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9월 11일 07:3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루닛의 행보는 누구보다 과감하다. 지난 6월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2023)에서 면역항암제 예측 바이오마커로 'TIL(종양침윤성림프구)'의 가능성을 입증했던 루닛은 3개월 만에 새 바이오마커를 제시하고 나섰다.

이번 시도로 AI 면역항암제 바이오마커 플랫폼 '루닛 스코프'의 활용도가 한층 넓어질 전망이다. 루닛이 궁극적으로 목표로 하는 다양한 분석법을 적용해 최적의 암 치료를 이끌어내는 '멀티오믹스(다중체학)'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지는 모습이다.

◇요즘 뜨는 바이오마커 TLS 연구 첫 발표…PD-L1 한계 보완

루닛은 지난 10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세계폐암학회(WCLC 2023)에서 자체 AI 플랫폼으로 살펴본 면역항암제 바이오마커로써 TLS(3차 림프절 구조)의 의미를 포스터 발표했다. TLS에 대한 루닛의 첫 번째 연구 결과다.

루닛이 주목한 TLS는 암세포 근처에 형성되는 림프절 조직이다. 우리 몸은 암세포의 활성을 막기 위해 면역시스템을 가동해 종양미세환경 내 림프절과 비슷한 TLS를 생성해낸다. 즉 TLS가 존재하면 면역 항암 효과를 어느정도 예측해볼 수 있다.

현재 키트루다·티쎈트릭·임핀지 등 면역항암제들이 치료 효과를 예측하기 위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바이오마커는 단연 PD-L1이다. PD-L1이 전혀 발현되지 않으면(음성) 면역항암제 효과가 매우 낮고, 발현되는 수치가 높을 수록 효과도 비례하는 경향을 보인다.

동시에 PD-L1의 한계도 뚜렷하다. 간접적인 활성 지표로 평균 반응률이 30% 안팎에 그친다. 반응률을 끌어올리는 것이 난제로 남아있다.

면역항암제의 효과를 예측하는 바이오마커로써 TLS를 주목하는 움직임이 이제 막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TLS는 그 크기가 매우 작아 사람이 구별해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루닛은 AI로 조직 슬라이드를 분석하는 자체 플랫폼 '루닛 스코프'를 활용했다. TLS의 존재 유무와 종양미세환경(TME)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TLSP)을 분석해 환자의 생존기간(OS)과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다.

더벨과 만난 옥찬영 루닛 최고의학책임자(CMO, 사진)는 "면역항암제 바이오마커로 쓰이는 PD-L1이 풀지 못했던 부분을 새 바이오마커가 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호보완적 관계로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루닛은 면역항암제 치료를 받은 85명의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조직 슬라이드에서 TLS를 분석하고 TLS 존재 유무가 환자들의 예후와 유의미한 관계가 있는지 살펴봤다.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TLS가 존재하는 환자군의 생존기간은 22.7개월로 TLS가 없는 환자군 11.5개월보다 약 두 배 길었다. TLS가 존재할 경우 면역항암제의 효과가 더 높았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옥 CMO는 "TLS가 바이오마커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AI를 적용했을 때 가능성이 어떤지 확인하는 연구라 볼 수 있다. 실제 TLS가 존재하는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환자들과 생존기간에 많은 차이를 보였고, 모수가 충분치 못해 유의성까지 충족되진 못했지만 PFS도 40% 리스크가 감소된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루닛은 이번 연구를 위해 1800케이스를 루닛 스코프에 학습시켰다. 연구로 TLS의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향후 1년간 학습량을 늘려 정확도를 높이는데 집중할 예정이다. 폐암으로 한정했던 암종도 다양하게 늘리고자 한다.


루닛과 함께 연구를 진행한 채영광 노스웨스턴대 의대 교수도 TLS의 가능성을 높이 샀다. 채 교수는 "AI로 TLS의 유무에 따라 생존기간을 확인하고, 그래프가 갈라진다는 것을 확인한 최초의 연구"라며 "면역항암제 단독요법뿐 아니라 항암화학요법을 더했을 때도 생존기간 그래프가 이만큼 갈라져 매우 유망한 바이오마커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넓어진 핵심 솔루션 '루닛 스코프', 멀티오믹스 목표에 '성큼'

TLS 바이오마커 개발로 핵심 기술인 루닛 스코프의 영역은 더욱 넓어졌다. 루닛은 면역항암제가 활성시키는 TIL 측정에 초점을 맞춰 루닛 스코프를 학습시켜왔다. 최근 TLS 바이오마커 학습을 추가함으로써 더욱 정교한 예측이 가능해지리란 기대다.

최근의 면역항암제 개발 환경은 새로운 바이오마커의 필요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항암화학요법, 표적항암제, 타 기전의 면역항암제와 병용요법이 많아질 수록 PD-L1 마커의 한계가 도드라진다.

옥 CMO는 "규제당국은 PD-L1 양성 내에서도 발현율에 따라 면역항암제 단독요법이 좋은지 병용요법이 좋은지 살펴보는 연구에 관심이 많다. PD-L1 수치만으로는 이를 분석하기가 힘들고 실질적인 가이드라인을 주는 바이오마커가 없다. 새로운 바이오마커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바이오마커로 면역항암제가 진입하지 못한 암종에 새로운 기회를 부여할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기존 바이오마커에 TIL, TLS 등 새로운 바이오마커를 더해 종합적으로 종양미세환경을 분석함으로써 말기 암 환자들에게 치료 기회를 열겠다는 목표가 루닛 스코프에 담겨있다.

루닛은 지난달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영상의학과 종양미세환경 분석을 통해 최적의 치료 전략을 세울 수 있는 멀티오믹스를 장기 플랜으로 내세웠다. TLS 마커 개발로 멀티오믹스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으리라 옥 CMO는 내다봤다.

옥 CMO는 "TIL에서 TLS를 추가해 루닛 스코프 버전2를 선보일 계획"이라며 "루닛의 두 사업부문을 병합해 환자를 통합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