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 레고켐바이오 인수]SK도 노렸던 우량매물, 딜 성사 배경은 '독립성 보장'1년여 전 SK그룹과 M&A 최종단계서 결렬…경영진 유지 및 임원선임 권한 부여
최은수 기자공개 2024-01-19 09:09:18
이 기사는 2024년 01월 18일 07:1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오리온은 사실 레고켐바이오 인수 딜에 있어 '협상 후발주자'였다. 오리온에 앞서 SK그룹 등 쟁쟁한 경쟁사들이 레고켐바이오 인수를 검토했고 실제 딜 막판까지도 진행됐다.하지만 작년 말 뒤늦게 레고켐바이오를 접촉한 오리온이 단 한달만에 속전속결로 'ADC 우량매물'을 거머쥐었다. 오리온이 레고켐바이오의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쪽으로 협상을 진행하면서 협상이 최종 타결하게 됐다.
◇SK그룹도 협상 이어왔지만 '가격 눈높이' 어긋나며 딜 종료
오리온과 레고켐바이오와의 딜을 놓고 시장에선 '놀랍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양측이 기밀유지계약(CDA)을 준수한 데 따른 인수 주체가 알려진 데 대한 반응이지 '레고켐바이오가 팔린다는 사실'에 대한 소감은 아니었다.
레고켐바이오가 M&A 시장에 나왔다는 얘기가 돈 건 이미 2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주 김용주 대표가 고령인데다 지분율이 낮기 때문에 은퇴 준비는 사실 당연한 수순이었다. 현실적으로 승계가 아닌 다음에는 매각은 불가피 한 결단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SK그룹이 가장 먼저 움직였고 레고켐바이오의 M&A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양사는 2년 전 유의미한 M&A 협상을 벌이며 거래가격까지 확정했지만 사이닝 단계서 틀어졌다. 계약상 확정(바인딩)만 하면 M&A가 성사되는 단계에서 막판에서 결렬됐다.
공교롭게도 양측의 갈등상황이 아니라 시장가격이 급변하면서 최종 국면에서 딜이 깨졌다. 5000억원 이상을 베팅할 수 없다는 SK그룹의 기조와 다르게 주가가 급등하면서 딜이 어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레고켐바이오의 주가 슈팅에 대해 M&A 정보가 새어나갔다는 얘기가 들리기도 했다.
업계 고위관계자는 "SK측이 가격에 부담을 느낀 것과 함께 경영권을 둔 입장차로 매력적으로 느끼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며 "더불어 여러 바이오 계열사가 포진한 그룹에 합류하고 나면 공격적인 투자로 사업 성장을 노리는 레고켐바이오의 색채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두 번의 실패는 없다' 오리온, 레고켐 요구조건 전향적 수용+신뢰로 설득
오리온 역시 막바지에서 주가 슈팅이 나며 알테오젠과의 딜이 결렬된 경험이 있다. 그러나 이를 답습하지 않기 위한 세밀한 전략을 세워 작년 12월 레고켐바이오 측을 만난 것으로 확인된다. 먼저 SK측에서 마지노선으로 제시했던 '5000억원'에서 10%를 증액해 베팅하면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이후 오리온이 내놓은 제안은 레고켐바이오 측에서 느끼기에도 파격적이었다는 후문이다. 결과적으로 LOC(Letter of Commentment, 투자확약서)에는 레고켐바이오의 신약개발 사업에 개입하지 않는 자율경영과 차기 경영진 선임 권한까지 보장하는 내용이 두루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오리온이 기존 경영진을 유지하는 속에서 창업 멤버의 구주 인수까지 단행한 점도 눈길을 끈다. 세부적으로 김 대표와 박세진 사장의 보유 지분 절반(140만주)을 기준가 5만6186원에 매입했다. 경영권 유지를 약속한만큼 구주에 프리미엄이 붙진 않았다. 그러나 김 대표가 종종 업계에 엑시트 의향을 내비친 점을 반영한 '현명한 거래'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레고켐바이오가 오리온 손을 잡은 게 잘한 일인지는 시간이 검증한다. 다만 레고켐바이오 입장에선 오리온과의 손을 잡게 되면서 분명한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는 있다.
추후 경영진 선임까지도 레고켐바이오에 맡기겠다고 한 걸로 보아 오리온이 최대한 손을 대지 않는다는 의지를 선언한 것으로 읽힌다. 오리온 내부에는 바이오 전문가가 없는 만큼 현실적으로 레고켐바이오에 대한 경영 간섭은 쉽지 않다. 이번 거래로 오리온 내에서만큼은 레고켐바이오가 바이오 사업 구심점으로 급부상 하게 됐다.
반면 SK그룹에 레고켐바이오가 편입했다면 수많은 계열사 중 하나로 전락했을 가능성이 있다. SK바이오팜을 비롯해 SK팜테코 등 다양한 계열사와 사업이 있다.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라는 새로운 과제가 부여되면서 기존 사업에 대한 열의가 저하됐을 가능성도 있다.
박세진 레고켐바이오 사장은 이와 관련해 "오리온은 오랜 기간 대내외적으로 시장에서 검증된 바이오기업을 찾아다닌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제시한 거래조건을 살펴봤을 때 오리온이 레고켐바이오를 '얼마나 검증된 기업'으로 신뢰하면서 사업을 지지할 지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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