유봉운 기획재무본부장이 작년 말 자회사 SK일렉링크 기타비상무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SK시그넷 역시 장동현 SK㈜ 대표이사 부회장과 김양택 SK㈜ 첨단소재 투자센터장이 기타비상무이사로, 신정호 기존 SK㈜ 디지털 투자센터장은 대표이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SK㈜와 SK에너지가 2022년 8월 인수한 아톰파워에는 올 초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사진)이 이사회 멤버로 참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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