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2월 26일 16:4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매출 1등 갤러리 만들어 보겠다."

갤러리신라가 업계에서 메이저 갤러리로 발돋움 하기 위한 기반을 닦아가고 있다. 대구에 설립된 갤러리신라는 최근 서울에서 사업을 확장하며 삼청동에 이어 이태원 분점까지 터전을 넓히고 있다. 서울 사업을 맡고 있는 이는 이광호 갤러리신라 대표의 장남인 이준엽 갤러리신라 디렉터(34)다.

이준엽 디렉터는 2세 갤러리스트들 가운데 특유의 마케팅 수완을 발휘하며 갤러리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는 것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더벨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업계 매출 1위를 달성한 후 은퇴하는 게 꿈"이라며 "삶과 접목된 예술을 모토로 갤러리를 기업화하고 미술 유통체인 전체를 아우르는 사업을 펼칠 것"이라며 포부를 내세웠다.


◇ 비상업적 갤러리 사업, 수익극대화 초점으로 2.0 가동

이 디렉터는 원래 스페인식 햄인 하몽 생산에 관심이 있었다. 스페인문학과 광고·홍보학을 전공하고 멕시코로 건너가 하몽학교에서 수학하던 중 부모님의 강권으로 한국에 돌아와 갤러리 사업을 맡게 됐다. 이 디렉터는 "하몽이 주는 그 예술적 식감은 예술 비즈니스에 참여한 계기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현재는 홍익대 미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이 디렉터는 미술이 본 전공은 아니었으나 갤러리스트였던 부모님을 따라 어린 시절부터 해외 아트페어를 돌아다녔다. 그는 "어릴 때부터 내겐 삶과 예술이 분리된 개념이 아니었다"며 "지금은 거장이된 작가들을 친한 삼촌, 아저씨라 부르며 컸고 그분들의 작업을 생활 곳곳에서 접하며 그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친밀하게 지켜봤다"고 말했다.

갤러리신라는 단색화 거장들을 키워낸 국내 주요 갤러리들 중 하나다. 1992년 설립 후 단색화 충성파 갤러리로 역할을 했며 당시 환금성이 없던 작가들의 작품을 호의로 사들여주며 비상업적인 갤러리 사업을 전개했다. 갤러리신라를 설립한 이광호 대표는 스타트업 작가들을 지원하는 엔젤투자자였던 셈이다.

이준엽 디렉터는 "2016년 경 단색화가 해외에서 각광을 받고 작가, 작품 가치가 올라가기 시작할 때 수익이 나기 시작하는 포인트에서 아버지는 과감히 해당 분야를 떠나보냈다"며 "해외 새로운 움직임을 국내에 소개하기도 하고 키시오 스가 등 모노화 원조격인 일본 작가들도 국내에 알리며 상업적이지 않은 작업을 주로 전개했다"고 말했다.

부친의 갤러리 비즈니스가 비상업적인 성격을 띤 것이라면 이준엽 디렉터가 향하는 갤러리신라의 새로운 버전은 수익 극대화에 초점이 맞춘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이 디렉터는 갤러리 사업의 틀을 시스템화 함으로써 하드웨어를 갖추고, 인지도와 경쟁력을 높이는데 집중해왔다. 브랜드, 상업제품들과 콜라보를 통해 수익모델 다각화까지 꾀하고 있다.

이 디렉터는 "자본력이 있는 글로벌 갤러리들은 마케팅, 프레스, 전시기획, 세일즈, 수장고 등 각 영역이 전문화, 구분돼 있으나 국내 갤러리들은 대부분 구분이 모호하다"며 "작가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그들을 성장시키려면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체로서 전문성을 갖추고 갤러리 자체의 인지도와 평가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의 노력들은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 국제적인 아트페어에 참가하는 갤러리로 인정받게 되면서 글로벌한 수준의 경쟁력을 증명하기 시작했다. 이 디렉터는 "오는 9월 갤러리신라는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 아트페어의 3층에서 전시하는 갤러리로 선정됐다"며 "국내에서 10여개 안팎의 갤러리만 참여 기회를 받을 수 있는 행사"라고 말했다.
◇ 기업+작가 콜라보 유도, 미술유통 체인 진출 수익 다각화 모색

최근 이 디렉터의 관심은 이태원 분점에서 펼쳐낼 새로운 실험이다. 4월 첫 전시로 오픈 예정인 이곳에선 상업적 제품들과 예술 작품을 접목한 콜라보(협업)를 기획하고 있다. 이 디렉터는 "작품이 컬렉터 수장고에 박혀만 있지 않고 삶에서 진정으로 향유되도록 하고 싶다"며 "예술이 있는 삶을 모토로 특별한 공간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분점 1층에는 거대한 고기 냉장고가 배치되고 실제 고기가 진열될 예정이다. 2, 3층에도 가구나 상업적 제품들을 놓기로 기획하고 있다. 갤러리의 흰색 벽을 뜻하는 '화이트 큐브'에 미술품이 아닌 상업적 오브제를 침투시켜 틀을 깬 발상의 전환을 보이겠다는 게 이준엽 디렉터의 그림이다.

그는 "점차 콜라보레이션으로 기업과 작가의 협업을 만드는 게 작가 생계를 유치하는 축으로 주목받는 상황"며 "콜라보를 많이 유도해 수익을 작가에게 주고 갤러리는 유지비를 가져가는 형태의 테스트베드를 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디렉터는 3년 전 서울 삼청동의 3평 짜리 공간에서 갤러리신라 서울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삼청동 1, 2호 분점을 확대하고 최근 이태원까지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갤러리신라 2.0으로 수익의 틀을 만들었다면 3.0 버전은 미술관급 대형 갤러리를 만들어 운송, 물류, 수장고, 표구제작 등 유통체인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