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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듯 다른 '비만약' 신드롬]위고비가 쏘아올린 'GLP-1', 글로벌 100조 시장 열렸다①비만 치료 패러다임 바꾼 노보노디스크 '삭센다', 추격 나선 후발주자

차지현 기자공개 2024-01-25 10:31:48

[편집자주]

비만이 인류를 위협하는 질병으로 정의되면서 약물치료의 새 지평이 열렸다. 의지력 부족 등 개인 문제가 아닌 약물 치료가 필요한 영역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빅파마는 물론 바이오텍들까지 앞다퉈 뛰어들었다. 기존 약물 대비 효능과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GLP-1' 계열 의약품이 등장하면서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는 분위기다. 글로벌 제약사가 시장 선점에 나선 상황에서 국내기업이 설 자리는 있을까. 더벨이 관련 시장 현황과 국내사들의 전략을 짚어봤다.

이 기사는 2024년 01월 23일 10:4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비만 치료제'는 국내는 물론 해외 제약바이오 시장에서도 핫(hot) 한 아이템이다. 작년 9월 관련 약을 만든 덴마크 제약회사 노보노디스크는 2년 넘게 유럽 주식시장 시가총액 1위 자리를 지키던 프랑스 명품그룹 루이뷔통 모에헤네시(LVMH)를 제치는 기염을 토해냈다.

노보노디스크의 기업가치는 덴마크의 작년 국내총생산(GDP)을 뛰어넘을 정도다. '비만 치료제'가 인구 약 600만명 북유럽 작은 나라의 경제적 위상을 높인 셈이다. 노보노디스크가 미국과 유럽 시장에 내놓은 비만 치료제 '위고비'는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다. 작년 3분기 누적 매출만 약 4조원에 달한다.

비만 치료제 시장은 이제 막 개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 성장할 여력이 있다는 얘기다. 비만이 치료가 필요하고 또 가능한 질병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데다 기존 치료제 대비 효능과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새로운 기전 약물까지 등장했다.

◇21세기 유행병 비만, 패러다임 바꾼 '신약' 등장

지금이야 만병의 근원으로 지목되지만 사실 비만이 인류를 위협하는 주요 요인으로 떠오른 시점은 비교적 최근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96년 비만을 전 세계 퍼지는 '유행병'이자 '치료가 필요한 만성질환'으로 규정했다. 이후 비만이 의지력 부족 등 개인의 문제가 아닌 약물 치료 등으로 관리해야 할 대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러나 비만 치료제 개발은 순탄치 않았다. 세계 최초로 알려진 디니트로페놀(DNP) 성분 약물은 심각한 부작용으로 인해 결국 사용이 금지됐다. 이제껏 시장을 주도해 왔던 향정신성의약품과 지방 분해효소 억제제 역시 체중 감량 효과가 높지 않고 안전성 이슈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 비만 치료에 새 패러다임을 제시한 곳이 노보노디스크다. 비만치료제로선 처음으로 'GLP-1 유사체' 기반 약물 '삭센다'를 내놨다. GLP-1 유사체는 음식을 섭취하면 소화기관에서 분비하는 체내 호르몬과 비슷한 구조를 띤다.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혈당을 낮추고 뇌에 신호를 보내 식욕 억제도 돕는다.

삭센다의 출발은 비만이 아니었다. 당뇨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체중이 감소하는 부작용을 발견하고 방향을 틀었다. 우수한 효능을 내는 새로운 기전 약물의 탄생 그리고 이미 당뇨병 치료제로 사용하면서 검증한 안전성. 이는 삭센다가 2014년 출시 5년 만에 전 세계 비만 치료제 시장의 절반 이상을 석권할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지키려는 자 vs 뺏으려는 자…비만약 골드러시 시대

노보노디스크의 도전은 이어졌다. 삭센다보다 효능과 편의성을 모두 개선한 비만치료제를 출시했다. 덴마크 경제를 뒤흔든 위고비가 그 주인공이다. 1일 1회 투약하는 삭센다와 달리 위고비는 1주 1회만 투약하면 된다. 또 삭센다가 56주 동안 9.2% 체중 감량 효과를 보인 데 비해 위고비는 68주 동안 15.6% 감량 효과를 나타냈다.

여기에 킴 카다시안,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등 해외 유명인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위고비는 출시 5주 만에 삭센다 4년 치 판매량을 돌파했다. 작년 1~3분기 노보노디스크가 위고비로만 벌어들인 금액은 약 4조1248억원. 전년 동기 대비 492% 급증했다.


패스트 팔로워가 나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일라이릴리가 작년 1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젭바운드' 허가를 따내며 도전장을 내밀었다. GLP-1에 더해 GIP 등 두 가지 호르몬에 작용해 위고비보다 뛰어난 체중 감량 효과를 입증한 약물이다. GIP는 체중 감량 효과가 미미하지만 GLP-1과 함께 작용하면 시너지 효과를 낸다.

이외 글로벌 제약사(빅파마)들도 속속 경쟁에 가세했다. 암젠이 중점 파이프라인으로 비만 치료제를 낙점했고 아스트라제네카는 중국 에코진으로부터 비만 치료제 후보물질을 도입했다. 이어 로슈가 비만치료제 후보물질을 보유한 미국 카못테라퓨틱스를 4조원에 인수했다. 머크(MSD)와 리제네론도 비만 치료제 개발을 본격적으로 선언했다.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는 차세대 비만치료제를 개발해 선두 자리 지키기에 나섰다.

◇"약발 계속된다", '시장 잠재력 및 적응증 확장성'에 경쟁 가열

작년 8월 기준 노보노디스크의 전 세계 비만 치료제 시장 점유율은 무려 94%를 기록했다. 젭바운드는 최고 효능을 자랑하며 위고비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최근 시장 진출을 발표한 기업들은 아무리 빨라도 임상과 허가에 최소 몇 년이 소요된다. 그간 개발 현황에 비춰보면 비만 치료제가 쉽게 도전할 만한 분야도 아니다. 표면상으론 불가능해 보이는 싸움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후발주자들은 GLP-1 계열 약물 출시로 이제 막 비만치료제 시장이 개화했다는 점, 조금 늦게 진입해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시장이라는 점에 베팅한 모습이다. 만성질환이라는 높지 않은 진입장벽으로 언제든 경쟁 구도가 바뀔 수 있다는 기대감 역시 빅파마들이 앞다퉈 관련 시장에 진출하는 배경으로 거론된다.

일단 GLP-1 계열 치료제 성장성에 대해선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작년 말 GLP-1 유사체 개발을 '올해의 혁신적인 연구 성과' 가운데 첫 번째로 선정했다. GLP-1 기반 약물이 비만뿐만 아니라 심혈관계 질환 등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면서 다른 질환으로 확장할 여지도 생겼다.

비만 치료제 시장 자체의 전망도 밝다. 현재 비만의 경우 약물 치료 비중이 3%가 채 안 돼 아직 미충족 의료 수요가 충분하다. 질병 치료는 물론 미용 측면에서도 꾸준한 수요가 있는 만큼 잠재력도 크다. 미국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비만 치료제 시장이 지난해 60억달러(약 8조원)에서 2030년 1000억달러(약 130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 관계자는 "특정 질환에 대한 새로운 기전 의약품 출시는 곧 시장이 열린다는 의미와도 같다"면서 "GLP-1 계열 약물 출시와 함께 비만 치료제 시장이 열렸고 과거 약물보다 우수한 안정성과 효능을 보이면서 치료 방향까지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어 시장이 커질 요인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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