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ieu 2023]‘200영업일’도 넘었다…거래소 심사지연 ‘심각’‘45영업일 원칙’ 유명무실…IPO 침체로 이어질까 우려
최윤신 기자공개 2023-12-29 12:50:36
이 기사는 2023년 12월 26일 16:0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23년 한국거래소의 상장예비심사 지연이 심각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거래소는 상장트랙과 관계없이 45영업일 내 심사 결과를 통보한다는 원칙을 두고 있지만 이런 원칙이 지켜지는 경우는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집계됐다.약 6개월에 해당하는 100영업일 이상의 장기심사 사례도 수두룩했다. 예심청구 이후 심사기간이 200영업일을 넘어서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 거래소의 심사 지연이 일반화되며 금융투자업계에선 IPO를 통한 조달은 시점을 예측하기 어려운 지경에 달했다고 토로한다. IPO시장의 ‘노멀’을 바꿔놓은 심사지연이 시장 침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100영업일은 예사, 211영업일째 '심사 중' 사례도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이날까지 한국거래소는 103개 기업의 상장예비심사를 승인했다. 신규상장 추진 기업과 코넥스에서 코스닥으로 이전상장을 추진한 기업들을 집계했다. 스팩과의 합병을 위해 심사를 받은 기업들도 포함했다. 심사 과정이 다른 스팩과 리츠의 상장은 포함하지 않았다.
주목할 건 예비심사 승인 결과까지 소요된 기간이다. 한국거래소는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모두 상장예비심사 청구서가 접수되면 45영업일 이내에 결과를 통보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해당 원칙은 현재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예비심사 승인을 받은 103개 기업 중 10분의 1에 미치지 못하는 불과 10곳만이 45영업일 내에 결과를 받아들었다.
물론 거래소의 45영업일 원칙은 법으로 강제된 사안은 아니다. 거래소 역시 형식적 또는 질적 요건 충족 여부에 대한 추가 심사가 필요한 경우 심사기간이 연장될 수 있다는 내용을 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다는 게 IPO 관련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원칙으로 정한 45영업일의 1.5배인 60영업일이 초과한 사례가 75건으로 전체의 73%에 달했다. 두 배인 90영업일이 넘게 소요된 사례도 42건으로 전체의 40%를 넘어섰다. 올해 승인이 이뤄진 103개사가 승인을 얻는데까지 소요된 평균 기일은 85영업일에 달했다.
특히 100영업일을 훌쩍 넘어서는 ‘초장기 심사’ 사례도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월 승인받은 에스바이오메딕스의 경우 심사 승인까지 179영업일의 심사를 거쳤다. 최근 승인받은 노브랜드도 승인까지 165영업일이 걸렸다. 심사를 철회한 기업까지 더하면 기록은 더 높아진다. 이달 15일 심사 철회를 결정한 엔솔바이오사이언스는 장장 198영업일동안 심사를 받은 끝에 철회 결정을 내렸다.
물론 거래소의 늑장 심사에 대한 지적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게 관련업계의 지적이다. 특례상장 기업 증가에 따른 구조적 문제와 함께 거래소의 ‘금감원 눈치보기’가 심화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심사 지연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이날까지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했지만 결과를 통보받지 못한 신규상장 추진 기업은 52곳에 달한다. 이 중 절반이 넘는 28개사는 10월 21일 이전에 예비심사를 청구한 곳으로 거래소가 예비심사를 청구하는 45영업일이 이미 경과한 상태다.
이 중에는 기존의 최장기 심사 기록을 뛰어넘는 사례도 포함됐다. 지난 2월 17일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한 이노그리드의 경우 예심 청구 이후 211영업일이 지난 이 날까지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5월 4일 예심을 청구해 158영업일 째 심사를 받고 있는 피노바이오 역시 초장기 심사 사례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초장기심사’ 기록이 더 길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해가바뀌면 거래소의 인사로 인해 심사 일정에도 차질이 생긴다”며 “거래소 이사장 인선 절차가가 늦어진 점을 고려할 때 심사지연은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 특례상장 '심사 불확실성'에 경영방침 바꾸기도
초장기 심사를 받고 있는 기업 대부분은 특례상장을 추진하는 기업이다. 일반트랙 상장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상장심사에 어느정도 시간이 더 들어갈 수밖에 없다. 주식시장의 성장주 선호 현상에 따라 충분한 성장성을 가진 특례상장이 IPO 시장의 트랜드가 되면서 특례상장 심사 지연은 심각해졌다.
구조적으로 심사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특례상장 회사를 기술기업상장부가 아닌 상장부에서 심사하는 사례도 비일비재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성특례 상장에 도전하는 회사들은 기술력에 중점을 두고 심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대개 일반 트랙을 심사하는 상장부에서 다룰 경우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경우가 많아 시간이 더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금융감독원의 잦은 정정요구 등이 심사 지연을 심화시켰다고 보기도 한다. 금감원은 올 들어 상장 추진 기업에 대해 잦은 정정요구를 했는데, 이에 따라 거래소의 심사 강도가 높아졌다는 시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 7월 금감원의 연속된 정정요구로 틸론이 상장을 철회한 이후 기술특례상장 기업에 대해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모습이 자주 연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심화한 특례상장의 심사지연은 IPO 시장의 ‘노멀’을 바꿔놓고 있다. 그간 특례상장을 추진하는 기업들은 다소간의 심사지연을 고려해 심사기간을 4개월가량으로 보고 예비심사를 청구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특례상장 추진 기업들은 6개월 이상의 심사 기간에 대비해 조달 스케쥴을 잡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스케쥴로 IPO에 도전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발행사는 예비심사청구 이후에는 추가적인 펀딩을 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심사기간이 늘어나면 펀딩 사각지대가 그만큼 늘어나는 셈이다.
실제 이런 불확실성은 예비상장기업의 비즈니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불확실성을 우려하는 예비상장기업은 심사 장기화를 우려해 상장 추진 계획을 미루고 추가적인 펀딩에 나서기도 하고 있다. 특례상장을 염두에 두고 성장과 기술확보에 방점을 찍어 왔던 회사 일부는 상장심사에 대한 우려로 경영방식을 바꿔 일반상장을 도모하기도 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자본시장의 분위기가 아니라 제도적 관문의 문턱이 기업의 성장방향성을 좌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특히 정해진 원칙이 있음에도 지켜지지 않아 IPO 시장의 활성화를 막는 것은 문제가 크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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