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찍만 가하는 책무구조도, 증권사 임원진 '불만고조' 대형사 내년 7월까지 제출…책임만 지는 방향, 임원직 기피 기류 확산
양정우 기자공개 2024-07-25 07:09:19
이 기사는 2024년 07월 23일 16:0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증권업계가 '책무구조도 제도'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임원 개인의 내부통제 책임이 적시되는 중대 사안인 만큼 내년 공식 제출에 앞서 만반의 채비를 하고 있다.증권사 임원진 사이에서는 볼멘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당근과 채찍이 병행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책임만 짊어지는 방향으로 틀이 잡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타격이 심한 이슈가 불거질 수도 있기에 보수 상향 등의 반대 급부가 필요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임원 개개인 제재, 강력한 규제 방안…증권사 임직원 "당근은 없나요?"
금융위원회는 금융권 책무구조도 가이드라인을 담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시행령과 감독규정 개정안을 이달부터 시행했다. 책무구조도엔 금융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각사 임원의 책임 소재가 분명하게 명시된다.
금융업권별 책무구조도 제출 시기도 확정됐다. 금융지주회사와 은행은 내년 1월 2일까지, 자산총액 5조원·운용재산 20조원 이상인 금융투자업자나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보험회사는 내년 7월까지 책무구조도를 제출해야 한다. 증권사의 경우 대형사는 내년 7월, 중소형사는 2026년 7월까지 책무구조도를 완비해야 하는 셈이다.
NH투자증권과 KB증권, 신한투자증권 등 주요 증권사는 책무구조도를 조기 도입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자체 태스크포스팀(TFT)을 조직하는 건 물론 대형 회계법인, 로펌 등과 머리를 맞대고 있다. 내부통제 전담 인력을 늘리고 고위 임원과 부서장을 상대로 설명회도 열고 있다.
책무구조도 도입이 임원 개개인에 대한 제재가 가해지는 강력한 법안인 만큼 임원진 사이에서는 불만도 적지 않다. 이제 금융 사고가 발생하면 담당 임원은 이벤트가 초래된 위법행위에 대해 감독자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관리의무 위반이라는 고유의 자기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물론 금융 사고시 상당한 주의를 다해 내부통제 관리를 한 게 인정되면 책임 경감이나 면제 조치가 내려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주의 의무는 사전적으로 객관성과 적정성을 모두 만족해야 한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법적 대응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내년 증권업계에 책무구조도가 안착되면 특정 직책은 물론 아예 임원직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증권사 고위 임원은 "채찍이 있으면 당근도 제시돼야 하는 데 책무구조도는 막중한 책임만 부가되는 제도"라며 "현재도 임원 승진을 원하지 않는 직원이 나오고 있는데 책무구조도 도입 후엔 선호하지 기류가 더 뚜렷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해외에서는 수억원의 책임이 부과된 사례도 있기에 금전적 메리트가 부여돼는 방향으로 균형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국 금융 당국은 국내 책무구조도에 해당하는 '고위 경영자 및 인증제도(Senior Managers and Certification Regime, SM&CR)'를 시행해왔다. 임원진 개인의 책임을 강화해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높이고 효과적 지배구조를 구축하기 위한 시도였다.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고자 위반시 형사처벌(징역형, 벌금형 등)까지 뒤따른다.
이런 SM&CR은 금융업계의 책임 개선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규제 데이터 분석과 함께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금융회사와 고위 경영자의 90% 이상이 기업과 개인의 행동 변화와 책임 강화에 기여했다는 응답을 내놓기도 했다.
국내 금융권에서는 2022년 상반기에만 은행 등에서 900억원 대의 횡령과 배임 사건이 발생했을 정도로 거액의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여기에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 등 대규모 이벤트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책무구조도 도입 자체에 대한 반발은 거의 없다.
책무구조도상 책무는 금융회사의 업무와 관련된 내부통제와 위험관리 책임을 뜻한다. △준법감시, 위험관리 등 법령에 따라 특정 책임자를 지정해 금융회사 전 부서에 걸쳐서 전사적·총괄적으로 수행하는 업무 △여신, 투자매매 등 금융회사가 인허가 등을 받아 수행하는 고유·겸영·부수업무 등 영업과 관련된 부문별 업무 △건전성 관리 등 금융회사가 인허가 등을 받은 금융업 영위를 위해 수행하는 경영 관리 관련 업무 등으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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