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3월 20일 07:1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점점 대세가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시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취향을 맞춰주는 알고리즘 덕이다.이전에는 관심이 없는 주제들을 헤치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만나야 했다. 그렇게 헤매는 과정 속에서 '엇, 나 이거 좋아하네?'라는 의외성들을 발견했다. 지금은 휴대폰에 엄지만 대면 나를 위한 영상을 대령한다. 이 목록이 대세라 내게 뜨는 것인지, 내가 좋아해서 보이는 것인지 헷갈린다.
요즘은 '너 이것도 좋아할 것 같은데'까지 왔다. 나와 내 주변의 관심사일 법한 것들을 버무려 보여준다. 주변과 바로미터(barometer)의 합성어인 '주변미터'의 결과다.
최근 내게 자주 추천되는 콘텐츠는 직구다.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 언박싱 쇼츠가 주로 뜬다. 그도 그럴 것이 쇼핑에 관심이 많고 다꾸·뜨개질 류의 공예를 좋아하는 30대 여성에게 주변미터에 입각한 알리와 테무 추천은 당연하다. 굳이 세대층을 따져보자면 10대부터 30대까지의 주변미터는 알리와 테무로 채워지지 않을까.
하지만 이제 갓 나온 트렌드에서 조금 멀어진 탓인지, 내가 주변미터로 느끼면 이미 대세다. 대세가 되고서야 주변미터로 아는 게 범인이라면 주변미터일 때부터 대세인 것을 읽어야 사업가가 아닐까. CJ대한통운과 한진은 직구가 한국에서 별 인기를 못끌던 시기 협업에 나섰다. 성공을 예견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과실이 달았다. 알리는 지난해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하반기 상륙한 테무도 확장세가 가파르다. 현상만은 아니어서 CJ대한통운과 한진의 실적과 주가를 견인한 주인공도 알리와 테무로 여겨진다.
직구의 성장은 물류기업에게 반갑지만 높은 기여도는 양날의 검이다. 알리와 CJ대한통운의 계약만료는 이전까지는 별일이 아니었다면 올해부터는 업계의 흐름을 바꿀 만한 사건이다. CJ대한통운이 당분간은 더 알리의 배송을 책임질 전망이지만 더 큰 산이 남았다. 알리가 직접 물류사업에 뛰어들 가능성이다.
직구의 인기는 신드롬 수준이다. 한국에 뿌리를 깊게 내린 대형 유통사가 자체배송 시스템을 도입한다면 택배사들에는 직격타다. 일각에서는 시스템 구축 비용을 이유로 알리의 직배송이 아직 요원하다지만 그래도 알리바바그룹이다. 원한다면 시간의 문제다. 대형 유통사의 진출로 물류업계가 위기를 맞은 경험은 이미 해봤다. 쿠팡과의 반목 때다.
알리의 공습은 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여태까지는 얼토당토않은 품질이어도 감내할 만한 압도적으로 싼 가격으로 승부를 걸었다. 이제는 한국에 대형 고객센터를 차려 질의 차이도 만들겠다는 각오다. 물류센터 건립을 포함해 3년간 1.45조의 투자도 앞뒀다.
축포를 터트린 지 얼마 안된 물류업계에 초치기는 미안하지만 속도전의 시대다. 이미 다음 스텝을 고민할 때가 아닐까. 우리집 앞 택배 상자에 CJ대한통운이 아닌 알리익스프레스 배송 마크가 찍힐 날도 상상할법 하고, 딱히 취향이 특별하지는 않은 나의 주변미터가 되면 이미 대세고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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