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더 현장투어]두산에너빌리티 출신 엔지니어, 20년째 '동맹' 유지한 비결은[인터뷰] 남경훈 엔알텍 대표
김해(경남)=허인혜 기자공개 2024-02-28 09: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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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홀로 움직이지 않는다. 국내 굴지의 제조기업들은 수백·수천 곳의 납품사와 공생하지 않으면 하나의 제품도 내놓기 어렵다. 완제품과 최종 제조사의 성과를 받치는 협력사들의 현황을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벤더사의 주력 제품과 현황, 연구개발 방향은 곧 국내 제조산업의 흐름을 보여주는 생생한 지표다. 더벨이 벤더사의 주요 현장을 직접 방문해 탐방하고 사람들을 만나 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2월 27일 07:5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금도 유수의 제조사 대표를 선임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구분이 엔지니어 출신이냐, 그렇지 않느냐다. 제조업 등 기업의 분류가 모호해진 지금은 CEO의 소양도 다양해졌지만 여전히 '엔지니어 출신'이라는 수식어는 제조업체 대표에게 훈장이다.기계공학과 학석사를 취득하고 삼성중공업과 두산에너빌리티 연구원으로 사회에 첫 발을 뗀 남경훈 엔알텍 대표(사진)는 엔지니어 코스의 정석을 밟은 인물이다. '현장을 아는 전문가'였던 남 대표의 이력은 수많은 협력사와의 거래 물꼬를 트게 해줬다.
◇"소음은 남경훈을 찾아봐" 두산에너 가스터빈 국산화에 성장
2013년 두산에너빌리티는 대형 가스터빈 국산화를 결심한다. 이탈리아의 기업을 사들여 기술력을 확보하려 했지만 의회의 반대에 부딪혀 인수가 무산되면서다. 주변에서는 만류했다. 당시 가스터빈 제조 부품 대부분은 해외 기업에 의존했다. 그만큼 기술 담장이 만만치 않았다. 가스터빈은 기계 공학의 꽃이자 정수로 불린다. 부품간 간격을 머리카락 5분의 1 수준인 0.02mm까지 맞춰야 했다.
두산에너빌리티만의 힘으로 이루기는 어려운 꿈이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각지에서 기술 명장과 협력사를 찾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소음과 진동, 수질과 대기 환경 조절 제품을 생산하는 엔알텍이다.
남 대표는 "대형 가스터빈의 경우 흡기와 배기 부문에서 소음이 발생하는데 관련 규정치 이내로 데시벨을 낮춘 제품을 설계할 능력이 필요했다"며 "두산에너빌리티에서 가스터빈을 국산화시키며 참여기업으로 합류하게 됐다"고 부연했다.
남 대표는 1994년부터 2000년까지는 삼성중공업에서, 2000년부터 2002년까지는 두산에너빌리티에서 소음진동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소음 저감 기술을 맡길 적임자로 남 대표를 찾았다. 남 대표는 8년간의 연구원 생활을 거친 뒤 소음진동기술사 자격증까지 취득한 베테랑 중 베테랑이었다. 두산에너빌리티와는 2002년 사업 설립 초부터 교류가 있었지만 더 본격적인 공조가 시작된 셈이다.
엔알텍이 당시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조선해양용 소음기를 만들어 냈던 경험이 주효했다. 남 대표는 "국내 최초로 FPSO(부유식 원유생산 저장 하역 설비)에 들어가는 시스템을 제작한 경험을 갖췄는데 두산에너빌리티에서 이 부분을 눈여겨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협력사 공조 쌓자 해외 중공업도 물꼬"
엔알텍은 출범 초기부터 두산에너빌리티와 삼성중공업, HD현대중공업 등 국내사와 협력 관계를 구축해 왔다. 연구원으로 몸담았던 곳들을 중심으로 먼저 거래의 첫 발을 디뎠고 품질과 기술력뿐 아니라 납기일, 원가 경쟁력 등을 유지해온 점이 공조의 배경이라고 남 대표는 설명했다.
엔알텍의 매출 중 15~20%는 해외 판매로 나온다. 일본과 중국, 미국, 대만, 카자흐스탄,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 수출 국가만 40여개국이 넘는다. 국내 벤더사가 해외 업체와의 협력 물꼬를 트기는 쉽지 않았을 테다. 비결은 국내 기업과 단단하게 쌓아둔 협업 이력이다.
남 대표는 "글로벌 제조사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파워젠'이라는 국제 박람회에 참여해 해외 고객사를 유치하려고 했다"며 "첫 참여가 2013년께였는데 엔알텍 홀로 영업활동을 했다"고 전했다. 예나 지금이나 자국보호 정서가 강한 해외 기업들의 틈을 비집는 게 쉽지는 않았다. 남 대표는 "두 번째는 두산에너빌리티 협력사 자격으로 참여해 도움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처음 인사를 나누고 거래를 트기까지 3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실사와 입찰, 의견 조율도 국내 업체보다는 배로 힘이 들었다. 그래도 한 번 거래를 튼 곳과는 10년 이상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지금은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과 비쓰비시파워, IHI, 스미토모중공업, 가와사키중공업 등과 거래 중이다. 미국은 GE Power, Nooter Eriksen 등이 엔알텍의 제품을 쓴다.
◇"협력사 파고는 곧 벤더사의 매출 하락…해결책은 고객사 다변화"
공조가 깊다는 건 그만큼 협력사의 환경에 따라 매출액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어떤 산업이든 풍랑의 시기는 있다. 벤더사로서 엔알텍의 해법은 협력사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었다.
남 대표는 2014년 설비 투자와 이듬해 업계 불황이 맞물리며 매출이 크게 하락한 해를 회고했다. 남 대표는 "매출 성장에 대비해 공장 이전과 과감한 설비 투자를 집행했는데 2015~2016년 조선해양과 건설 플랜트 업계 불황으로 매출이 고점 대비 30% 곤두박질쳤다"고 말했다.
조선해양 분야의 외풍은 다른 산업체와의 협력으로 극복할 수 밖에 없었다. 남 대표는 "플랜트와 가스터빈 등의 분야에 사업을 영위한 덕을 봤다"며 "2012년에 HD현대중공업과 공동 개발한 질소산화물저감장치의 매출이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증가해 2015~2016년 매출액 손실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전했다.
남 대표는 "엔알텍의 성장은 두산에너빌리티, HD현대중공업 등 새로운 산업에 끊임없이 진출을 시도하는 대기업의 도움에 기반을 두고 있다"며 "또 많은 기업들이 개개별로 업의 특성을 갖고 있듯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기업들마다 잘하는 것이 따로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기업이 모든 기술력을 다 갖추고자 한다면 경쟁력을 키우기 어려울 것"이라며 "차별화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각각의 협력사 들과 기술적, 인력적으로 융합하여야 서로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고 본다"고 말을 맺었다.
△남경훈 대표는
1965년생
부산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 학·석사 졸업
1994~2000 삼성중공업 기전연구소 소음진동연구팀
2000~2002 두산에너빌리티 기술연구원 소음진동연구팀
2002~현재 엔알텍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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