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온을 움직이는 사람들]선대회장 '배터리 의지' 잇는 최재원 수석부회장⑥SKC·SKT 등 돌며 글로벌 사업·재무 역량 축적...2010년대 이후 배터리 사업 주도
정명섭 기자공개 2024-03-06 07:45:58
[편집자주]
배터리 업계 후발주자인 SK온의 성장 속도가 매섭다. 2023년 역대 최대 매출(12조8972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매분기 적자 폭을 빠르게 줄여나가고 있다. 배터리 수주 잔고는 400조원까지 늘려 중장기 성장의 기틀을 닦았다. 다만 2024년은 전기차 업황 둔화에 따른 '배터리 보릿고개'가 드리운 상황. 올해 첫 분기 흑자에 도전하는 SK온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SK온의 승부수는 새 리더십이다. 이석희 신임 대표이사 사장을 중심으로 전면에 배치된 제조업 전문가들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더벨은 올해 SK온의 성장을 주도할 리더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이 기사는 2024년 03월 05일 08:1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오너 경영의 가장 큰 장점은 뚝심 있게 투자를 밀어붙일 수 있다는 점이다. 특정 사업이 오랜 기간 막대한 투자와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전문경영인은 그 사업을 지속해서 추진하기 어렵다.그런 점에서 SK그룹의 배터리 사업은 오너가의 의지가 담긴 결과물이다. 1982년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의 '에너지 축적 시스템' 개발 제안은 무려 40년이 지난 후에야 그룹의 미래 사업으로 떠올랐다. SK온은 글로벌 톱5 완성차(현대차그룹·포드·폭스바겐·다임러그룹)를 고객사로 둔 글로벌 점유율 4위 배터리 기업으로 거듭났다.
선대회장의 배터리 사업 의지를 잇는 인물은 최재원 수석부회장(사진)이다. 그는 선대회장의 2남 1녀 중 차남이다. 형은 최태원 SK그룹 회장, 여동생은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이다.
그는 배터리 R&D 성과가 무르익기 시작한 2010년대부터 사업 확장을 위해 힘을 실었다. SK그룹이 여러 부침 속에서도 배터리 사업을 공격적으로 키울 수 있었던 근간에는 '최재원' 이름 석자가 있다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재무에 소질 보인 최재원, SKT 신세기통신 인수전서 역할
최 수석부회장은 1963년생으로 고려대에서 물리학과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브라운대에서 학사(물리학과) 과정을 마쳤다. 물리학과를 택한 건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선대회장의 뜻과 연관이 있다.
선대회장은 생전에 경제를 이해하려면 물리와 화학, 생물 중 하나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모든 현상은 과학에서 출발한다"는 게 선대회장의 생각이었다. 최 회장이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최 수석부회장에게 물리학은 어려운 학문이었다. 재능을 타고난 천재들과 경쟁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그는 회고한다. 이후 최 수석부회장은 재료공학으로 전공을 바꿔 석사 과정을 마쳤다.
첫 사회생활은 SK그룹(당시 선경) 뉴욕지사 경영기획실에서 시작했다. 당시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전부 경영대학원(MBA) 출신이었다. 재무·금융 분야를 경험해보지 못한 최 수석부회장은 그들만의 언어가 생소했다.
2년 정도 근무한 그는 자본시장에 대한 지식과 이해도를 쌓기 위해 하버드대 MBA 과정을 마쳤다. 이후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일본계 야마이치증권에 입사해 채권 판매와 주식거래 등의 업무를 경험했다. 그가 배움을 멈추지 않은 건 '지식이 곧 실력'이라는 선대회장 가르침 덕분이었다고 한다.
최 수석부회장은 과학보다 파이낸싱이 적성에 맞았다고 한다. 그는 사내외에서 "숫자에 밝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MBA 과정에서 집중적으로 수학한 경험 덕분이었다.
최 수석부회장이 SK그룹에서 본격적으로 몸담은 시기는 1994년이다. SKC 사업개발팀장으로 입사해 기획부장과 사업기획담당겸 해외사업담당 임원(상무보), 경영지원본부장 겸 사업기획실장(전무)을 차례로 역임했다.
그가 SKC 사업기획담당겸 해외사업담당 임원이던 1996년 당시 가장 큰 프로젝트는 미국 조지아주 폴리에스터 필름공장 건설이었다. 최 수석부회장은 16개주 120여개 후보지를 직접 돌아다니며 협상에 임했고 조지아주로부터 부지 기본 설비와 도로 건설 등을 이끌어냈다.
공장에 필요한 기계를 들이기 위해 독일과 일본 기업들과 가격협상에 나서기도 했다. 최 수석부회장은 이때의 경험이 "향후 SK그룹의 전략적 제휴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최 수석부회장의 재무 역량이 돋보인 시기는 1999년 SK텔레콤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다. SK텔레콤은 당시 주식 맞교환 방식으로 신세기통신을 인수했다. SK텔레콤 지분 6.5%와 신세기통신의 최대주주인 포항제철(현 포스코그룹)의 보유 지분 27.6%를 교환하는 거래였다. 이는 최 수석부회장이 낸 아이디어로 알려졌다.
주식을 맞바꾸는 전략적 제휴는 지금은 흔한 사례지만 당시만 해도 선진적인 파이낸싱 기법이었다. SK텔레콤은 주식 교환으로 1조7000억원에 달하는 현금을 아끼면서도 이동통신 시장점유율을 57%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2010년대 배터리 R&D 성과, '영업맨' 자처
최 수석부회장은 2000년대 중반부터 에너지 계열사를 이끌었다. 최 회장과 최 수석부회장이 에너지와 통신 사업에 주력하고 고(故)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자녀인 최신원 전 회장과 최창원 부회장(현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겸 SK디스커버리 부회장) 등이 건설과 화학 계열사 지분을 늘리던 시기다.
최 수석부회장은 2004년 SK엔론(현 SK E&S) 대표이사 부회장에 취임해 2012년까지 회사를 이끌었고 2006년부터 2011년까지는 SK가스 대표이사도 겸임했다.
그가 에너지 사업을 총괄하던 당시는 그룹의 배터리 연구개발(R&D) 투자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 시기다. SK그룹은 1982년 선대회장의 에너지 축적 시스템 개발 제안 이후인 1985년 기술지원연구소를 설립했고 1991년에 처음 전기차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배터리는 지금과 같은 리튬이온 기반의 배터리가 아닌 태양열 기반의 배터리였다.
전기차용 배터리를 개발한 건 1996년 관련 사업개발 조직을 신설할 때부터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6년 6월 SK의 배터리를 장착한 일본 토요타의 하이브리드차가 미국에서 시운전에 성공했다. SK그룹은 이 시기를 그룹 배터리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첫 수주 성과는 2009년에 나왔다. SK㈜에서 분할한 SK에너지(SK이노베이션 전신)는 독일 다임러그룹 계열인 미쓰비시 후소와 하이브리드 자동차용 배터리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2010년에는 현대차 전기차 '블루온'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데 성공했다.
최 수석부회장이 배터리 사업에 본격적으로 힘을 싣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부족과 환경문제가 지속해서 불거지는 상황에서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차 시장이 더 커질 것으로 봤다. 이는 선대회장이 1980년대에 SK가 정유회사에서 '종합에너지 회사'가 될 것을 주문한 것과 맞닿아있다.
최 수석부회장은 2010년 이후부터 배터리 '영업맨'을 자처했다. 충남 서산공장 착공(2011년), 헝가리 코마롬 공장 기공식(2018년), 미국 조지아주 공장 기공식(2019년)에는 최 회장을 대신해 참석했다. 2020년 최 회장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회동 당시에도 최 수석부회장이 동석했다. 중국과 유럽의 완성차업계 등 주요 고객사들과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할 때도 그는 늘 전면에 있었다.
재계에선 "최 회장이 앞장서서 공격적 투자의 판을 깔아주고 있다면 최 수석부회장은 관련 현장을 빠짐없이 다니며 지원군 역할을 맡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SK그룹 'BBC' 한 축 SK온 3년째 주도..."올해 고비 넘기면 큰 성장"
취업제한이 풀린 2021년 10월 이후 그의 행선지는 예상대로 SK이노베이션에서 물적분할한 배터리 계열사 SK온이었다. 그는 각자 대표이사를 맡아 글로벌 성장전략과 네트워킹을 책임지고 있다. 이듬해 SK그룹은 'BBC(배터리·바이오·반도체)'를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낙점하면서 최 수석부회장의 역할은 더 막중해졌다.
출범한 지 2년이 넘은 SK온은 외형 성장에 성공했다. 전기차 고도 성장기와 맞물려 SK온의 연매출은 12조9000억원, 누적 수주금액은 400조원까지 늘었다. 생산능력은 출범 당시 40GWh에서 작년 말 89GWh로 두 배 이상 커졌다.
그 사이 SK온은 현대차그룹과 포드, 폭스바겐, 다임러그룹 등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을 고객사로 확보했다. 작년 말 기준 SK온의 글로벌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10.4%(중국 시장 제외)다. LG에너지솔루션과 중국 CATL, 일본 파나소닉에 이어 넷째로 높다.
최 수석부회장은 올해도 글로벌 경영 활동에 방점을 두고 있다. 파트너사가 몰려있는 주요 전시회 현장은 대부분 참석한다. 작년 독일 9월에도 독일 뮌헨에서 열린 'IAA 모빌리티'를 깜짝 방문한 데 이어 올해 1월에도 미국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4'에서 파트너사들을 만나 사업 기회를 모색했다.
그는 SK온이 '배터리 한파'로 불리는 올해만 잘 넘기면 큰 성장을 거둘 것이라고 직원들에게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최 수석부회장은 최 회장, 최 의장 등 SK 오너가 2세 중 가장 활발하고 사교적이라는 평이다. 언론 노출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전부터 회사를 대표해 여러 협상 자리에 나선 것도 이런 성격 덕분이라는 평이다.
그는 평소 최 회장을 창의적인 경영인이라고 평가한다. 이에 선대회장 타계 이후 법적으로 지분을 상속받을 수 있었음에도 최 회장에 지분을 몰아주기 위해 상속 포기 각서에 서명한 것도 형의 실력과 비전 등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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