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전략장비 빌드업]디아이티, '150억 레이저 어닐링' 공급에 숨은 함의①4년 공들인 SK하이닉스 선단공정 장비, 50% 이르는 마진율 내년 영업익 퀀텀점프 기대
조영갑 기자공개 2023-10-11 08:08:54
[편집자주]
불황의 늪에 빠져 있던 반도체 섹터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글로벌 AI(인공지능) 테크들이 본격적으로 상용화 전선에 나서면서 고사양 반도체 수요가 급증한 덕택이다. 이를 대비해 그간 전략장비를 개발, 테스트해온 제조사들 역시 양산 페이즈에 진입하기 위한 움직임이 분주하다. 더벨은 주요 반도체 장비사들의 '킬 아이템'을 중심으로 호황 싸이클 지형도를 가늠해 본다.
이 기사는 2023년 10월 06일 07:3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드디어 터졌다."최근 디아이티가 공급계약 공시를 내자 디아이티 주주들 사이에서는 환호가 터졌다. 매출, 영업이익 신장 이상의 의미가 있는 '뉴스'라는 이유에서다. 디아이티는 지난 9월 18일 SK하이닉스와 149억원 규모의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최근 SK하이닉스와 전략장비 공급계약을 체결한 장비사들이 품목을 비교적 소상하게 밝힌 반면 디아이티는 공시에 '반도체 제조 장비' 식의 제한된 내용만 공개했다.
SK하이닉스와 공동 개발을 시작하면서 맺은 NDA(비밀유지협약) 탓으로 보인다. 통상 고객사의 니즈에 의해 공동개발한 전략장비의 경우 고객사와 기술 특허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영업권을 제한한다. 홍보도 함부로 할 수 없다. 공정 상의 레시피를 경쟁사에 노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아이티가 이번 SK하이닉스 양산 공정에 정식 공급하는 제품의 정식 명칭은 '레이저 어닐링(Laser annealing)' 솔루션이다.
반도체 웨이퍼는 원래 규소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전류가 흐르지 않는다. 전류를 흐르게 하기 위해 이온주입 공정을 통해 인, 비소, 붕소 등의 도펀트(불순물)를 넣어주는데, 이 과정에서 웨이퍼의 실리콘 원자와 충돌한 도펀트가 제 위치를 찾지 못하면 반도체 수율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런 과정을 교정하기 위한 공정이 '어닐링(Annealing)'이다. 이온주입 후 데미지를 입은 웨이퍼를 고온으로 가열해 실리콘 격자의 재정렬을 유도하는 작업이다. 다만 고열의 급속어닐링(RTA) 방식은 오히려 웨이퍼 뒤틀림, 단층 발생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를 레이저 방식으로 개선한 공정이 디아이티가 이번에 양산 공급하는 레이저 어닐링 시스템이다. 열로 인한 뒤틀림을 예방하고, 고단층 반도체 공정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디아이티와 주주들이 해당 공급계약 공시를 기다린 까닭은 해당 장비가 SK하이닉스의 HBM(고대역메모리) 선단 공정의 수율을 책임질 수 있는 고부가가치 솔루션이기 때문이다. 디아이티는 2019년부터 SK하이닉스와 레이저 어닐링 개발을 시작해 약 4년 만에 처음으로 양산라인에 진입했다. 연구개발비만 2021년 78억원, 지난해 61억원, 올 반기 30억원 등 200억원 가까이 투입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5세대 HBM으로 불리는 HBM3E 양산 라인을 본격 가동하면서 내년 AI(인공지능) 관련 HBM 시장의 개화를 노리고 있다. HBM3E는 4세대 HBM인 HBM3의 확장 버전으로 평가되는 고사양 반도체다. FHD급 영화 230편 분량의 데이터(1.15TB)를 1초에 처리할 수 있다. GPU와 함께 패키징하면 대용량 AI 콘텐츠를 무리 없이 구현할 수 있기 때문에 각광 받고 있다. 최근 AI GPU(그래픽처리장치) 패권을 노리고 있는 엔비디아에 샘플을 공급한 데 이어 내년 HBM3E 칩을 양산 공급한다는 목표다.
특히 SK하이닉스가 HBM3E 테크 노드(공정수준)를 10나노미터 이하인 '1b 노드'로 설정, 피치를 미세화하는 데 승부수를 던졌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수율을 잡는 어닐링 공정에 투자를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단층이 높아지고, 선폭이 미세화될 수록 어닐링의 수요가 커진다. 업계에서는 이 수혜를 이오테크닉스(삼성전자 독점)와 디아이티가 그대로 흡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SK하이닉스는 HBM3E 양산에 속도를 내는 동시에 공격적이 장비 발주를 집행하고 있다. 9~10월 한미반도체에 TC본더 관련 PO(구매주문)를 1000억원 이상 집행한 데 이어 디아이티(149억원), 예스티(75억원) 등 HBM 공정 관련 장비를 입고하고 있다. 계약 기간도 내년 상반기로 짧은 편이다. 양산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업계의 말을 종합하면 디아이티는 이번에 2대의 어닐링 장비를 SK하이닉스 양산 라인에 공급한다. 총 계약금액이 149억원이기 때문에 대당 ASP(평균공급가)는 약 75억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삼성전자에 레이저 어닐링 시스템을 독점 공급하는 이오테크닉스 역시 유사한 수준의 ASP가 책정돼 있다. 해당 계약금액은 장비 입고, 설치에 따라 내년까지 순차적으로 디아이티 매출액에 산입될 전망이다.
다만 시장이 주목하는 부분은 매출액 보다 마진율에 따른 영업이익이다. 레이저 어닐링 장비를 제조, 개발하는 국내 장비사가 사실상 이오테크닉스와 디아이티 외에는 없기 때문에 공급사가 단가 협상에서 상대적으로 유리, 50% 이상의 마진율이 책정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2대의 레이저 어닐링 장비가 입고 완료되면 디아이티는 70억~8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남기게 된다. 지난해 디아이티는 매출액 1329억원, 영업이익 59억원으로 4.17%의 이익률을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 관련)내년 8~10대의 레이저 어닐링 장비의 추가 입고가 예정돼 있기 때문에 수율에 문제가 없는 한 최대 400억원 가량의 영업이익이 새로 산입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해외 리서치 기관 등에 따르면 글로벌 레이저 어닐링 장비 시장 규모는 지난해 8억380만 달러(1조858억원) 수준에서 2028년까지 CAGR(연평균성장률) 6.3% 기록, 11억6000만 달러(1조5663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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