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 기사는 2008년 09월 30일 08:0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기술' 제대로 걸린 서울 외환시장
진통은 없지 않았으나 미국 행정부가 제시한 700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법안이 의회를 통과할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뉴욕증시도 주말을 선방하며 보냈다. 그 전에 지난 주말(26일)에는 한국 정부가 달러확보에 혈안이 된 시장의 일방적 'Buy & Sell' 수요에 대응하여 10월 중순 이전까지 FX스왑 시장에 외평기금 100억달러 이상을 공급하기로 한 방침을 발표하면서 마냥 눌리기만 하던 스왑포인트도 급격히 회복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1170원도 넘다가 1165원으로 마감한 주말 NDF 1개월물 시세가 심상치 않더니 월요일(9월 2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는 '기어이' 장중 1200원이라는 고점을 찍고 당국의 개입으로 인해 상승폭을 축소, 전일 대비 28.30원 급등한 1188.80원으로 마감하였다. 증시에서 외국인들이 4660억원이 넘는 대규모 순매수를 모처럼 보였음에도 오전 환율 급등에 당국의 구두개입이 보도되었음에도, 기어코 1200원을 찍고야만 서울 외환시장..
모 공기업의 5억달러 규모 '마바이(MAR Buy: 그 날 장 마감 후 산출되는 시장평균환율로 거래하는 기법)' 거래가 있었다는 보도로 봐서는 'MAR(Market Average Rate)거래'를 취급하는 은행이 의외의 환율급등을 유도했거나 혹은 의외의 환율 급등에 하루 종일 애만 쓰고 손실을 입었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들지만, 단순히 이런 마찰적 요인만으로 9월29일 환율급등을 설명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따를 듯 싶다.
조금만 신경 써서 서울 외환시장의 수급구도나 지난 수년간 열풍처럼 몰아쳤던 기업체 및 투신권의 일방적인 달러매도 헤지 관행 등을 살펴보면, 그리고 KIKO로 대변되는 레버리지까지 쓴 상태에서 '물려있는' 포지션들을 감안하면 우리 서울 외환시장이 국내외 환투기 세력에게는 얼마나 만만한 시장으로 비칠 수 있는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미국에서 촉발된 전세계적인 신용경색(global credit crunch) 현상으로 인해 달러 유동성이 급격히 고갈되고 그에 따라 원화가치의 급락은 불가피하다지만, 작금의 원화 절하율은 주요통화들이나 아시아 주변국 통화들의 그것에 비하면 좀 심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그 만큼 수 년간 한 쪽 방향으로만 쏠려있던 시장이 방향을 틀 경우 감수해야 하는 후유증도 무섭고 고통스럽다).
여기저기에서 물리기만 하고 손실만 쌓여있는 2008년에 '(환율을) 들자고 덤비면 들리는 시장'이 어딘가에 있다고 한다면, 그 시장은 공격의 대상이 되고 만다. "정부가 고환율 정책을 마음에 두고 있다"고 했다가, "알고 보니 그런 것도 아닌 듯 하다"로 바뀌어가면서 국내 환시 참여자들은 갈팡질팡하고 있었지만, 나라 안팎의 '선수'들은 약점 많은 서울 환시에 이미 제대로 '기술'을 걸었다. 그 기술에 대응할 만한 기술로 평소 연습이 되어있다면 모르겠으나 자칫 하다가는 어설프게 빠져 나오려 애쓰다가는 팔이 부러질 수 있다(이종 격투기의 '암바' 기술을 생각해 보라).
◆ 달러공급에 그치지 말고 투기세력의 손절을 이끌어내는 개입이라야 한다
지난 3월 베어스턴스 사태 발발시 1030원을 올라서는 환율에 당국의 매도개입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시장은 당국의 매도개입에 대해 그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었는데, 3월25일 20원 넘는 환율 급락이 있은 다음날 당시 최중경 차관의 "환율급등도 우려스러운 일이지만 환율 급락은 더더욱 우려된다"는 구두개입성 발언으로 인해 시장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음이 확인된 바 있다.
이후 5월과 7월에 걸쳐 1057원이 단기 고점으로 인식되던 장세 또한 이른바 '개입장세'였다. 그래서 하루 28원 가까운 환율급락이 있었던 때에도 당국에서는 또 한 차례 환율급락을 우려하는 듯한 발언을 시장에 던지면서 개입 자체에 대해 신뢰도를 스스로 떨어뜨린바 있는데, 그런 과정을 거쳐가면서 1100원을 넘어선 이후로는 정말 환율 급등을 당국도 시장도 우려하는 단계에 이르고 말았다. "벌 만큼 벌어 이제 더 가는 것도 싫다. 이젠 (환율이) 안정되어야 증시도 살고 경제도 산다. 이 정도로 멈춰주었으면 싶지만, 내가 아는 시장도 대충 이러다 말 시장이 아니기에 그게 걱정이다". 아닌 게 아니라 10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장(場)에서 벌 만큼 벌었다는 외환딜러의 우국충정 어린 탄식이다. “환율 전망 잘 했다는 칭찬(?)도 이젠 싫다. 지금부터는 제대로 전망할수록 욕만 먹게 된다. 좀 진정되었으면 좋겠다". 때가 때인 만큼 정답(?)보다는 애국적 시황이 요구되는 애널리스트들의 탄식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지난 몇 개월에 걸친 개입을 보나, 지금 10년 만에 선 큰 장’에서 국가 경제적 위기를 사적인 이익 창출의 절호의 기회로 삼으려 '뽕을 뽑으려 드는'(저속한 표현을 용서해 주시길…) 세력들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당국의 개입 패턴은 달라져야 한다. 1200원까지 치솟던 환율을 12원 가까이 떨어뜨려 마감시켰다지만 오전에 구두개입이 보도되던 시점의 환율 레벨보다 위에서 종가가 형성되었다. 지난 3월에도 그랬고 지난 5월이나 7월에도 그랬듯이 이 정도의 개입으로는 아직도 끝을 보지 못했다고 여기며 덤비거나 기다리고 있는 세력들에게 시장에서 좀처럼 확보하기 힘든 달러 물량을 싼 값에 공급하는 것에 그친다. 국제금융시장을 압박하고 있는 신용경색 현상도 미국의 구제금융 법안 통과만으로 당장 개선되리라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리고 수 년간 비정상적으로 눌렸던 환율이 튀고 있는 만큼 펀더멘털로 설명할 수 없는 어느 정도의 '오버'(흔히 오버슈팅으로 표현한다)는 불가피하다.
따라서 진정 환율의 하향안정화를 도모하려면 당국은 조금 더 시장이 미쳐 가더라도 내버려둘 필요가 있고 투기적 롱포지션이 과도하게 쌓여 그들 스스로가 어지럼증을 느낄만한 레벨과 시점에 강력한 개입으로 그 롱플레이어들의 손절매(loss-cut)라는 시장 내부적 매물을 끄집어낼 수 있어야 한다. 미 하원에서 구제금융 법안이 통과될 것이 거의 확실시 됨에도 다우지수 선물 등이 세 자리 수 낙폭을 보이고 있고 아시아 증시들이나 유럽증시가 일제히 약세를 보이는 것을 보더라도,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의 뭔가 일하고 있다는 시늉에 그치는 개입방식으로는 곤란하다. "서울 외환당국이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겁난다"는 소리를 나라 안팎에서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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