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사라진 ‘망 사용료’ 입법, 자의 반 타의 반 속도조절 참고사례 활용 어려워, 정치권 일부 선 "명분 얻어 다행"
이민우 기자공개 2023-09-22 10:55:49
이 기사는 2023년 09월 21일 15:5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망 사용료를 두고 법정 싸움을 하며 첨예하게 대립했던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가 화해했다. 관련해 추진됐던 정치권의 입법 역시 나비효과로 인한 태도 변화가 감지된다. 양측의 상호 소송 취하로 당분간 대법원 상고심 판례를 기대할 수 없게 되면서 망 사용료 입법을 위한 참고 사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일부 정치권에서는 망 사용료 입법에 대한 통상 문제 등 복합적인 우려가 얽혔던 만큼, 입법에 속도조절할 명분이 생긴 것이 오히려 다행이란 시각도 나온다.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 등 글로벌 연합체에서 망 사용료 주제를 두고 논의하는 만큼, 주도적으로 입법을 추진해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성은 없다는 것이다.
◇SKB·넷플릭스 상호 소송취하, 사라진 입법 참고사례 씨앗
SKT와 SK브로드밴드는 최근 넷플릭스와 전략적 파트너십 체결과 상호 소송취하를 알렸다. 망 사용료를 둘러싼 대립 관계로 화해 무드로 체제를 바꾼 셈이다. 양사는 앞으로 요금제와 서비스 개선 등 다방면에서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양사의 소송 취하와 화해 무드는 각 통신사, 서비스 이용자에게 안도감을 불러왔다. 하지만 이를 기반으로 망 사용료 법안을 입법 중이던 국회 등 정치권에는 변화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해외 빅테크에 망 사용료를 부과하는 것을 목적으로 연대했던 민간과 정치권의 구조 중 한 축이 발을 뺀 상황이기 때문이다.
앞서 법원은 2021년 진행된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와 1심 판결에서 SK브로드밴드의 손을 들어줬다. 판결을 맡은 서울중앙지법은 원고인 넷플릭스의 패소를 선고한 것에 대해 “원고는 피고(SK브로드밴드)로부터 유상의 역무를 제공받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가를 지급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정치권 입장에서 SK브로드밴드의 1심 승소는 대법까지 유지될 경우 입법 과정에서 참고 사례로 적극 활용할만한 일종의 '씨앗'이었다. 하지만 양측에서 소송 취하를 결정하고 합의에 나선 만큼 이를 토대로 입법을 추진하는 것은 사실상 물 건너 갔다. 판례로 언급하는 것은 대법원 상고심 판결문에 국한되는 것이 통상적이기 때문이다.
통신 업계 한 관계자는 “망 사용료는 일종의 현지법이나 국내 기업 간 거래에 가까운 성격이었고, 이 때문에 비슷한 관련 체계가 일반적이지 않았던 EU 등 타 지역으로부터 주목을 받았던 것”이라며 “이를 해외기업에 넓혀 적용하면 국내 판례로 뒷받침하는 것이 중요한데, 현재는 이를 잃어버린 셈이고 사실상 기업 간 협약까지 등장해 강제성을 띤 입법은 꽤 부담”이라고 말했다.
◇입법 속도 조절하는 정치권, ”명분 얻어 다행” 시각도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소송 취하 이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위원은 성명을 통해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가 화해하고 협력관계를 맺기로 한 점을 존중하고 응원한다”며 “망이용대가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제도개선은 여전히 필요하며, 미국과 EU등 글로벌 동향에 발맞춰 국내 제도 정비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계속 살피겠다”고 밝힌바 있다.
업계는 이를 정치권에서 과거만큼 적극적인 목소리는 자제하고, 글로벌 협의체 행보에 탑승해 입법 전개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재 GSMA, 유럽통신사업자협회(ENTO) 등이 현재 빅테크와 망 사용료를 놓고 대립 중이다. 더불어 미국 내부에서 망 사용료에 대한 논의가 점차 촉발되는 만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치권의 이런 스탠스는 단일 국가에서 입법을 주도할 경우 빅테크 본산인 미국과 통상 분쟁 소지가 있는 만큼,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복안도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국내에서 망사용료의 주요 타겟으로 분류됐던 넷플릭스나, 다음 과녁으로 꼽히는 구글 등 대다수 대형 빅테크가 미국에 근원을 두고 있는 탓이다.
망사용료 논의가 극에 달했던 지난해에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서 국내 산업부에 공식적인 우려 표시를 건넨 사례까지 있다. 이에 정치권 일부에서는 이번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파트너십으로 입법에 속도조절을 할 수 있는 명분이 나온 것이 차라리 다행이란 시각도 나오는 중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회 한 관계자는 “망 사용료에 대해 국내에서도 아직 회의적인 여론이 있고, 산업부 등에서의 우려도 있었던 만큼 입법을 기다려보자는 시각이 많아진 것이 사실”이라며 “내년에 국회의원 선거도 있는 터라 과도하게 목소리를 낼 상황도 아니라, 입법은 내년 국회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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