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감정 사각지대]'진품이냐 위작이냐' 감정체계 허점 또다시 수면 위로① 이우환 위작 이슈 재점화, '미술진흥법' 시행 놓고 엇갈리는 이해관계
서은내 기자공개 2024-11-14 10:41:38
[편집자주]
미술품 물납제 시행, 미술품 담보대출 수요 등 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한 감정 서비스의 수요가 커지고 있다. 미술품 감정은 미술시장 활성화에 중요한 인프라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내 미술품 감정체계의 구조적인 문제는 업계의 오랜 난제로 되풀이되는 중이다. 때마침 감정 관련 법이 개정되며 정부가 감정체계 손질을 예고하고있다. 더벨은 현재 미술품 감정과 관련된 업권의 논쟁과 구조적 문제를 짚어보고 제도 변화의 방향성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11월 12일 07:5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깊은 늪에 빠져있는 저의 불행한 사건이 가끔 식도 부분에 둔통을 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 건강에 이상이 없는 한 앞으로 보다 차원이 다른 작품 세계를 염원하며 노력하고 작품들을 위해 남은 생명을 불태워 갈 각오입니다."1991년 천경자 화백은 지인에게 이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내용 중 자신의 '불행한 사건'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천 화백 작품의 위작 논란을 가리키는 부분이다. 작가의 화업 인생에서 위작 논란이 얼마나 큰 좌절을 주는지를 가늠케한다.
천경자 화백은 국내 미술계 위작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그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미인도'가 공개된 후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항의했다. 그럼에도 감정업계는 진품 판정을 내렸고 끝까지 작가 본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채 의문을 남긴 사례다.
이우환 화백도 위작 이슈로 줄곧 회자된 작가다. 천경자 '미인도' 사건과 반대로 이 화백은 경찰에서 위작으로 결론 내린 작품에 대해 자신이 그린 진품이라고 주장하며 사건이 미궁에 빠졌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만큼 그의 위작 논란은 여전히 민감한 이슈다.
◇ 이우환 '선으로부터' 위작 분쟁, 난처해진 유통업계
한동안 잠잠했던 이우환 위작 시비가 올들어 재점화되는 분위기다. 국내 양대 감정기관이 수억원을 호가하는 작품을 놓고 엇갈린 진위감정을 내려 혼란을 빚고있다. 공신력을 가진 화랑, 옥션, 감정기관이 관련된 작품도 다수여서 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우환은 국내 경매시장에거 낙찰총액이나 거래량 기준 최고 수준 작가로 꼽힌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2023년 미술시장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작가별 경매작품 낙찰총액 기준 이우환은 113억원으로 1위를 기록했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의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결산 2022' 자료에서도 이우환은 최고 거래량 작가로 기록됐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이우환의 작품은 높은 시장성을 인정받고 있다. 글로벌 미술시장 데이터 기관 아트프라이스의 '탑 100 아티스트'에서 2022년 한국 미술가로 이우환이 유일했다. 낙찰총액 기준 88위(낙찰총액 326억원)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국내외 경매시장에서 그의 작품은 총 1032점이 낙찰됐고 판매총액은 약 1211억원에 달한다.
작품의 인기만큼 '위작'의 꼬리표도 계속 따랐다. 올해 연초부터 모 국회의원의 배우자가 이우환 위작 의심 작품을 유통시켰다는 의혹이 일었다. 최근에는 국내 양대 옥션사 중 한 곳에서 거래 이력이 있는 '선으로부터'가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에서 위품 감정을 받아 소장자가 유통사, 감정기관들에 항의를 하고 나섰다.
해당 작품은 과거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의 전신과 같은 한국미술품감정연구원에서도 진품으로 판정받은 작품이란 점에서 더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는 2019년부터는 독립적으로 감정을 시작했으며 그 전까지는 한국미술품감정연구원과 협력해 감정업무를 진행해왔다.
이우환의 작품 위작 분쟁은 그 외에도 다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장자가 작품 매각을 의뢰하면서 감정기관에 의견을 맡겼으나 위작 소견을 받으면서 과거의 진품 감정이나 유통업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식의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 감정체계 손질하는 문체부, 2026년 감정업 신고제 시행
때마침 올해 시행된 미술진흥법에 미술품 감정체계를 보완할 수 있는 조항이 담겼다. 미술진흥법은 올해부터 2026년까지 연차 시행을 앞뒀다. 그 중 소비자가 작가, 유통업자에게 감정서를 요구할 수 있는 제도는 올해 7월 이미 시행됐다. 또 '감정업'을 규정하고 일정한 신고의무를 부여하는 관련법도 2026년 시행이 확정된 상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현재 감정서 표준양식을 만들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감정기관, 옥션, 화랑 등 업계 의견 수렴 중이며 연내 해당 절차를 마무리하고 내년부터 업계에 양식을 배포할 예정이다. 감정서는 미술품의 진위 여부나 시가 감정을 뒷받침하는 보증서의 개념이다.
현재까지 감정서에는 진위감정의 경우 감정 판정의 구체적인 이유 서술 없이 단순히 진, 위의 결과만을 기재된다는 점에서 업계 차원의 어려움이 컸다. 논리적인 근거를 확인할 수 있도록 보증서 체계를 손질함으로써 업권의 애로사항을 해소해보려는 게 감정서 양식 제정의 목적이다.
미술진흥법은 미술품 '감정업'에 대해 '미술품의 진위나 예술적, 문화적, 역사적 의미와 수준을 평가해 그 결과를 표시한 감정서를 발급하는 업'이라 정의하고 있다. 그동안 감정업을 영위할 때 따로 신고 절차가 필요하지 않았으나 2026년 관련법이 시행되면 신고한 경우에만 감정서비스를 할 수 있게된다.
문체부 문화예술정책실 시각예술디자인과 관계자는 "그동안 국가기관에서 미술품 감정을 담당해야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으나 이는 조심스럽게 접근할 부분"이라며 "감정은 정부가 일률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국내 실정에 맞는 방식을 고민해나가고 있고 전문인력, 시설, 감정서 등의 체계 병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감정체계 손질을 위한 논의와 구체적인 제도 시행이 본격화되면서 쟁점에 따라 업권의 의견이 갈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감정서 양식 역시 마찬가지다. 이를 조율하고 실효성 있는 제도가 마련될 수 있을지는 또다른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감정체계의 문제는 수차례 불거졌으나 각각 이해관계 탓에 선진화 움직임은 제한적이었다.
미술품 유통시장에서 위작 리스크는 큰 장애요소다. 한 미술 유통업계 관계자는 "같은 감정기관이라도 감정위원 변화에 따라 감정결과가 바뀌고 정치적 이슈가 당락을 좌우하기도 한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감정의 공신력이 정비되고 업권 전반이 각성하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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