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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치고 받아라" [thebell note]

조은아 기자공개 2023-07-25 07:10:55

이 기사는 2023년 07월 24일 07:4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재미가 없다."

최근 만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와 기아의 합산 점유율이 90%(국산차 기준)에 이르는 한국 자동차 시장의 현실을 이렇게 평가했다. 고사 위기까지 몰렸던 다른 자동차 3사 입장에선 다소 얄궂겠지만 생기를 잃어버린 시장을 표현하기에 이만큼 적절한 표현도 없는 듯하다.

사실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2020년 전후로 한국GM, 르노코리아, KG모빌리티가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현대차그룹의 점유율이 80%를 훌쩍 넘어 90%에 육박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흘러간 옛일이지만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은 한때 대우자동차 인수를 추진했다. 당시 대우자동차를 노리던 GM의 한국 시장 무혈입성을 막자는 애국적 취지와 함께 내수 시장에서 단번에 천하통일을 이룰 수 있는 기회라는 내부 경영진의 판단이 영향을 미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여곡절 끝에 포기했다. 리스크 없이 지금의 천하통일을 이룬 셈인데 대우차를 인수한 GM이 이렇게 힘을 못쓰게 될 줄 그때는 꿈에도 몰랐겠지 싶다.

경쟁이 주는 긍정적 효과는 두말하면 입이 아프다. 외환위기 전 우리나라에는 현대차와 기아뿐만 아니라 대우자동차, 삼성자동차, 쌍용자동차, 아세아자동차, 동아자동차 등이 있었다. 이들의 경쟁은 자연스럽게 산업의 발전을 수반했다.

특히 자동차가 매우 값비싼 최종 소비재라는 점은 발전의 속도를 한층 높이는 데 기여했다. 자동차를 구매할 때마다 소비자들은 하나에서 열까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고 이는 곧 자동차 회사들의 시장 분석 및 대처 능력 향상으로 이어졌다.

일례로 삼성그룹의 자동차 시장 진출은 당시 업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삼성이 만든 자동차는 기존 고만고만한 제품을 쓰던 소비자들에게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을 심어주며 자동차 업계의 긴장감을 높였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기도 했다.

소형 SUV 사례도 꼽을 수 있다. 한때 현대차는 소형 SUV를 국내에 출시하지 않았지만 2013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GM의 쉐보레 트랙스, 르노코리아의 QM3, KG모빌리티의 티볼리가 연이어 히트를 치자 한발 늦게 코나를 선보였다. 현대차가 '뒷북'을 친 거의 유일한 사례다.

이때만 해도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다. 작용과 반작용이 있었고 도전에는 응전으로 받았으며 액션 다음엔 리액션이 있었다. 당시에도 현대차그룹이 다른 3사를 압도했지만 업계 전반에 나름의 경쟁과 활력이 있었다.

이런 날이 다시 올까? 국내 자동차 업계 전반이 너무 조용해진 지 오래다. 잘나가는 산업은 일단 시끄럽다. 인력과 기술 쟁탈전이 벌어지고 심하면 소송도 오간다. 장외에서도 신경전이 벌어진다. 신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크고 작은 마찰을 빚는 일도 부지기수다. 자동차 업계에선 사라진 광경들이다. 차라리 치고받는 날이 오길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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