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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라이벌 열전]저가수주 관행 극복할까...고부가가치·친환경 '패러다임 전환'②차세대 경영진 과제 '수주의 질'...조선사간 저가수주 경쟁 폐해

허인혜 기자공개 2024-02-08 07:28:19

[편집자주]

기업들은 그 분야에서 앞서나가기 위한 경쟁을 하기 마련이다. 기업뿐 아니라 그 기업을 이끌어온 인물들도 라이벌이 된다. 기업의 대표로 참전하는 만큼 맞수전에서는 절친도, 친척 관계도 잠시 무용지물이다. 더벨이 지금 경쟁에 불이 붙은 라이벌들의 무기와 히스토리, 전망 등을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2월 06일 16:1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권오갑 HD현대 회장은 2017년 국정감사에서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정부가 세금으로 지원해준 회사가 시장에서 적자 수주를 하니 우리도 그 가격을 따라가야 하고 그게 너무 힘들다'는 게 요지였다. 이 발언은 오랜 기간 국내 조선사들이 들었던 '실적은 역대급, 영업이익은 바닥 수준'이라는 힐난과 일맥상통한다.

국내 조선사들은 배가 안 팔려서 망했던 게 아니다. 오히려 배가 너무 잘 팔렸는데 그 배들의 단가를 너무 낮게 책정했던 게 문제였다. 일본과 중국 등 우리와 선박 건조 수주 경쟁에 나섰던 국가들이 너무 가까웠고 국내 조선사끼리의 경쟁도 치열했다보니 저가 수주가 이어졌다. 그 기록들이 한동안 국내 조선사들을 괴롭혔다.

때문에 조선업계의 차세대 경영인들에게 수주의 질은 꼭 풀어야 하는 숙제다. 한 곳은 오랜 기간 리더의 부재로 저가 수주를 쌓아왔다. 선별 수주라는 목표와 실제 계약 사이 간극이 컸다. 다른 한 곳도 국내 조선사 사이 경쟁이 치열해지며 저가 수주를 피하지 못했다.

새로운 리더가 새 기류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물꼬는 정기선 HD현대그룹 부회장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트고 있다. 고부가가치 선박이 핵심이다. 최근 조선업계에서 고부가가치 선박은 곧 친환경 선박이다.

◇리더 없던 한화오션, 목표와 달랐던 현실

한화오션의 전략 변화는 리더가 기업을 어떻게 변화시키는 지를 보여준다. 정 부회장은 2023년 CES에서 한화그룹의 한화오션 인수를 두고 '적자 수주 관행이 없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김 부회장의 절친이자 라이벌인 정 부회장이 김 부회장의 전략 힌트를 미리 던진 셈이다. 김 부회장이 한화오션을 품에 안은 뒤 가장 먼저 꾀한 변화도 저가 수주 타파다.

한화오션은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산업은행 체제 아래에 있었다. 대주주는 있었지만 확실한 리더십이 없었다는 의미다. 리더십의 부재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키웠다. 한화오션은 2000년대 초기부터 선별 수주 전략을 내세웠다. 하지만 실제 레코드와 목표는 차이가 있었다.
조선업계 불황기 당시 대우조선해양의 옥포 조선소 전경. 사진=한화오션

한화오션은 조선업 불황이 시작되던 2009~2010년 매출 확대에 매진했다. 2009년 한해에만 29척의 선박 등을 수주하며 글로벌 1위에 올랐지만 이면에는 저가 수주의 그늘이 있었다. 이 시기 한화오션과 경쟁했던 한 업체가 "도무지 우리보다 싼 가격을 낼 수가 없는데 대우조선해양이 더 낮은 가격을 써냈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 계약들은 한화오션이 가장 늦게 적자를 탈출하게 된 원인이 된다. 당시 평가가 상황을 대변한다. 수주 실적은 경이롭지만 영업이익률은 바닥이라는 뼈아픈 평가가 나왔다.

건조기간이 짧지 않은 선박 수주의 특성상 저가 수주의 잔여량은 오랜 기간 한화오션의 실적을 깎아내렸다. 같은 기간 HD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도 저가수주를 쌓았지만 한화오션이 가장 수주량이 많았다. 한화오션은 지난해까지도 연간 적자를 냈다. 영업손실은 1918억원으로 전년 대비 88% 이상 줄어든 게 위안이다.

◇한화오션, 가이던스 못채워도 선별수주 주력

한화오션은 올해 흑자전환을 자신한다. 그 중심에는 김 부회장의 명확하고 확고한 수주 전략이 있다. 친환경 선박 위주의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한화그룹에 인수된 뒤로 선별 수주 전략을 못박고 있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수주 목표치를 약 59% 채웠다. 3분기 이미 수주 목표치를 20% 채운 상황이라 공격적인 수주 없이는 목표 달성이 불가능했다. 한화오션은 이전처럼 매출량 자체를 늘리기보다 내실 다지기에 집중했다. 수주총량은 적었지만 초대형 암모니아 운반선(VLAC) 등 친환경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량이 늘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 연차총회에서 무탄소 추진 가스운반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화그룹

김 부회장식 선별 수주는 연간 가이던스 발표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화오션은 올해부터 매년 1월 발표하던 선박 수주 목표치를 내놓지 않았다.

HD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한화오션 조선3사는 매년 한해 수주 목표치를 발표해 왔다. 선박 건조가 주요 수익원인 만큼 한해동안 이 정도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선언이다. 한화오션은 목표치 발표가 질보다 양을 추구하는 경쟁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보고 목표치는 내부 참고용으로만 쓰기로 했다.

◇HD현대, 암모니아 운반선(VLAC) 등 친환경 선박 발주 급증

정 부회장의 포트폴리오 전환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정 부회장의 강점은 조선업에 대해서는 김 부회장보다 경험이 풍부하고 길다는 점이다. 고부가가치 선박과 친환경 선박 부문도 마찬가지다. 정 부회장은 경영 수업을 시작했던 30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고부가가치 선박과 친환경 선박에 천착하고 있다.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지난해 미국 CES에서 프레스 콘퍼런스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정 부회장은 한화그룹의 한화오션 인수를 두고 '저가 수주 관행이 해소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진=HD현대

조선업계에게 고부가가치와 친환경 선박으로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었다. 때문에 현대가 3세대 선(宣)의 시대가 시작됐을 때부터 정 부회장의 목표는 고부가가치 선박이었다. 정 부회장은 상무 시절인 2015년 글로벌 가스 행사인 가스텍(GASTECH)에서 HD현대의 LNG선과 LNG-FSRU(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저장·재기화 설비)를 홍보할 만큼 이 분야에 일찌감치 눈을 떴다.

3세대로서는 가장 먼저 이끌어온 만큼 성과가 이미 두드러진다. HD현대의 중간 조선 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은 올해 1월 이미 한해 수주 목표의 3분의 1을 채웠다. 135억달러 중 46억5000만달러에 해당한다.

암모니아 운반선(VLAC) 등 친환경 선박 발주가 급증하면서다. 이달 그리스 캐피탈가스로부터 액화이산화탄소 운반선 2척을 수주하며 전체 수주한 선박의 수만 38척이다. 이처럼 수주 잔량으로 따져보면 HD현대의 조건이 한화오션보다 좋다. HD현대는 이미 일감이 넘치는 만큼 고르고 고른 수주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정 부회장은 수주 목표치는 공개했지만 전년대비 보수적인 전망치를 내놨다. HD한국조선해양은 올해 수주 목표를 158억2800만달러(약 20조6000억원)로 설정했다. 지난해 수주량인 257억8500만달러보다 38.6% 적은 수치다. 이미 3년치 이상의 일감을 쌓은 데다 저가 수주는 피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HD한국조선해양의 초대형 암모니아 운반선 조감도. 사진=HD한국조선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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