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 아트]아모레퍼시픽, 회장이 애정하는 미술관의 힘세계적 컬렉터 서경배 회장, 고미술과 현대미술 조화
서은내 기자공개 2024-01-24 09:19:02
[편집자주]
기업과 예술은 자주 공생관계에 있다. 예술은 성장을 위해 자본이 필요하고 기업은 예술품에 투자함으로써 마케팅 효과를 얻는다. 오너일가의 개인적 선호가 드러나는 분야이기도 하다. 특히 문화예술 지원을 통해 사회에 공헌한다는 점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성격도 갖고 있다. 기업이 운영하는 예술 관련 법인의 운영현황과 지배구조, 소장품, 전시 성향 등을 더벨이 짚어봤다.
이 기사는 2024년 01월 22일 13:4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미술품 '덕후'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 여러 국가들의 현대 미술품, 한국의 전통 고미술품을 수집하면서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과 함께 세계 200대 컬렉터로 수차례 이름을 올리고 있다.기업가로서의 그의 삶 역시 미술을 빼 놓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서 회장의 부친인 고(故) 서성환 선대회장 때부터 미술에 대한 사랑이 대를 이어 내려져오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은 그의 미술을 대하는 관점, 취향이 그대로 묻어나는 장소다. 고미술, 현대미술 컬렉션을 바탕으로 신구의 조화를 이룬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기업이 운영하는 미술관 가운데 높은 수준의 기획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수퍼스타급 네임밸류를 지닌 작가들을 잘 조망하고 있다는 게 미술계의 평가다.
다른 유수의 기업 미술관들이 재단을 통해 운영되는 것과 달리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은 CEO 직속 조직으로 본사에 소속된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미술관이 아모레퍼시픽 사업 자체와도 분리할 수 없는 상징성을 지닌 것으로 해석되며 보다 적극적인 미술관 사업 진출 형태로 볼 수 있다.
그룹 소속 재단인 아모레퍼시픽재단이나 아모레퍼시픽공감재단 등과도 미술관 사업은 관련성이 없다. 전신인 태평양박물관 역시 재단 소속은 아니었다. 통상 재단 운영 미술관들이 공익법인 공시를 통해 회사 현황을 공시하고 있는 것과 달리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은 CEO 직속 부서로 배치돼 미술관의 인력 규모나 수익 등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연구소·공장 곳곳 설치미술, 본사 건물 자체가 미술품
아모레퍼시픽은 오래 전부터 본사, 연구소나 공장 건물 곳곳에 미술품들을 전시해왔다. 한때 경기도 오산 공장 건물의 로비에는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이 좋아하는 예술가 고 백남준 선생의 비디오아트 '거북선'이 설치되기도 했다.
용인 기술 연구소의 외부에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소장품 중 하나인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의 빨간색 '러브' 조형물 등 창의적인 설치 미술품들이 놓였고 새 본사 건물이 지어지기 전 옛 사옥에도 곳곳에 유명 작가의 미술품이 전시됐다.
용산 신사옥이 건립되면서부터는 더 과감한 시도가 전개됐다. 건물 자체가 세계적인 건축가가 만든 예술품일 뿐 아니라 미술관이 아예 본사 사옥 1층으로 들어온 것이다. 아모레퍼시픽 본사에 들어서면 왼쪽에 미술관 입구가 있고 계단을 통해 한층 내려가면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아모레퍼시픽 본사는 영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의 작품이다. 그는 절제된 아름다움을 지니면서도 편안하고 풍부한 느낌을 주는 백자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얻어 건물을 하나의 큰 달항아리로 표현했다. 건물 중정과 야외정원에는 레오 빌라리얼(Leo Villareal)과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의 작품이 설치됐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전신은 1979년 설립된 태평양 박물관이다. 태평양 박물관은 아모레퍼시픽 창업자 서성환 선대회장이 수집한 미술품을 기반으로 출발했다. 2005년 디 아모레뮤지움으로, 2009년에 아모레퍼시픽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초기에는 장신구, 화장품, 차 문화 등 아모레퍼시픽의 사업과도 연관성이 있는 공예품, 도자기가 수집, 전시됐다. 이후 미술관은 점차 한국의 전통 미적 감성을 담은 회화로 저변을 넓혀갔다. 2000년대 후반 해외로 사업을 확장하면서부터는 전 세계 현대미술 전반으로까지 수집 분야를 넓혀 현재 소장품은 1만여 점에 이른다.
◇ 백자대호·수월관음도 고미술부터 수퍼스타급 작가 현대미술까지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대표적인 고미술 소장품에는 조선시대 보물 '백자대호'가 있다.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백자대호를 가리켜 "조용히, 그러면서 당당히 빛나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했다. 해외 소재 한국 문화재 환수의 일환으로 일본에서 수집한 '수월관음도'도 대표 소장품이다. 화려하고 섬세한 표현으로 고려시대 불교 회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설치미술가 스털링 루비(Sterling Ruby)의 작품인 <창문. 솜사탕.>이나 미국 개념미술가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의 <무제(영원히)>도 소장전에 등장하는 컬렉션들이다. 현재 아모레퍼시픽은 바바라 크루거 같은 개념미술가 중 한명인 로렌스위너의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통상 고미술 전시는 2년에 1회 정도, 현대미술 전시를 연 2회 정도 진행하고 있다. 고미술은 주로 한국의 미를 대표하고 알릴 작품들을 선별해 기획하고 있다. 현대미술의 경우 국제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들 중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젊은 작가를 주목하고 있다.
국내 역량있는 신진 작가를 발굴, 지원하는 것도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중요한 프로젝트다. 2013년부터 오산, 제주, 용인, 서울에서 현대미술 프로젝트 ‘에이피 맵’을 이어왔다. 2022년에는 지난 10년간의 전시를 결산하는 기획전으로 한국 작가 단체전 '에이피 맵 리뷰'를 열기도 했다.
◇ 리움 출신 전시 기획자들 영입 주요 인사 눈길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은 주력 전시의 구성 비중이나 특성으로 볼 때 대기업 미술관으로 가장 명성이 높은 삼성의 리움미술관과 비슷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고미술을 기반으로 한 소장품 전시를 이어가면서 기획전을 통해 현대미술의 다양한 장르를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최근까지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주요 인사들이 삼성의 리움미술관 출신 전문가들로 구성된 것을 그 배경으로 꼽아볼 수 있다. 2022년 말까지 아모레퍼시픽 관장직을 역임한 전승창 관장이나 우혜수 아모레퍼시픽 부관장 모두 리움미술관 학예실장 출신들이다. 현재 관장직은 공석인 상태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다른 기업 재단 미술관들과 달리 아모레퍼시픽 내의 조직으로 돼 있다. 현재 CEO 직속 사업부 형태이며 미술관 관장은 미등기 임원으로 아모레퍼시픽 임원 리스트에 올라있는 식이다. 현재까지 인력 규모나 미술관의 재무 상황, 출자 현황 등은 외부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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