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vs SK하이닉스]중국공장 '업그레이드'로 대응, 미 대선에 쏠린 눈②낸드, D램 대비 원활…심플한 삼성·머리 복잡한 SK
김도현 기자공개 2024-02-02 10:36:33
[편집자주]
'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 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1월 29일 15:0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중국사업장을 두고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미·중 갈등 장기화로 정상적인 운영이 여의치 않은 탓이다. 반도체 공장 특성상 차세대 제품 양산을 위해 설비, 생산시스템 등을 변경해야 하는데 한동안 해당 작업이 사실상 불가능했다.불행 중 다행으로 지난해 미국 정부가 두 회사를 '검증된 최종사용자(VEU)'로 지정하면서 현지 생산라인 가동에 숨통이 트였다. 다만 변수는 남아있다. 중국의 반격으로 인한 미국의 규제 강화다. 올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있어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 변화 가능성도 유념해봐야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대외적인 상황을 지켜보면서 긴밀한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앞서 미국은 중국공장의 첨단 반도체 5%, 범용(레거시) 반도체 10% 이상 생산량을 늘리지 못하게 했다.
이에 양사는 VEU로서 현지 메모리 공정을 업그레이드해 생산성 및 수익성을 높일 계획이다.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중국공장의 존재가치를 유지하면서 현지 시장 공략을 이어가려는 묘수다.
◇삼성 '236단 낸드', SK '4세대 D램' 생산 예고
미국과의 관계, 주춤한 중국 경기 등으로 다소 정체돼 있으나 우리나라에 중국은 여전히 핵심적인 수출처다. 한국 업체가 주도하는 메모리 시장은 더욱 그렇다. 현재 삼성전자는 시안과 쑤저우, SK하이닉스는 우시·다롄·충칭 등에 생산법인을 두고 있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중심이다. 전체 낸드 생산량에서 시안공장 비중은 약 40%다. 쑤저우에서는 패키징, 테스트 등 후공정을 담당한다.
삼성전자도 작지 않은 규모지만 SK하이닉스는 더 방대하다. 최대 거점인 우시는 D램 생산기지다. 우시에는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자회사인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도 들어섰다.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를 통해 확보한 다롄공장, 후공정을 다루는 충칭공장까지 가동 중이다.
당초 양사는 중국공장을 운용하는 데 차질이 불가피했다. 미국이 반도체 지원법 등을 통해 중국 투자를 최소화하는 법적 조치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시안, 우시 등에서 생산능력(캐파) 증대 또는 구식장비 교체 등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지난해10월 미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상으로 별도 허가 절차나 기한 없이 미국산 반도체 설비를 중국공장에 투입할 수 있는 VEU 제도를 마련하면서 한숨 돌리게 됐다.
우선 삼성전자는 시안공장에서 생산하는 최선단 제품을 6세대(128단)에서 8세대(236단)로 높일 계획이다. 낸드는 평면의 선폭을 줄여가는 대신 3차원(3D)으로 쌓는 방식으로 성능을 개선하고 있다. 시스템반도체에서 쓰이는 극자외선(EUV) 기술까지 도입된 D램보다 난도가 낮은 편이다. 최첨단이 아닌 첨단장비만으로도 고부가 상품을 찍어낼 수 있다는 의미다.
현시점에서 삼성전자의 최상단 낸드는 236단이다. 올해 상반기 중 9세대(280단) 양산을 앞둔 가운데 통상 1~2세대 아래 제품을 만들어온 시안공장의 라인 전환이 필요했다. 때마침 여력이 생긴 만큼 차세대 낸드 제조장비를 반입할 것으로 관측된다. 하반기 반등이 예상되는 낸드 시장 대응 차원도 있다.
작년 10월 삼성전자는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낸드의 경우 중국 리스크가 상당 부분 해소됐기에 선단공정 전환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면서 "원가 및 제품경쟁력 강화를 위해 9세대 낸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9세대 일정 맞춰 중국공장 개편을 예고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2025년경 시안에서 8세대 낸드가 본격 양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SK하이닉스다. 앞서 언급한 대로 D램은 낸드보다 공정 수준이 높다. 따라서 낸드보다 고성능 설비가 필수적인데 걸림돌은 EUV다. 메모리 업계는 10나노미터(nm) 4세대(1a) D램부터 EUV 도입을 본격화한 바 있다. SK하이닉스의 최선단 D램은 5세대(1b)다. 우시 역시 이천보다 1~2세대 느리게 진행되는 만큼 3세대(1z)에서 4세대(1a)로 전환이 이뤄져야 할 시기였다.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장비는 투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나 EUV는 미국이 허용하지 않은 영역이다. SK하이닉스는 1a D램 중 1개 레이어에서 EUV 노광을 사용 중이다. 우시의 D램 팹은 SK하이닉스 생산량 중 40~45%를 차지한다. 이 정도 규모에서 계속 구형 품목만 양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SK하이닉스는 이전부터 대안으로 여겨온 '제작 이원화'를 택하기로 했다. 우시에서 부분 완료된 D램을 이천으로 들여와 EUV 공정을 처리하고 다시 우시로 보내는 방식이다. 일원화 대비 페널티가 분명하지만 저부가가 된 1z D램까지만 만드는 것보다 단가가 높은 1a D램을 현지에서 생산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결정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1a D램까지는 이런 식으로 넘긴다 해도 EUV 공정이 5개 레이어에 쓰이는 1b D램부터 또 다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SK하이닉스의 고민이 계속되는 이유다.
◇만만찮은 중국 반격·트럼프 컴백 '변수'
이들의 여러 고민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미·중 분쟁의 지속 여부다. 수년째 간극이 좁혀지지 않고 있어 단기간 내 종결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흐름 속에서 중국의 행보가 주목을 받는다. 미국 제재를 뚫어내고 하나둘씩 반도체 굴기를 실현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EUV 없이도 7나노 반도체를 양산하는가 하면 자국 메모리 업체가 급성장하는 추세다.
더 큰 이슈는 10달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전 대통령의 재대결이 유력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재출범하면 반도체 판도가 뒤집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기존 보조금 정책은 물론 중국 공세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공장 전환을 서두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갈수록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허용 범위 내에서 신속하게 현지법인을 최적화하려는 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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