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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적완화로 전환하는 통화정책 금융시장 비상사태 경계선…회사채·기업어음 매입 가능성 시사

황은재 기자공개 2008-12-11 19:49:40

이 기사는 2008년 12월 11일 19:4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은행이 사상 최대폭인 1.00%포인트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3.00%로 끌어내렸다. 그것도 모자라 앞으로 더 내릴 수도 있다고 밝혔다.

파격적인 인하에 가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파격적인 변화가 있다. 12월 금통위는 한은이 통화정책을 수행하는데 있어 주된 방식과 수단을 지금까지와 달리 가져갈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동안 영란은행(BOE)와 유럽중앙은행(ECB)의 전통적인 통화적인 방법을 벤치마크로 삼아왔던 한은은 이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덜 전통적인(Less conventional) 정책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고백했다.

한은은 그 기로에 서 있다. "금융시장이 비상사태 '경계선'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한은의 인식은 그 고백에 다름 아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11일 기자간담회에서 "비상사태일 때, 또는 비상사태라고 판단할 때 (발권력을 동원)할 수 있는 것인데, 한은은 아직 이 경계선을 넘어서지 않았다"는 말로 설명을 시작했다.

이 총재는 미국은 금융시장의 기능이 붕괴된 상태라고 진단했다. 대형 투자은행(IB)들이 줄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고, 연준이 아니면 금융 중개 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은행에서 비은행으로 가는 금융중개 기능이 약해지고 일부에선 경색이 나타나고 있지만 완전한 마비까지 가지는 않았다는게 한은의 판단. 그래서 '아직은' 공개시장조작 등 전통적인 방식을 통해 금융시장에 유동성이 흐르도록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한은은 그 위험한 경계선을 넘어설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사뭇 비장하다. 이 총재는 "FRB가 하는 일은 그(비상사태) 경계선을 넘어섰기 때문"이라며 "이런 수단까지 동원해서 갈 것인가, 전통적인 방식으로 갈 것인가, 이런 것을 판단할 때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와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덜 전통적인' 방식은 지난 2일 벤 버넹키 연준 의장의 연설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당시 버넹키 의장은 "경기회복을 촉진하기 위해 연준이 국채를 매입하는 등 덜 전통적인 정책 수단을 동원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중앙은행이 직접 채권이나 기업어음(CP) 등을 금융거래 상대방과 직접 거래하는 방식이다. 일본이 지난 2001년3월부터 2006년3월까지 사용한 방식과 유사했다. 일본은 상업은행들이 지준 예치를 위해 개설한 당좌 계정의 잔액을 일정액 이상 유지하는 방법으로 양적완화정책을 구사하기도 했다.

한은이 직접 시장에 거래 당사자로 등장할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심각한 통화수축기'라고 판단되면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4명 이상의 찬성을 얻어 영리기업에 대해 여신을 할 수 있다(한은법 제80조).

다시 말해 이날 이 총재는 '심각한 신용수축기'라는 판단이 내려지면 정부가 발행한 국채는 물론이고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나 기업어음(CP)을 한은이 직접 사들일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그동안 실무적으로 '심각한 신용수축기'가 닥칠 가능성에 대비해 왔음을 짐작하게 한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금융중개기관을 통한 통제가 안될 경우, 금융 중개기능이 제 기능을 못할 경우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는 말로 이 총재의 발언을 다시 해석해 전했다.

한은이 당장 회사채나 CP를 직접 매입할 것 같지는 않다. 은행이라는 금융중개기관을 향해 계속 유동성을 펌프질하고 있다. 이날도 RP매각에 10조원이나 응찰했지만 이중 절반이상인 5조4400억원을 돌려 보냈다. 남는 돈이 있으면 한은과 거래하지 말고 시장에서 회사채를 사거나 대출에 나서라고 은행들을 압박한 것이다.

채권시장안정펀드에 대한 유동성 공급, 국고채 단순매입, 통안증권 조기환매 등 한은의 유동성 공급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금리인하 카드도 아직 남아 있다.

이 총재는 "(현재 상황은) 최저 금리로 가는 것이 맞는 것이지만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느냐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이론적으로는 유동성 함정에 빠지면 통화정책이 무력하게 되기 때문에 그 함정에 빠지지 않을 때까지 (기준금리를) 내릴 수 있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양적 완화정책에 대해 시라카와 일본은행(BOJ) 총재가 한 말이 있다.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데에는 매우 효과적이었지만 금융회사들의 대출 기피 등으로 경기회복에는 제한적인 효과 밖에 거두지 못했다"

한은이 아무리 애를 써도 은행이 움직이지 않으면 효과는 제한적이다. 전통적인 방법이든, 덜 전통적인 방법이든 그건 마찬가지다. 은행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누구나 다 안다. 그렇다면 한은이 나서기 전에 은행의 짐을 덜어줄 어떤 '선행조치'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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