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2월 08일 07:5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흑역사' 콘텐츠가 있다. 기자에게는 2008년 호기롭게 도전한 '아모레퍼시픽 아이오페 에어쿠션 UCC 공모전' 출품 영상이 그중 하나다.아이오페 에어쿠션은 글로벌 메이크업 문화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 원조 '쿠션 팩트'다. 당시 아모레퍼시픽은 기존에 없던 신제품을 내놓고 새로운 방식의 홍보를 위해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 공모전을 추진했다. 타이틀은 공모전이었으나 규모가 크지 않아 가볍게 도전할 수 있었다.
화장 시간을 단축시켜주고 수정 메이크업의 번거로움을 해소한 이 제품이 마음에 들어 영상 출품 전부터 친구들에게 입소문을 냈던 기억이 있다.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요란한 설명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햇볕이 내리쬐는 골목길에 서서 퍼프에 제품을 묻혀 조금 과격하게 덧바르는 모습만 원테이크로 촬영했다. 당시 모델이었던 배우 이나영이 광고 속에서 취한 포즈와 똑같이 사진만 찍어 섬네일로 붙였다. 영상은 특별한 편집 없이 사이트에 업로드했다.
낮은 퀄리티에 실소가 터지는 이 영상에 누군가가 호응하기 시작했다. 높은 조회 수 덕분에 얼떨결에 인기상을 수상했고 '아이오페 에어쿠션 1기 홍보대사' 활동으로 이어졌다. 제품의 장·단점을 분석해 개선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일부 피드백은 후속 제품에 반영이 됐다. (물론 기자의 아이디어는 단 한 가지도 채택되지 않았다.)
아모레퍼시픽은 쿠션 팩트의 장점을 강화하고 단점을 보완한 업데이트 제품을 지속적으로 내놓으며 승승장구했다. 2015년에는 포브스가 선정한 '100대 혁신기업'에도 선정됐다. 홍보대사 활동 영상 속 스물세 살의 촌스러운 모습은 부끄럽지만 혁신 제품의 시작을 함께한 것에 대한 뿌듯함은 여전히 남아있다.
쿠션 팩트를 통해 '글로벌 브랜드에 기술을 전수한 토종 브랜드'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아모레퍼시픽은 언젠가부터 중국이라는 키워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형성했다. 면세점이라는 특정 플랫폼을 필두로 중국 소비자의 구매 파워가 국내 화장품 업계를 주물렀다. 역시나 높은 중국 의존도는 화장품 업계에 쓴맛을 안겼다. 중국 매출 비중 축소로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반토막났다.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외 지역 경쟁력 확보에 주력하고 온라인 채널 다변화 등으로 반등을 노리는 전략을 내세웠지만 아쉽게 느껴졌다. 채널과 영토를 확장해 제품을 더 많이 파는 것이 실적 개선에 도움은 되겠지만 이 또한 미봉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행인 점은 혁신 제품으로 시장을 선도해 본 1등 기업의 이기는 습관이 아직 남아있다. 실적 악화에도 R&D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며 '맞춤형 화장품' 등 초격차 상품 개발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뷰티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며 과거처럼 전 세대를 아우르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쿠션 팩트 같은 제품을 출시해 성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메이드 인 코리아'를 호령했던 저력을 바탕으로 뉴 뷰티(new beauty) 시대의 한 획을 긋는 제품을 또 내놓을 수 있기를 응원한다. 진부하지만 재도약의 조건은 마케팅이나 유통이 아닌 '제품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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