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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사귀기 혹은 함께 살기

장영규 우리투자증권 리스크&크레딧 센터장 공개 2008-08-27 08:43:09

[편집자주]

자본시장 발전에 신용평가는 인프라와 같은 존재입니다. 서브프라임사태로 신용평가의 공정성이 도마위에 오르고 있는 것도 신용평가의 중요성을 재차 일깨우는 사건입니다. 더벨은 신용평가를 포함해 크레딧시장의 전반을 전문가의 날카로운 시각을 통해 분석합니다. 신용이슈 등 일련의 현상에 대해 폭넓은 이해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 기사는 2008년 08월 27일 08:4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가을은 늘 풍성한 계절이지만 올 가을을 바라보는 시장의 분위기는 싸늘하기만 하다. 9월 위기설이 나도는 등 향후의 크레딧 마켓을 바라보는 시장의 시각은 우려 일변도인 것 같다. 회사채시장의 유동성은 사라지다시피 했고 회사채의 크레딧 스프레드는 확대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대형 인수의 에필로그

현재 거론되는 위기의 신호들이 우려되는 면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패닉심리에 빠질 만큼 심각한 수준이라고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실 이런 시장의 편향성은 늘 있어왔던 일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들이 ‘다소’ 취약한 문제를 지닌 기업들의 재무적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슈가 최근 수년간 이루어져왔던 대형거래의 주인공들에 대한 재검토인 것 같다. 이전의 대형 인수 건들의 자금조달이 주로 은행자금이나 정책자금에 의존했다면 최근의 인수거래들은 시장성 자금조달에 상당부분 의존하는 소위 LBO방식의 거래가 두드러졌다. 문제는 시장성 자금조달에 의존한 인수의 경우 인수기업을 쪼개파는 등 즉각적인 유동화(Liquidation)을 수반하는 소위 ‘레이더’식 머니게임이 아니라면 늘어난 시장성 차입금의 부담으로 인해 자칫 지속적인 시장의 감시와 추궁에 시달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M&A의 성공요건으로 강조되는 것은 인수후 통합과정이다. 인수가 이루어지고난 후의 실적개선이 실제 인수가 경제적으로 의미있는 경영활동이 될 수 있는데 경험적으로 이렇게 되려면 이전과는 다른 개선(‘Doing something differently’)이 이루어져야 한다. 소프트한 측면에서 인수자와 피인수자 간의 통합이 이 점에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영학 교과서의 내용은 기업인수의 성공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한다. 인수 이후 자금시장 분위기가 인수를 기획하고 실행할 때 예상되었던 것 보다 훨씬 악화되거나 소위 시장심리가 우호적이지 못할 때 인수기업은 추가적인 부담을 느끼게 된다.

시장이라는 까탈스런 감시자

만일 향후의 실적개선이나 자금시장에 대해 과도하게 긍정적인 전망에 기초해 초기의 자금조달이 부담을 많이지는 불리한 구조를 취하거나 기존의 자금부담 보다 늘어난 차입규모가 지나치게 부담스러워 추가적인 조달여력-소위 ‘재무적 탄력성’-에 부담을 주는 수준이라면 인수 이후의 기대에 대한 허들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

줄여서 말하자면 인수자금을 능력에 맞게, 싸게 조달했느냐 하는 점이다. 과거 기업합리화에 따른 혜택을 받고 기업을 인수하던 것과는 다른 시장의 압박이 여기에 있다. 최근 시장상황처럼 내부적인 문제건 외부적인 문제건 시장유동성이 제한되고 자금의 재조달(refinancing)이 어려워지고 비싸질 경우 시장의 압박은 더욱 커진다. 최초 자금조달시의 부담규모와 함께 시기적으로 어느 시점에 집중된 만기구조나 향후의 시장변동에 쉽게 영향을 받는 방식의 조달구조도 이런 압박이 주는 위험을 더욱 커지게 한다.

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은 은행 이외의 폭넓은 자금원천을 확보해주고 다양한 조달수단을 통해 좀 더 쉽고 확대된 자금조달을 가능케 해준다는 점에서 이런 대형 자금조달에 유리한 점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양한 조달창구를 통한 조달구조의 안정성도 덤이다. 문제는 그러한 이점이 공짜가 아니라는 점이다.

거래상대방이 은행담당자에서 여러 명의 조달창구 직원으로 바뀐 것 이상으로 시장은 설득하기가 까탈스런 면이 있다. 또 시장의 변동은 은행의 태도변화만큼 급작스럽지는 않지만 비인간적인 측면이 있다. 관계나 대면적인 접촉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안정감의 효과는 크지 않다. 재무제표에 나타난 숫자나 투자의견, 신용등급과 같은 소위 ‘성적표’에 대한 의존이 심하다.

편리성에 수반되는 이러한 예민함은 최근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시장에서의 IB들의 자금조달 패턴과 관련해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시장의 예외적인-그러나 이전에 비해 잦아진-변동은 시장성 자금조달에 과도하게 의존한 기업들의 높은 레버리지가 칼날이 되어 돌아오게 만든다는 점이다.

숨지 말라, 소통하라

자금시장이 얼어붙는 와중에 그 동안 전략적인 대형인수를 했던 기업들이 조달했던 자금의 만기가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그 동안 충분한 시너지를 만들지 못해 추가적인 자금조달수요에 계속 시달리건, 자금의 만기가 돌아와 적절한 재조달의 수요에 직면해 있건 최근의 자금시장 분위기는 대형거래의 과실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예민함과 어려움은 시장이라는 것이 수많은 이해당사자가 관련된 집단적인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나타난다. 정서적인 호소 보다는 논리적인 설득이 필요한 곳이다. 헤어질 수 없는 사이라면 서로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 시장을 피할 수 없다면 그에 맞는 대응방식을 찾을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시장이 바라는 대응방식이란 어떤 것일까? 이전에 어느 세미나에서 일종의 비유로 부인에게 지켜야 할 두 가지가 '돈 벌어다 줘야 되고 거짓말하면 안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다른 것을 설명하려고 든 비유였지만 시장과 조달기업 간의 관계도 비슷한 것 같다. 투자자가 돈을 적절히 벌 수 있게 해주고 거짓말하지 않는 것이 자금시장에서의 안정적인 거래를 가능케 하는 요체다.

시장이 거짓말 만큼 이나 혹은 그보다 더 싫어하는 것은 '숨어 버리는' 것이다. 시장의 걱정은 정당할 수도 기우일 수도 있지만 설사 기우일지라도 해당기업이 이러저러한 이유에서 이를 설명하지 않을 경우 기우가 실제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최근 기업들의 IR이 주식시장 참가자에 국한되지 않고 채권, 특히 크레딧시장 쪽으로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다만 '누구에게' 말하는가 하는데 대한 고려는 아직 조금 부족해 보인다. 크레딧 사이드에서 알고 싶은 것과 주식시장이 듣고 싶어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알지 못하면 공을 들인 IR이 실제로 그간 있었던 경우처럼 무의미하거나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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