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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텍 CFO 스토리]"상장은 거쳐가는 과정일뿐" 루닛의 혹한기 조달법②박현성 상무 "시장 설득 과정 필요, 최소공모 전략 필수"

최은진 기자/ 정새임 기자공개 2023-12-19 11:18:54

[편집자주]

기업의 곳간지기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역할은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업권별로 그 역할과 무게가 다르다. 바이오텍 CFO는 단순히 재무·회계 등 숫자만 잘 알면 되는 정도가 아니다. 무르익지 않은 기술을 투자자들에게 선뵈며 투자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때로는 기술수출 현장을 직접 뛰며 사업 중심에 서기도 한다. 이 같은 바이오텍 CFO 역할은 투자 혹한기인 지금 시점에 그 중요성이 배가 된다. 기술이 바이오텍의 존재의 이유라면 CFO는 기술의 생존을 이끌어 내는 키맨이다. 최근 주목받는 바이오텍의 CFO를 만나 혹한기 생존전략을 물었다.

이 기사는 2023년 12월 18일 07:56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매출 10조원, 영업이익 5조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만 루닛의 비전은 크고도 원대하다. 조단위 숫자도 놀랄만하지만 영업이익률 50%라는 자신감은 무모해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상장 1년만에 2000억원 조달 그리고 곧바로 2500억원의 빅딜을 체결하는 속도를 보면 루닛은 이미 가야할 길을 알고 가는 '계획적 무모함'이 감지된다.

상장은 목표가 아닌 과정일 뿐이라는 최고재무책임자(CFO) 박현성 상무(사진)의 철학이 엿보이는 지점이다. 어려운 바이오텍 현실에서 루닛의 거침없는 추진력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더벨은 박 상무를 만나 전략과 고민 등을 들어봤다.

◇비전 그리는 한 과정에 '상장'은 필수, 엄격한 내부통제 강점

"루닛은 한번도 상장을 목표로 삼았던 적이 없다. 상장을 발판삼아 더 올라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움직인 것 뿐이다."

루닛 사무실에서 더벨과 만난 박 상무는 상장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떤 비전과 계획을 갖고 있느냐라고 강조했다. 두곳의 기술성 평가기관으로부터 최초로 AA를 받고 혹한기 펀딩 상황에서도 상장할 수 있었던 경험 모두 호들갑 떨만한 '목표 결과값'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박 상무는 "기평 결과가 나온 날, 심지어 상장이 승인된 날도 경영진들은 덤덤하게 회의하고 다음 계획을 준비했다"며 "루닛에 있어 상장은 거쳐과는 과정일 뿐이기 때문에 다음을 준비하고 다음 전략을 고심하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뻔한 말로 들리지만 사실 루닛의 이 같은 경영진 스타일은 허례허식이나 겉치레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조직 분위기로 이어졌다. 자연스레 내부통제 이슈가 없다는 강점으로 이어진다. 최대주주인 백승욱 이사회 의장이나 전문경영인(CEO)인 서범석 대표이사 등 경영진에 대한 과도한 특혜가 될만한 것들이 애초 만들어질 일도 없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루닛은 상장에 대한 비결로 '건전한 내부통제'를 꼽았다. 문제가 될 근본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기술로만 평가받을 환경이었다고 말했다. 상장 추진 당시 주관사 및 한국거래소와 소통할 때도 내부통제에 대한 의혹을 사거나 질문을 받았던 적도 없다. 신라젠에 3년여 간 근무하며 쌓은 박 상무의 업력과 노하우가 빛을 발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장의 문턱을 넘어도 고민은 있었다. AI 의료라는 생소한 분야를 시장에 이해시키는 것. 루닛은 제품 단 3가지로 승부한 반면 동종기업들은 10여개의 라인업을 늘어놓았던 부분도 설득이 필요했다. 루닛이 무엇보다 시장과의 소통, IR과 PR에 힘을 주게 된 계기였다.

특히 암 진단 솔루션 '루닛인사이트'에만 초점을 둔 시장의 시선을 성장동력이 될 AI 바이오마커인 '루닛 스코프'로 이동시키는 게 관건이었다. 공모가에 반영되진 못했지만 주가 상승으로 3조원 몸값으로 키운 것도 이러한 전략에 있다는 게 박 상무의 설명이다.

그는 "회사 자체는 너무 좋은데 시장에서 안 읽히는 부분이 있으니 계속 설명하고 설득하면 인정해주는 저변이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믿음이 있었다"며 "이제는 우리의 성장동력으로 루닛 스코프를 먼저 얘기하는 기관투자가들이 늘어났고 어느정도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는 건 상당히 고무적인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루닛이 '최소공모' 전략을 쓴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기술기업이 상장하기 위해선 시장이 충분히 받아들이고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총량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2021년 11월 예심 청구를 할 당시만 해도 시장 펀딩 환경이 상당히 긍정적이었지만 최소공모 전략을 썼다는 점도 흥미롭다. 상장 청구에 앞서 미리 1000억원의 프리 IPO 펀딩을 받아 체력을 다져놨던 준비성도 눈에 띈다. 결과적으로 시장환경이 급속도로 냉각된 2022년 상장 상황에 잘 맞아떨어진 전략이었다.

프리IPO 당시 받은 펀딩물량에 '리픽싱'을 두지 않았다는 것도 묘수였다. 공모가가 예상치보다 떨어져도 공모자금이 덜 들어올 뿐 지분율 희석 우려는 없어 부담이 적었다. 투자자들의 반발이 없진 않았지만 미래에 베팅해줄 것을 요청했고 투자자들은 수락했다. 프리IPO 투자자들은 공모가 3만원대보다 높은 4만원대로 그대로 집행됐다.

박 상무는 "상장 후 주가는 더 올라갈거라는 자신감 그리고 오버행 이슈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상장은 지금 해야 한다는 설득이 수용됐다"며 "루닛의 자긴감을 믿어준 투자자들은 해피하게 엑시트 하는 결과가 됐고 사후적으로 볼 때 괜찮은 상장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상향 리픽싱으로 펀딩 환경 더 악화, 롱텀 실현 위한 상장은 필수

루닛은 창업부터 상장까지 지난 10년간 2000억원을 조달했다. 그리고 최근 한번의 유상증자로 2000억원을 추가 조달하고 AI 기반 유방암 진단 소프트웨어 기업 '볼파라'를 인수했다. 루닛이 그린 상장의 명분은 분명하게 맞아떨어졌고 비전 계획 역시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증자 전략에 대한 고민도 만만찮았다. 5월 시행된 규정으로 전환우선주(CPS)나 상환전환우선주(RCPS)에 대한 상향리픽싱 조항이 생기면서 회사 입장에선 지분 희석 우려가 줄었지만 투자자 입장에선 매력도가 낮아졌다는 점, 3자배정의 1년 락업 규정 등 복잡한 매커니즘을 고려하는 게 필요했다.

주가가 오를 거라는 확신이 없는 한 주주배정 외에는 조달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다양한 셈법을 고려했다. 고민 끝에 일단 주주배정으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고 3자배정은 추후 전략적투자자(SI)에 활용하는 전략을 세웠다.

주주배정 증자 시 최대주주의 청약을 이끌어 내는 일, 이를 위해 금융권 대출을 연결하는 일 등도 CFO의 몫이다. 상장 당시 걸린 락업 규정과 맞물려 자금 조달 및 매각 타임라인을 꼼꼼하게 세워야 했다.

백 의장과 서 대표는 유증 참여를 위해 메리츠캐피탈을 통해 약 9.8%에 자금을 조달했다. 상장 당시 설정한 보호예수는 2025년 7월까지로 2년이 남은 상황인 만큼 보호예수나 담보가 설정되지 않은 신주 일부를 매각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박 상무는 비상장 바이오텍에 대한 조언으로 "롱텀 계획을 실현시키 위해선 흔하게 얘기하는 기술이전 마일스톤만으론 쉽지 않기 때문에 상장이 필수인 건 사실"이라면서도 "상장만을 목표로 삼기 보다는 큰 비전, 그리고 계획 등을 먼저 세우고 거쳐가는 단계로 접근하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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