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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스타트업을 바라보는 VC의 동상이몽 [thebell desk]

박상희 벤처중기1부장공개 2023-10-19 08:23:41

이 기사는 2023년 10월 17일 07:4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유통 대기업이 소비자직거래(D2C) 서비스 플랫폼을 만들어 단가를 대폭 낮춘 한우를 판매한다고 가정해 보자. 전국의 도소매 정육점에서 엄청난 반발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똑같은 서비스를 플랫폼 스타트업이 제공하면 대단한 기술력을 갖춘 푸드테크 기업인냥 포장돼 기업가치가 무섭게 올라간다. 플랫폼을 등에 업은 스타트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웬만한 F&B 기업의 시가총액을 넘는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최근 만난 출자기관의 한 최고투자책임자(CIO)가 한 말이다. 그는 국내 플랫폼 기업 투자 목적의 프로젝트펀드에는 출자를 하지 말라는 내부 가이드라인까지 만들었다. 벤처캐피탈에 공적 성격을 띄는 자금을 출자하는 기관의 CIO로서 플랫폼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을 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반도체나 로봇, AI를 비롯한 한국의 미래 산업을 이끌어갈 분야에 대한 투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설립 20년이 넘은, 1조원 이상의 운용자산을 굴리는 한 벤처캐피탈 관계자는 CEO의 운용 철칙 가운데 하나가 플랫폼 기업에 투자하지 않는 것이라고 전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춘 기업, 내수가 아닌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다보니 자연스레 플랫폼 기업을 멀리했다는 설명이다. 이 하우스의 포트폴리오는 딥테크 및 바이오 기업에 집중돼 있다.

요즘 들어 부쩍 플랫폼 기반 스타트업 투자에 대한 성토를 많이 듣는다. 기술이라는 실체가 없는,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 위에 쌓아진 성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다수 플랫폼 기업이 유니콘으로 성장하던 시절에는 나오지 않았던 목소리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고금리 시대에 접어들면서 유동성 파티는 막을 내렸다. 풍부한 유동성이 밀어올린 밸류에이션이 조정에 들어갔다. 대표적인 타깃은 플랫폼 기업이다. 고점 대비 기업가치가 최대 70%까지 조정된 곳까지 있다.

논리는 다음과 같다. 국내 플랫폼 기업은 내수 시장만을 겨냥한다. 비슷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러 경쟁업체 가운데 최후의 승자가 등장할 때까지 제살 깎아먹기식 출혈 경쟁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치킨경쟁에 자금을 대는 곳이 VC다. 최후의 승자가 누가 될지 알 수 없기에 VC들은 여러 업체에 분산 투자를 한다. 시장 상황이 좋고 유동성이 풍부할 때는 이같은 치킨 게임이 유지될 수 있지만 투자 한파가 몰아치는 시기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물론 플랫폼 투자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시대적 흐름에 따른 자연스런 귀결이라는 분석이다. 팬데믹 위기 속에서 다양한 비대면 플랫폼이 주목을 받았고 수익성도 생각해야 하는 VC 입장에서 이런 트렌드를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공룡이 된 네이버와 카카오도 그 시작은 플랫폼 스타트업이었다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플랫폼 포트폴리오를 상대적으로 많이 보유한 하우스의 대표는 결국은 빈티지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플랫폼 기업이 이미 고평가된 시점에 지속적으로 투자에 나선 하우스의 관행은 반성할 필요가 있지만 초창기에 투자한 VC까지 싸잡아 비판받을 이유는 없다. 누군가는 플랫폼 스타트업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플랫폼 투자 결과가 제로섬 게임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어떤 VC는 웃을 수도 있고, 다른 VC는 한숨을 내쉬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같은 하우스 내에서도 투자한 포트폴리오에 따라 희비가 나뉠 수도 있다. 누가 맞고 틀린지를 두고 벌이는 이분법적 논쟁은 소모적일 수 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 VC는 한단계 더 발전하고 플랫폼에 기반한 스타트업 생태계는 더 성숙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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