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Story]'이건희 컬렉션'이 경매 시장에 나왔다면'부익부 빈익빈' 미술 생태계 교란 vs 한국 미술품 가치 급상승
서은내 기자공개 2024-01-22 14:06:58
이 기사는 2024년 01월 18일 13:5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건희 컬렉션이 기증의 형태로 세상의 빛을 본 지 3년이 돼간다.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을 필두로 전국 지자체 미술관을 통해 여전히 전시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송현동 부지에 2028년을 목표로 이건희 미술관 건립이 확정되면서 미술업계에서는 이같은 순회 전시는 얼마가지 않아 막을 내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이건희 컬렉션은 국보, 보물 지정 문화재가 포함된 고미술품, 국내 근현대 미술품, 세계적인 서양화 작품 등으로 구성된 2만3000여점에 달하는 미술품이다. 고미술품 가운데 이건희 회장의 수집품 1호인 국보,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포함돼 있다. 고갱, 달리, 르누아르, 모네 등 세계적 거장의 작품이나 국내 이중섭 작가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특별전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감정가만 최소 2조~3조원, 경매로 나올 경우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 소장품들을 기증하기로 한 삼성 오너가의 선택은 국내 미술계에 의미있는 변화를 일으켰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재벌가의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대중들에게 미술품 소비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계기를 제공했다.
다만 막대한 상속세 납부 부담은 감내해야 할 부담으로 뒤따르고 있다. 12조~13조원의 상속세와 연부연납에 따른 가산이자를 감당하기 위해 그룹사 주식, 부동산 등을 팔고 주식담보 대출을 받아왔다. 그렇게 6조원 가량을 세금을 내고도 추가로 내야할 세금액이 8조원에 달한다는 얘기도 있다.
실제 지난 15일에도 홍라희 전 리움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블록딜 방식으로 2조원이 넘는 규모의 삼성전자 주식을 처분했다. 이날 이부진 사장이 처분한 삼성물산, 삼성생명 주식을 합치면 상속세 납부를 위해 이들이 현금화한 지분가액은 총 2조7000억원에 이른다.
◇소장품 시장 매각도 검토...미술 생태계 충격 감안 기증 결론
만약 이건희 컬렉션이 기증이 아닌 판매의 형태로 세상에 나왔다면 어땠을까. 미술품 기증, 처분, 세금 등을 놓고 복잡한 경우의 수들이 얽혀있으나 분명 상속세 부담 이슈만 놓고 보면 미술품 처분이 기증보다는 유리했다. 실제로 오너가에서는 막대한 상속세 탓에 소장품 정리와 관련된 컨설팅을 진행할 당시 매각 방안도 고민했다고 한다.
미술품 처분의 가장 안정적인 루트는 경매 시장이다. 세계적인 경매회사인 크리스티나 소더비 또는 국내 경매회사인 서울옥션 등을 통한 방안이 당시 논의됐다고 한다. 하지만 한꺼번에 '국보급'의 미술품들이 '대량'으로 시장에 풀릴 경우 미술 생태계에 미칠 부정적 파장을 감안해 '기증'이 유일한 답이란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정말 매각을 결정했다면 미술 시장에는 부정적 영향만 있었을까. 미술계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두 일치하지는 않는다. 소장품의 판매를 가정해보면 우선 미술품의 성격에 따라 국내 혹은 해외 등 경매 루트의 결정이 달랐을 것이다. 국보급 문화재나 소장가치가 높은 세계적 작품을 고스란히 해외에만 내다팔 수 없는 일이다.
시장에 타격을 입혔을 것이란 예상의 배경은 미술 시장 생태계에 대한 분석을 기반으로 한다. 컬렉터 수요는 한정된 상태에서 이건희 컬렉션이 풀리면 상대적으로 그외의 작품들은 평가절하돼 시장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졌으리란 시각이다. 뿐만 아니라 급작스러운 대량 매물에 기존 매물들의 가격 급락을 예상할 수도 있었다.
미술업계 관계자는 "근래 아트페어를 통해 국내 시장에 해외 작가들의 작품이 많이 공급되면서 시장의 파이는 커졌으나 해외 작품들에만 수요가 몰리면서 국내 창작자들의 작품, 이를 공급하는 국내 갤러리는 외면받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마찬가지로 잠재적인 가치를 검증받은 수준 높은 이건희 컬렉션들이 대량 공급됐다면 그외의 미술품들은 소외될 가능성이 높았다"라고 말했다.
◇ 만약 해외 매각했다면 "이건희 컬렉션 한류처럼 전파...오너 안목 가치 인정 계기"
하지만 정반대의 분석도 가능하다. 국내 컬렉터들이 국외 컬렉터들과 낙찰을 위해 경쟁하면서 오히려 시장이 한단계 성장했을 것이라는 견해다. 양질의 작품이 시장에 늘어나고 그 풍선 효과로 한국 미술품의 가치가 올라가는 계기가 됐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특히 상속이 개시된 2021년 당시에는 미술 시장의 붐이 일어나는 중이었다는 점도 이같은 분석에 힘을 더한다.
크리스티나 소더비 등 글로벌 경매회사를 이용해 런던, 파리, 뉴욕, 홍콩 등 세계 시장에서 지역 특성별로 기획 경매를 계획할 수도 있었다. 한 미술시장 전문가는 "크리스티나 소더비에서 이건희 컬렉션에 대해 빅 이벤트를 열어 경매했다면 전세계에 이건희 컬렉션이란 이름이 한류처럼 전파됐을 것"이라며 "한국 재벌오너들의 안목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는 방향으로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건희 컬렉션 기증의 대상에 있어 국내 뿐 아니라 해외로 일부 기증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었다. 앞선 전문가는 "문화재 환수 개념의 역발상으로 중요도가 높은 해외작가 작품을 해당 지역 공공미술관에 기증하면 한국 문화예술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전파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 물납제도 활용 고민...미국 사례 벤치마크 필요
현재 국내에서는 미술품을 상속세 납부에 물납 형태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뚜렷하지 않다.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으로 제도적으로 물납의 법적 활용이 일부 가능해졌으나 실제로 여전히 한계가 많다는 지적이 있다.
반면 미국은 일찍부터 미술품 기증을 통한 세제 혜택의 법적 기반을 확실히 갖춰왔다. 1917년 미술품 기부에 대한 세금감면이 도입됐고 부유층들이 상속세나 증여세를 낼 필요가 없어졌다. 이는 무수히 많은 미술관 설립으로 이어졌고 미국이 세계 미술시장의 종주국의 지위에 오르는 결정적 배경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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