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텍 CFO 스토리]큐리옥스 고속상장 비결 "질 다른 매출 그리고 증명"②정홍태 부사장 "한점 의혹없는 선제적 리스크 점검, 본사 이동 '한수'"
차지현 기자공개 2024-01-08 10:32:12
[편집자주]
기업의 곳간지기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역할은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업권별로 그 역할과 무게가 다르다. 바이오텍 CFO는 단순히 재무·회계 등 숫자만 잘 알면 되는 정도가 아니다. 무르익지 않은 기술을 투자자들에게 선뵈며 투자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때로는 기술수출 현장을 직접 뛰며 사업 중심에 서기도 한다. 이 같은 바이오텍 CFO 역할은 투자 혹한기인 지금 시점에 그 중요성이 배가 된다. 기술이 바이오텍의 존재의 이유라면 CFO는 기술의 생존을 이끌어 내는 키맨이다. 최근 주목받는 바이오텍의 CFO를 만나 혹한기 생존전략을 물었다.
이 기사는 2024년 01월 05일 07:35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매출의 질이 다르다. 글로벌 제약사(빅파마) 톱 20곳 가운데 18곳을 고객사로 확보했다. 회사 매출이 전 세계 바이오산업을 리딩하는 기업들로부터 나온다."큐리옥스바이오시스템즈(이하 큐리옥스)의 초고속 상장 완주 비결을 묻는 말에 대한 최고재무책임자(CFO) 정홍태 부사장(사진)의 답이다. 단순히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보다 '어떻게 돈을 벌어들이는지'가 상장 과정에서 규제기관과 시장을 설득하는 데 가장 중요했다는 설명이다. 결국 기업가치를 결정한 건 업의 본질인 기술력이었다.
다만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가졌더라도 사업성과 성장성을 입증하는 건 또 다른 얘기다. 특히 미래가치를 담보로 증시에 입성하는 바이오 기업의 경우 상호 간 신뢰 형성이 필수다. 회사의 영속성을 위한 중장기 전략, 내부통제 등 경영 투명성 등을 갖췄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이는 상장 당시 정 부사장이 각별히 신경을 썼던 지점이기도 하다.
◇단 1년만의 상장, 가장 기본적인 '기술력' 어필
작년과 재작년은 바이오텍에 유독 혹독한 시기였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3고(高)' 위기로 전반적인 시장이 얼어붙은데다 바이오 업종에 대한 한국거래소 상장 심사는 더욱 깐깐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 부사장이 과감하게 큐리옥스 상장을 추진할 수 있던 이유는 자체 기술에 대한 믿음 덕분이었다.
그는 상장을 준비하면서 거래소나 투자자와 소통할 때 독보적인 기술력을 알리는 데 주안점을 뒀다. 세계 최초로 세포분석 공정을 자동화한 플랫폼과 이를 활용해 기술특례로 상장하는 기업 중 이례적으로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게다가 사노피나 머크 등 빅파마를 고객사로 두면서 쌓은 트랙레코드를 매력 포인트로 내세웠다.
정 부사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사가 존재하지 않는 계열 내 최고(first in class) 제품으로 진입장벽이 공고하다는 걸 부각했다"면서 "누가 들어도 알 만한 빅파마가 우리 제품을 샀고 계속 사용 중이라는 점도 어필했다"고 했다.
가장 기본적인 요소에 집중한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가시적인 성과를 창출하는 만큼 거래소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코스닥 예비심사를 청구한 지 2주가 채 되지 않아 거래소와 미팅을 했다. 통상 예심 이후 45일이 지나야 첫 미팅이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관련 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된 셈이다. 그는 거래소에서 먼저 제품을 보고 싶다고 요청했다고도 회고했다.
◇"여러 자회사지만 하나의 회사처럼 관리"…선제적 투명성 강화
하지만 기술력만으로 규제기관 문턱을 넘긴 부족하다. 순탄한 상장의 비결은 이게 다가 아니다. 탄탄한 기술은 필수조건에 불과할 뿐. 증시에 입성한 이후에도 지속해서 성장할 수 있는지, 리스크 관리 체계가 제대로 마련돼 있는지 증명해야 한다. 이에 내부 경영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는 게 정 부사장의 설명이다.
당시 큐리옥스가 당면한 과제는 투명성 강화였다. 회사의 출발점이 국내가 아니었다는 게 고민이었다. 상장 주관사인 키움증권이 거듭 조언한 부분도 한국 헤드쿼터의 역할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었다. 실제 거래소로부터 상장하면 다시 싱가포르로 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질문을 받기도 했다. 정 부사장이 싱가포르 중심의 사업 영역을 전부 한국으로 옮기는 작업에 나선 배경이다.
그는 "싱가포르 법인이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경영부터 생산 등 대부분 사업 분야를 한국 본사로 이전했다"며 "이런 부분에 대해선 미리 키움증권과 수없이 소통하며 철저하게 준비했기에 상장 절차에 돌입한 뒤엔 큰 어려움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선제적으로 내부통제 기능을 점검한 것도 도움이 됐다. 자회사 회계 관리를 점검하는 한편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혜택, 이사회 구성 등을 꼼꼼하게 살폈다. 여러 자회사가 하나의 회사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제도를 갖췄다. 작은 규모라도 돈이 나갈 땐 CEO와 CFO의 허락을 받아야 하게끔 타이트한 재무 관리 구조를 만들었다.
정 부사장은 "생산을 담당하는 한국, 판매를 맡은 미국과 중국, 연구 중심인 싱가포르 등 자회사가 해외 곳곳에 있다 보니 내부 거래가 상당히 많았다"면서 "자회사 매출 인보이스(송장) 하나하나까지 ERP 시스템을 통해 한 번에 확인 가능하도록 만드는 등 투명성 관리에 집중했고 이와 관련해선 거래소 지적을 한 번도 안 받았다"고 했다.
◇반전 스토리 주인공, 상장 핵심은 '진정성과 설득'
물론 고비도 있었다. 수요예측 결과가 기대보다 저조했다. 공모가는 큐리옥스가 제시한 희망 공모가 범위 최하단에서 확정됐다. 다만 일반투자자로부터 선택을 받으면서 반전 스토리를 썼다. 상장 이후 주가가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공모가의 6배인 7만7500원을 찍기도 했다. 정 부사장은 이런 시장의 판단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는 "주가 흐름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지만 회사가 제시한 비전을 시장에서 믿어주는 걸로 생각한다"면서 "아직 큰 매출이 나진 않지만 내실이 있고 중장기 전략이 실현 가능하다고 느끼기에 현재 밸류에이션이 되지 않았을까 예상한다"고 했다. 이어 "CEO가 달변가가 아닌데 오히려 그래서 더 신뢰를 준다고 느껴진다"고도 덧붙였다.
상장 증권신고서에서 큐리옥스가 예상한 흑자전환 시점은 올해다. 업황에 따라 추정치와 실제 실적 간 차이가 생길 순 있지만 성장 궤도에 오르면 실적이 훨씬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바이오 업종 분위기가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나오는 만큼 비용 집행 측면에선 보수적인 기조를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정 부사장은 "예상 매출에 도달하기 시작하면 빠른 속도로 영업이익이 올라갈 걸로 본다"면서 "경영 시나리오에 따라 전방산업 둔화가 예상보다 길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대규모 비용 집행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계획 중"이라고 했다.
그야말로 상장의 모범 케이스를 만든 정 부사장. 그는 상장 전 주기를 경험한 선배로서 기업공개(IPO)를 앞둔 바이오텍에 필요한 덕목으로 '소통'을 꼽았다. 회사 내부 그리고 상장 주관사, 규제기관, 기관 투자자 등과 가능한 많이 교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상장을 준비하면서 거래소의 세세한 요청을 어디까지 받아들일지 분명 고민이 많을 것"이라며 "얼마나 이들의 요구를 수용할 것인지 등에 대해 내부적으로도 미팅을 많이 하고 외부에도 질문 많이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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