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2월 02일 07시17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조병규 우리은행장은 평소 조용하고 과묵한 성향이다. 먼저 앞에 나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보단 상대의 말을 듣고 공감하는 형태로 대화를 풀어나간다. 임원들과의 회의 시간에도 여러 의견을 듣고 종합하며 경영의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후문이다.그런 조 행장이 최근 황영기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과 비교되고 있다. 황 전 회장은 전장의 장수처럼 앞에 나서 좌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 있는 스타일이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황영기의 단검’이다. 그는 금융권에서 검투사로 통했다. 강한 추진력과 저돌적인 업무 스타일 때문이다. 우리은행장 시절이던 2006년 영업본부장들에게 단검이 든 지휘봉을 선물하며 “전장에 나서는 장수처럼 영업에 매진하라”고 지시했던 일화가 대표적이다.
전혀 다른 성향의 두 CEO가 20여년의 차이를 두고 비교되는 이유는 최근 개최된 우리은행 경영전략회의 때문이다. 조 행장은 “1등 은행 DNA를 다시 일깨우고 선택과 집중의 영업전략을 통해 2024년 시중은행 중 당기순이익 1위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조 행장이 1등 은행을 목표로 제시한 이후 우리은행은 물론 은행권 전체에 파장이 제법 크다. 현재 4대 대형은행 체제가 출범한 이후 그 어떤 우리은행장도 1등에 도전하지 못했다. 우리금융지주를 출범해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금융지주 차원의 순위 반등을 노리는 선에서 옛 명성을 되찾는 시도가 있었다.
여러 현실적인 상황과 한계를 염두에 둔 전략적 차원의 목표설정이란 평가도 있었다. 장밋빛 전망으로 현실을 외면하기 보단 조금 더 실현 가능한 목표부터 차근히 이뤄가자는 뜻이란 해석도 나왔다. 그러나 그 안에는 이미 은행업 1등을 할 수 없다는 패배감이 깔려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조 행장은 1등 DNA를 되찾자는 짧고 낮은 말 한마디를 던졌다. 화려한 수사도 굵고 톤 높은 목소리도 내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와 다름 없이 차분한 어조로 새 경영전략을 제시했다. 이 말 한마디의 울림은 어떤 것보다 컸다. 누구도 감히 할 수 없었던 그 말을 통해 조직을 깨어나게 만들었다.
올해 은행권 경쟁은 치열할 전망이다. 고금리 장기화와 경기불안 등으로 영업환경이 얼어붙었다. 정부와 당국의 압박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풀어야할 숙제도 많고 넘어야할 산도 많다. 조 행장은 이런 상황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1등 은행을 목표로 제시하며 강한 자심감을 보이고 있다.
우리은행의 전신인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은 과거 기업금융을 주무기로 은행권을 호령했던 강자였다. 조 행장은 1등 은행을 경험했던 거의 마지막 세대다. 더 늦기 전 옛 영광을 되살릴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정교한 수사와 화려한 퍼포먼스 없이 덤덤하게 던진 조 행장의 한마디에 강한 힘이 느껴진 이유는 그 간절함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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