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사업구조 재편]'빼곡한 근거' 정정신고서 온도차…밑줄 그어보니방향성보단 설득방법 수정…1대0.63 합병 비율은 유지, 타당성·시너지 증명에 할애
허인혜 기자공개 2024-08-08 09:54:24
이 기사는 2024년 08월 07일 15:5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초안과 정정 신고서의 방향성은 사실 똑같다. 쟁점이었던 합병 비율은 바꾸지 않았다. 정정 신고서에 담긴 것은 이전에는 없던 빼곡한 근거들과 설명 자료다. 첫 주주서한·합병계획서와 비교하면 온도차가 뚜렷하다.◇"두산밥캣 가치평가, 플레이어·보편적 모형·법안 부합"
두산과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로보틱스는 6일 합병, 주식의포괄적 교환·이전 등 증권신고서에 관한 기재정정 공시를 냈다. 신고서 정정은 방향성을 바꾸기보다 분할합병을 왜·어떻게 이행할 지를 설명하는 데 공을 들였다. 논점이었던 합병 비율은 두산밥캣 1주에 두산로보틱스 0.63주를 배정하는 안을 유지했다.
금융감독원이 정정 신고서를 요구할 때부터 합병 비율 수정 등은 고려사항이 아니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요점은 '주주들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도록 구조개편의 배경을 설명하고 보완하라'는 내용이었다. 정정 내용을 보면 두산그룹은 메시지보다는 소통의 방법을 바꾸는 데 방점을 찍었다. 각사는 분할합병의 목표와 이행 방안, 사업에 미치는 영향, 합병가액의 산출 근거를 상세하게 기재했다.
각사의 정정 신고서는 유사한 내용을 담았지만 중점적으로 설명하는 분야는 다소 달랐다. 두산과 두산에너빌리티가 중점적으로 보완한 내용은 두산밥캣 등의 기업가치를 산정하는 방법론이다. 두산 등은 외부 기관의 의견서를 별도 첨부·보완해 타당성을 증명했다.
기준시가를 적용해 두산밥캣의 기업가치를 평가한 배경으로 △시장참여자들에 의해 형성된 가격인 점 △증권의 발행 및 공시 시행세칙에 규정한 모형에 부합한다는 점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시행령 제176조의5에 따랐다는 점 등을 들어 시장과 보편타당한 모형, 법을 준수한 가치평가였다고 강조했다.
투자자 소통을 지적받았던 만큼 리스크도 더 구체적으로 적었다. 핵심투자위험 부문에서 두산밥캣의 연결실적이 두산에너빌리티에 미치는 영향을 명시하고 분할시 수익성 악화에 대한 전망 수치들을 제시했다. 두산밥캣의 상반기 현금 및 현금성자산이 582억원으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규모인 1조5000억원 대비 적다는 점을 고지하고 외부 차입 등의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설명했다.
◇'시너지' 설득 총력전 펼친 두산로보틱스
합병의 직접 당사자인 두산로보틱스는 사업상 시너지와 목적을 설명하는 데 집중했다. 선진 시장 공략과 기술역량 결합을 대표적인 효과로 적시했다.
두산로보틱스가 선진시장인 북미와 유럽에서 성장이 필요한 만큼 이미 네트워크와 비즈니스 인프라를 갖춘 밥캣과의 만남이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두산밥캣이 자동화 등의 솔루션 도입을 추진해온 만큼 두산로보틱스가 서비스를 공급하며 캡티브 매출 증대도 기대된다고 봤다. 두산밥캣의 지게차 사업과 공동 판매도 가능할 것으로 보는 한편 협동로봇 부문의 협력도 전망했다.
건설장비 중심인 두산밥캣이 '노동력 대체'라는 흐름에 대처하려면 무인화와 자동화에 강한 두산로보틱스와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산업용 자율주행 장비 시장과 생산 자동화·투자 효율화 등의 키워드를 제시했다.
◇방향성보단…"'주주설득' 미흡했다" 반성 나선 두산
'두산밥캣 방지법'까지 나오며 두산그룹이 훨씬 적극적인 행동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두산밥캣 방지법은 상장사 간 합병시 가액을 정할 때 자산가치와 수익가치 등을 고려해 공정한 금액을 산정하고 입증 책임을 기업이 지도록 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이다. 법안은 지난달 18일 발의됐는데 두산그룹이 같은 달 11일 구조개편안을 발표한 지 일주일만이다.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빠르게 법안이 발의되며 두산그룹에는 불리한 흐름으로 읽혔다.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법안의 발의를 주도한 인물이 '삼성생명법' 발의를 이끌어온 김성영 선임비서관이라는 전언이 있다"며 "두산밥캣 방지법안의 대표 발의자인 김현정 의원실에 합류한 김 보좌관이 발의를 준비했다고 들었다"고 했다.
금융 법안에 정통한 데다 '기업 저격수'로 불린 인물로 두산그룹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요소다. 삼성생명법과 두산밥캣 방지법은 보험업법과 자본시장법으로 궤가 다르지만 '기업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대한 접근법이 중심이라는 점에서 일부 유사성이 보인다.
합병 계획을 밝히며 주주 설득을 더 적극적으로 개진했어야 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합병의 방법이 문제라기보다 투자자들에게 충분한 설명이 이뤄지지 못한 것이 아쉬운 지점이라는 이야기다. 이같은 반성은 최근 두산그룹 3사가 게시한 주주서한에도 포함돼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두산그룹의 기업구조 재편은 손자회사인 두산밥캣의 위치를 고려할 때 현안이 유일한 길이었다고 본다"며 "일부 계열사가 호황기에 접어든 상황에서 재편과 확장의 필요성이 있었다. 재편이 두산그룹에 끼칠 긍정적인 영향도 분명하고 이 점을 중심으로 충분히 설명했다면 시장 반응이 지금과는 달라졌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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