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아트 브랜딩]'공공 컬렉터' 한국은행, 근대미술 가치보존에 '무게'③수집 적극적이던 초기 대비 까다로워진 구입 환경…1000여점 소장품 재조명 필요성
서은내 기자공개 2024-11-06 09:14:57
[편집자주]
아트와 금융을 접목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전개되고 있다. 문화예술에 대한 후원이나 ESG의 형태를 띠기도 하며 나아가 미술시장 활성화 또는 투명화라는 보다 구체적인 목적의식을 둔 경우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아트'는 금융사 브랜드 이미지의 품격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모습이다. 더벨은 금융사들이 진행 중인 예술 관련 사업의 스토리를 들여다본다.
이 기사는 2024년 11월 04일 08:0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은행은 1000여점 이상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기관이다. 소장품 가운데 국내 근대기 미술의 가치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 많이 포진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여러 상황이 변화하면서 과거만큼 작품 수집에 열의를 보이지는 않고 있으나 그동안 축적해온 컬렉션의 가치를 대중에게 공유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적극적 수집 대신 소장품 대중 공유에 방점
한국은행이 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한 건 1950년대부터다. 국내 문화예술계가 작가들의 창작여건을 뒷받침하는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았던 시기다. 공공 컬렉터의 역할이 절실하던 당시 한국은행은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입상 작가 작품을 중심으로 구입을 시작했다. 공적 기관으로서 문화예술계에서도 의미있는 후원의 역할을 감당했던 셈이다.
현재는 그때만큼 적극적인 수집을 진행하지는 않고 있다. 미술계의 상황이 과거와 다르고, 국책은행으로서 요구되는 방향성 역시 달라졌기 때문으로 인식된다. 문화예술계 후원을 목적으로 비정기적으로 신진 작가 작품 공모를 진행하거나 관계법령에 따라 작품 구입을 실시하는 정도다. 추가 수집 규모는 크게 축소된 상태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현재는 한은의 미술품 구입절차가 과거보다 까다로워진 것으로 안다"며 "최근 통합별관을 신축하면서 일부 미술품 구입이 가능했을 것인데 통상 이처럼 건물 신축을 하면 문화발전기금을 내거나 문화예술계 진흥에 이바지하는 목적으로 미술품 구입해야 하는 등 법적 근거가 정해져있다"고 말했다.
대신 한국은행은 1950년대 전후 국내 근대기 미술의 가치를 보존, 조명하며 대중들에게 소장품을 공유하는데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2002년부터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내에 한은갤러리 공간을 두고 소장품에 기반한 전시를 통해 작품을 공유해나가고 있다. 약 6개월을 교체 주기로 새 전시를 진행해왔다.
◇ 1087점 소장, 정부 미술은행과 별개로 관리
현재 한국은행이 소장한 미술품의 수는 1087점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미술은행과는 별개로 자체로 소장품을 관리하고 있다. 대부분 국내 작가들의 작품이며 일부 국외 사무소에서 소장 중인 작품으로는 해외 작가들의 작품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소장품을 미술관, 박물관 전시에 대여해주기도 하고 있다.
컬렉션의 장르로는 한국화의 비중이 가장 높고 다음으로 서양화, 서예, 조각 등이 그 뒤를 잇는다. 총 700여명 작가들의 작품이다. 회화 작품들을 살펴볼 때 추상계열보다 자연, 구상미술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자연풍경 그림이나 산수화는 보다 대중에게 친근한 소재라는 점에서 공공 컬렉터의 특성과 맞닿아있다.
한은의 컬렉션은 주요 근대기 명품으로 과거 국현 덕수궁관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근대, 현대의 걸작들이 처음으로 알려지며 미술계에 고무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현재 한은 내에 전문 학예연구사 인력이 있으며 소장품 중 일부를 뽑아 전시를 구성, 기획해오고 있다.
2013년부터 실력있는 젊은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신진작가 공모전을 시작했으며 8년간 공모전이 중단됐다가 지난해 9월 다시 신진작가 공모전을 열었다. 올해 2월에는 선정된 6명의 작가 작품을 소개하며 '한국은행이 선정한 우리 시대의 젊은 작가들' 전시를 열기도 했다.
10월 24일부터는 한은갤러리에서 15점의 소장품을 토대로 상설전 '사유와 산책-이어진 길'이 진행 중이다. 한은의 대표 소장품 중 하나인 김인승 작가의 <봄의 가락>이나 청전 이상범의 <야산귀로>가 전시 중이다. 전시 작품 중 상당수는 1950년대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수상작으로 구성돼 있다. 새로운 작품 소장이 어려운 만큼 앞으로는 상설전을 중심으로 한 전시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 근대기 미술 사료로서 가치 중요성 대두
한국은행에서 펴낸 '한국은행 소장 미술품 100인 100선'에 따르면 소장품 가운데 관념산수 작가 허백련, 노수현, 사경산수 작가 이상범, 변관식의 작품을 대표로 꼽고 있다. 이상범의 <야산귀로>, 변관식의 <비폭 앞의 암자> 등이 대표적이다. 새로운 한국화의 전형으로는 장우성의 <신황>이 꼽힌다. 채색화에서 독자 영역을 이룬 천경자의 <어군>도 주요 소장작 중 하나다.
서양화 중에서는 풍경화 장르로 김세용의 <설악산>, 도상봉의 <성균관 풍경> 등이 꼽힌다. 우리 풍속과 생활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는 박영선의 <향토>, 박항섭의 <포도원의 하루>, 변종하의 <사슴도>가 있다. 인물화 분야로 김인승의 <봄의 가락>, 심형구의 <수변>이 언급된다.
한 미술계 전문가는 "국책 은행 소장품 중 의미있는 근대기 작품들이 많은데 잘 홍보가 되지 않고 있다"며 "국내 미술계에서 근대기 미술품은 연구 사료로서도 중요성이 깊은데, 미술품 소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가려 가치 재조명이 소극적으로 진행되는 것 같아 아쉽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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