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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는 지금]'30년 정통' 곽노정 체제, 불황 딛고 계속된다연임 유력, 그룹 내 위상 올라가…외부 리스크 관건

김도현 기자공개 2024-10-21 07:49:13

[편집자주]

1983년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SK하이닉스는 존폐 직전까지 갔지만 기사회생했다. 2012년 SK그룹에 인수된 것이 반전 계기였다. 최태원 회장의 지지 아래 전폭적인 투자가 이뤄졌다. 덕분에 삼성전자, 마이크론과 함께 '메모리 빅3'로 부상했다. 2010년대 말 전방산업 호황 덕에 퀀텀점프 했고 SK가 재계 2위로 도약한 기회도 제공했다. 다만 최근 들어 위기감도 고조되는 중이다. AI 시대 들어 위기에 처한 그룹의 백기사 역할을 해주고 있으나 산업적 측면의 우려도 큰 상태다. SK하이닉스의 현 상황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10월 18일 07:4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SK하이닉스가 역사적인 순간을 보내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중심에 서면서 메모리 시장을 주도하는 덕분이다. 전체적인 규모 면에서는 아직 삼성전자가 앞서지만 현재 기세나 미래 전망은 SK하이닉스에 무게가 실린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찾아온 반도체 겨울을 넘기고 써내려간 반전 드라마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이러한 성공 스토리는 SK하이닉스 임직원이 합심한 결과지만 리더인 곽노정 사장의 뛰어난 역할을 빼놓을 수는 없다.

대외적인 경영 환경이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성과를 낸 곽 사장에 대한 안팎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이에 따라 내년에도 SK하이닉스를 이끌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그룹 내에서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대전자 시절부터 겪은 산증인, HBM으로 빛나다

곽 사장은 SK하이닉스 전신인 현대전자에 1994년 입사했다. 올해로 근속연수 30년에 달하는 뼛속까지 '하이닉스맨'이다. SK하이닉스 굴곡의 역사를 몸소 체험했다는 의미다.

주요 보직을 거쳐온 곽 사장은 2022년 대표이사에 올랐다. 오너가가 아닌 일반 직원이 최고경영자(CEO)까지 오른 신화를 쓴 셈이다. 작년 말 박정호 부회장이 물러나자 이때부터 단독대표를 맡아 회사를 끌어왔다.


곽 사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된 이후 평탄한 길만 걸었던 건 아니다. 취임 초반에는 코로나19 특수로 나쁘지 않은 실적을 기록했지만 2022년 하반기부터 전례 없는 반도체 불황이 닥치면서 4개 분기 연속 적자에 그쳤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운 건 고대역폭 메모리(HBM)다. 마땅한 응용처를 찾지 못해 장기간 제구실을 못한 제품이었지만 AI라는 옷을 입고 SK하이닉스의 날개로 거듭났다. 메모리 선두주자 삼성전자가 HBM에서 잠시 손을 떼는 실수를 범한 데 따른 반사이익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SK하이닉스는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앞세워 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와 합을 맞추면서 메모리 리딩기업으로 떠올랐다. 본격적인 HBM 활용 초기만 해도 규모가 크지 않아 다소 저평가됐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확장하면서 효자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부랴부랴 HBM 대응에 나섰지만 SK하이닉스가 확실하게 선점하면서 뒤따를 수밖에 없는 구도가 형성됐다. 당분간 SK하이닉스 독주 체제는 지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차세대 HBM은 고객맞춤형(커스텀)으로 제작 예정인데, 관련 분야를 선점한 SK하이닉스에 유리한 흐름이다.

아픈손가락으로 여겨진 낸드플래시 부문도 힘을 내기 시작했다.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 이후 적자 기조가 이어지다가 기업용(e)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수요가 폭발하면서 관련 효과가 나타난 덕분이다.

결정적으로 SK하이닉스의 상승세는 HBM와 eSSD 원재료인 D램과 낸드 경쟁력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시스템반도체까지 다루는 삼성전자와 달리 메모리 외길을 걸으면서 기술력을 끌어올린 영향이다. 요직을 경험한 곽 사장의 공이 적지 않다는 평가다.

실제로 최신품인 10나노급 5세대(1b) D램의 수율(완성품 중 양품 비율) 등 주요 지표에서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에 우위를 보인 것으로 파악된다. 차기작 6세대(1c) D램도 SK하이닉스가 한발 앞서고 있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HBM을 넘어 메모리 전반에서 SK하이닉스의 지배력이 커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SK그룹 내부에서도 SK하이닉스 존재감은 상당하다.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SK온 등이 주춤하면서 그룹 차원의 사업구조 재편(리밸런싱)이 이뤄지는 가운데 SK하이닉스는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역대급 실적을 예고하면서 SK의 진정한 '캐시카우'로 탈바꿈한 상태다.

같은 맥락에서 곽 사장의 위상도 높아졌다. 올 7월 수펙스추구협의회 내 반도체위원회가 신설됐는데 위원장을 곽 사장이 맡게 됐다. 협의회에서 특정 사업 관련 위원회를 만든 첫 사례로 반도체와 곽 사장의 무게감을 나타내는 방증이다.

SK그룹 안팎에서는 곽 사장이 SK하이닉스 대표이사직을 유지하는 건 물론이고 상승세를 이어간다면 추후 부회장으로 승진할 명분이 충분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AI 캐즘, 미·중 대립 등 대외변수 산적

SK하이닉스가 말 그대로 잘 나가는 건 사실이나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없지는 않다. AI 메모리 공급 과잉, 비중이 적잖은 중국 사업 리스크 등이다.

일부 증권가에서는 반도체 겨울이 다시 찾아올 것으로 보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이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리지만 지금까지의 업황이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다. 전기차처럼 성장세가 한번쯤 꺾일 수 있고, 과거와 달리 수많은 변수가 상존하고 있어 시장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곽 사장도 사내 행사를 통해 "내년 초까지 메모리 수요가 견조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그 후로는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업황을 진단한 바 있다.

또한 언제까지 HBM에 기댈 수 없는 노릇이다.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 프로세스인메모리(PIM) 등 미래 제품 경쟁력도 확보해야 한다.

SK하이닉스의 고질적인 이슈인 D램 의존도도 낮춰야 한다. D램 대비 힘이 약한 낸드 사업 확장, 지지부진한 시스템반도체 육성 등이 핵심 키워드로 꼽힌다. 실현하지 못하면 전방산업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는 지난날을 다시 맞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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