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라이벌 열전]'친환경 선박' 맞붙은 3세간 경쟁①8년 전 '친환경 선박은 돌파구' 예견한 정기선, '원래 친환경 베테랑' 김동관
허인혜 기자공개 2024-02-07 10:10:03
[편집자주]
기업들은 그 분야에서 앞서나가기 위한 경쟁을 하기 마련이다. 기업뿐 아니라 그 기업을 이끌어온 인물들도 라이벌이 된다. 기업의 대표로 참전하는 만큼 맞수전에서는 절친도, 친척 관계도 잠시 무용지물이다. 더벨이 지금 경쟁에 불이 붙은 라이벌들의 무기와 히스토리, 전망 등을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2월 05일 17:1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핏줄만으로 후계자의 적통성을 가리는 시대는 끝났다. 전 세대의 회장들도 뛰어난 인물이 많았지만 옛날 후계자를 지정하던 방식을 고려하면 발군을 골라뽑아 그랬던 것은 아니다. 형제간 다툼은 더러 있었지만 오너 일가이기만 하면 자격을 증명할 필요는 없었다.재계 3·4세대로 넘어오며 이제는 회장의 자녀들도 능력을 검증받게 됐다. 아버지의 능력이 출중했던 후계자들은 부모의 사업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자기만의 영토를 얼마나 잘 꾸리는 지도 시험대에 오른다.
대표적인 인물들이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현대그룹 해체 전부터 조선업에 천착해온 정몽준 아산산회복지재단 이사장을 아버지로 뒀다. 대를 이은 라이벌이자 재계 3세 중 가장 유명한 맞수이기도 한 두 사람은 한화그룹의 한화오션 인수 후 해상전을 치르고 있다.
김 부회장과 정 부회장 모두 3세로서 자기만의 무기를 찾아나섰고 최근들어 성과가 두드러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같은 패를 집었다. 친환경 선박이다.
◇영업 뛰어들자마자 '친환경 선박이 돌파구' 예견한 정기선
정기선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중공업 경영인으로서 외부 활동을 하기 시작한 건 2016년부터다. 2015년말 전무로 승진하며 업무 영역이 기획과 재무에서 조선·해양영업 총괄로 확대됐다. 1982년생인 정 부회장이 서른 넷의 젊은 나이였을 때다.
이 시기 정 부회장의 일거수일투족은 HD현대의 미래로 점쳐지며 주목을 받았다. 이때부터 현재까지 정 부회장이 '꽂힌' 영역이 친환경 선박이다.
2016년만 해도 친환경 선박은 주류취급을 받지 못했다. 정 부회장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직 시장에서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같은 자리에서 정 부회장은 친환경 선박이 선박 시장의 브레이크스루(돌파구)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정 부회장은 친환경 선박이 돌파구가 될 것을 어떻게 예견했을까. 마케터로서의 경험이 친환경 선박 개발 의지의 토대가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내보다 친환경 선박 수요가 빨랐던 해외 시장을 경험한 점이 주효했다.
2015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가스텍을 통해 LNG선과 LNG FPSO, LNG FSRU 등을 소개했다. 2017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노르시핑'도 좋은 예다. 북유럽 선주들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을 알고 부스를 LNG선, LNG벙커링 기술로 꾸렸다. 스페인과 그리스 등 해외 시장에서 친환경 선박 영업은 정 부회장의 몫이었다.
◇'친환경 선박 AS' 낙점한 정기선, '책임지고 입증해라' 멘토 권오갑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정 부사장이 2014년부터 선박 A/S 사업을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 설립한 회사다. 본인이 책임지고 경영능력을 입증해야 한다고 판단해 대표이사를 맡겼다".
2016년 12월 정 부회장은 HD현대마린솔루션(당시 현대글로벌서비스)의 출범을 주도한다. 정 부회장은 2017년말 대표에 선임됐다. 권오갑 당시 현대중공업 사장(현 HD현대 회장)이 이듬해 기자간담회를 통해 배경을 밝혔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정 부회장의 공로라는 점을 부각시켜준 셈이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현대중공업의 조선사업부와 엔진기계사업부, 전기전자시스템사업부에서 선박 엔지니어링 서비스 사업 부문을 분리해 설립한 전문 법인이다. 선박의 정비와 부품 판매, 수리, 개조, 성능개선 등 선박 애프터서비스(A/S)에 주력해 왔다.
HD현대마린솔루션을 출항시킨 이유는 국제해사기구(IMO) 등의 글로벌 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 선박의 친환경선박 개조 수요가 많을 것을 정 부회장이 일찌감치 감지했다는 평가다. 이 결심을 믿고 실행까지 이어지도록 한 주요 인물은 당시 현대중공업의 최고경영자일 수밖에 없다. 권오갑 회장이다.
이렇듯 정 부회장의 친환경 선박 의지는 경영 수업 멘토인 권오갑 회장과 시너지를 냈다. 권 회장은 2016년 신년사를 통해 기술 개발을 강조하는 한편 스마트십과 에코십, 해양플랜트 국산화를 미래 먹거리로 점찍었다.
◇'원래' 친환경 베테랑 김동관, 한화오션 '친환경행' 당연한 행보
김동관 부회장은 친환경 선박 분야에선 루키다. 그도 그럴것이 한화그룹이 재수 끝에 대우조선해양을 품은 지 이제 8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한화오션의 친환경 선박 수주 성과는 최근 물이 올랐다. 지난해 11월 4척의 9만3000㎥ 암모니아 운반선을 시작으로 1월 말까지 7척의 선박 건조 계약을 따냈다.
대우조선해양이 파고 속에서도 친환경 선박을 개발해온 덕이 크다. 여기에 원래부터 친환경 분야를 자신의 먹거리이자 그룹의 미래 동력으로 낙점해온 김 부회장의 베테랑 면모도 한몫을 했다. 그동안 한화가 갖고 있는 화약·재래식 무기 제조업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는 데 김 부회장의 역할이 컸다.
김 부회장은 한화솔루션을 이끌며 태양광과 수소 등 친환경 사업에 천착해 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는 전기추진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는 등 저탄소 하이브리드 동력시스템 개발에도 시동을 걸었다. 도심항공교통수단(UAM) 사업에도 친환경을 접목했다.
한화오션도 한화그룹의 친환경 행보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초대형 암모니아 운반선(VLAC) 5척을 수주했다.
무탄소 선박의 상용화까지 목표한다. 이 목표는 친환경 해운사 설립으로 본격화할 방침이다. 김 부회장이 직접 다보스포럼을 통해 밝힌 계획이다. 무탄소 추진 가스 운반선을 개발해 자체 해운사를 통해 안전성을 검사한다는 내용이다. 친환경 해운사가 출범하면 '김동관표' 친환경 선박 사업도 본격적으로 출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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