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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의 딥체인지, AI]대이은 '반도체 꿈', AI발 훈풍은 1등 기회될까②1978년 진출 후 좌절, 하이닉스 인수로 재도전…삼성 위협 HBM 키플레이어로

정명섭 기자공개 2024-07-10 09:59:41

[편집자주]

'회장님의 어떤 것'은 특별하다. 최고 경영자가 주목한 기술이나 제품이 곧 기업의 미래이자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거나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오너의 역할은 아니겠지만 의사결정권자의 무게감은 더없이 막중하다. 더벨이 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진들이 낙점한 기술·제품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전망해 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7월 08일 15:4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고 최종현 선대회장이 이끄는 SK그룹(당시 선경) 1980년 유공(현 SK이노베이션) 인수로 단숨에 재계 5위로 뛰어올랐다. 원사와 옷감 등을 취급하는 섬유사업의 안정화를 위해 정유사업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수직계열화를 치밀하게 준비한 결과였다.

당시 최 선대회장은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 등 그룹 수뇌부들과 미래 사업 전략을 놓고 끊임없이 토론했다. 에너지 이외에 먹거리로 낙점된 분야는 반도체와 생명과학(바이오 등)이었다.

SK그룹은 1978년 경북 구미 전자단지 인근 반도체 전문단지에 입주 신청서를 내고 선경반도체를 출범했다. 그러나 2차 석유파동(오일쇼크)이 발발하면서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고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라는 정부 지시에 선경반도체를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앞서 삼성그룹이 반도체 시장에 진출해 사세와 기술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점도 고려됐다. 삼성은 1974년에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반도체 산업에 처음 발을 내디뎠다.

◇30년 만에 선대회장 '반도체 꿈' 이룬 최태원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2011년,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다시 반도체 산업에 진출할 기회가 왔다. 하이닉스 반도체(현 SK하이닉스)가 매물로 나오면서다. 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는 2001년 현대그룹 왕자의 난으로 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이후 투자비를 감당하지 못해 채권단의 관리(워크아웃)를 받아왔다. 사명을 하이닉스로 바꾼 것도 이때다.

하이닉스는 반도체 업황이 개선된 2005년 7월 워크아웃에서 벗어났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쳐 그해 영업적자 약 2조원을 기록, 다시 위기에 직면했다. 채권단은 매각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2009년 효성그룹이 인수 대상으로 부상했으나 논의 과정에서 절차가 중단됐다.


SK그룹은 2011년 재시도된 매각 입찰에 참여했다. 당시 최 회장의 가장 큰 고민은 정유와 석유화학, 이동통신 외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것이었다. 2011년에 반도체 시장은 다운 사이클 국면에 있었다. 특히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 제품(D램, 낸드플래시 등)은 연일 최저가를 경신하고 있었다.

이에 대부분의 경영진이 하이닉스 인수에 반대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적자 기업이라 그룹에 부담을 키울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최 회장은 "가장 안 좋은 시기에 반도체 기업을 인수해 키워보자"고 임직원들을 설득했고 SK텔레콤은 2011년 11월 하이닉스 채권단과 3조4000억원에 회사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하이닉스 인수 본입찰을 이틀 앞두고 검찰은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은 최 회장을 조사하기 위해 SK그룹 본사와 계열사 10여곳을 압수수색했다. 일각에선 최 회장이 구속 수감을 면하려고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SK그룹이 SK하이닉스 인수 완료한 이후인 2013년 최 회장이 법정 구속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최 회장은 반도체 업황 둔화에도 SK하이닉스 투자를 늘렸다. 인수 첫해인 2012년에 1년 전 대비 약 10% 증가한 3조9000억원을 투자했다. 2018년엔 사상 최대치인 17조원을 투자했다. 청주 M12(2012년), 이천 M14(2015년), 청주 M15(2018년), 이천 M16(2021년) 공장 등 신규 생산시설 투자가 순차적으로 추진됐다.

대규모 투자는 반도체 상승 사이클과 맞물려 역대 최대 실적으로 돌아왔다. 2018년 영업이익 20조8000억원, 2021년 12조4000억원 등 기존 주력사업인 정유와 통신사업의 이익을 훌쩍 넘어섰다.

◇AI발 HBM 훈풍, 삼성전자 뛰어넘을 기회로

SK하이닉스는 2022년 들어 또 한 번의 기회를 맞이한다. 2013년부터 개발해온 고대역폭 메모리(HBM)가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의 성장으로 새로운 먹거리로 떠올랐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기존 D램보다 초당 데이터 처리 속도를 10배 이상 끌어올린 제품이다. 연산능력이 뛰어나 생성형 AI 학습용뿐 아니라 슈퍼컴퓨터, 데이터센터 등에 활용된다.

2022년 SK하이닉스의 글로벌 HBM 시장점유율은 50%를 기록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강자인 삼성전자를 뛰어넘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삼성전자도 HBM 개발이 늦은 건 아니었으나 생성형 AI를 필두로 한 AI 반도체 시장의 급성장을 예견하지 못해 HBM 양산이 늦었다.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보다 시장 주도권을 가지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고 최종현 선대회장이 과거 삼성 때문에 반도체 꿈을 접었던 점을 고려하면 SK하이닉스의 입지는 최 회장 입장에서 고무적인 성과였다. SK하이닉스는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5세대 HBM인 HBM3E를 양산하고 고객사 납품을 시작했다. HBM3E는 당장 SK하이닉스의 하반기 실적을 책임질 제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SK그룹이 최근 확대경영회의에서 2026년까지 80조원의 투자 재원을 확보해 AI와 반도체 등에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도 모처럼 잡은 메모리 반도체 1등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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