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08년 12월 16일 09:0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반도체 치킨게임의 최대 희생양은 누구일까.
메모리 업체들의 신용등급을 살펴보자. 삼성전자(A+, Fitch)를 제외하면 엘피다(BBB, JCRA), 마이크론(B+, S&P), 키몬다(B1, WVB), 난야(BBB+, S&P) 등 모든 업체들이 투기등급에 가깝다. 대만 파워칩(A3, WVB)이 상대적으로 등급이 높지만 대만 로컬 평가사의 등급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업계 신용등급이 전반적으로 내려가고 있는 가운데 하이닉스도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15일 피치는 하이닉스의 등급을 종전 BB-에서 B+로 반년 만에 다시 강등하면서 동시에 부정적 관찰 대상에 포함시켰다.
지난해까지 '부활의 찬가'를 불렀던 하이닉스의 위상이 급격히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3분기 연결 기준 실적을 들춰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하이닉스는 이 기간 중 매출액 1조8400억 원을 기록했지만 영업손실은 4650억원, 순손실 1조6700억원을 입었다. 분기 순손실이 조 단위에 이른 건 쇼크였다.
이런 기형적 실적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재고평가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는 실물로 옮겨 붙으면서 정보기술(IT) 산업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비자들이 신종 휴대폰 구매를 꺼리면서 교체주기가 18개월에서 24개월로 늘었고, 기업과 공공기관의 PC 구매량도 크게 줄었다.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IT제품들의 수요 감소가 제조사들의 재고손실을 늘리고 있는 셈이다.
두 번째는 하이닉스가 구식 제조공장(8인치 팹)을 폐쇄하면서 상각비용(3700억원)을 포함한 영향이다.
하이닉스는 충북 청주 M9 공장에 이어 경기 이천 M7 공장마저 가동을 멈춰 세웠다. 미국 유진 공장을 포함, 국내외에 5개 공장 중 4개를 내년 초까지 폐쇄해 생산량을 30% 가량 줄일 방침이다. 이 역시 재고손실 증가의 여파다.
세 번째는 대규모 환 손실이다.
외화 장기차입금이 적지 않은 하이닉스는 달러/원 환율이 상승하면 비현금성 평가손실이 발생한다. 환율 불안에 회사 실적이 좌우되는 불안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세 가지 원인으로 인한 영업외 손실이 1조2000억원에 달하는 셈이다.
하이닉스는 반도체 제조사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위험에 노출돼 있다. 최근 3년간 메모리 업체들은 과도한 투자로 생산량을 늘려 공급과잉을 자초했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모든 반도체 기업들이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다. 대만 정부는 난야와 이노테라, 파워칩, 프로모스 등 자국기업에 금융 지원을 시작했고, 일본도 엘피다에 간접 지원을 하고 있다.
업계의 구조조정과 감산으로 인한 영업회복 전망을 기대하기 전에 그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느냐가 하이닉스 매각의 관건이다. 하지만 생존에 필요한 자금지원은 사실상 충분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먼저 대규모 자금을 수혈할 원매자가 없다. 하이닉스는 2001년 10월 채권단 관리에 들어갔지만 2005년~2006년 호황기에 매각이 이뤄지지 않아 산업적 경쟁력이 급격히 악화됐다. 지금의 재무 상태로는 최소 4조원 이상의 신규자금이 필요하지만 이런 위험을 온전히 떠안을 주체가 현재는 없다.
그렇다고 정부의 공적자금 지원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치킨게임'을 주도한 삼성전자가 업계의 대표 기업으로 굳건한 지위에 있기 때문에 기간산업 보호명분이 약하다. 정부가 어렵사리 자금을 지원한다 해도 경쟁국의 견제가 매섭다.
한국에 산업 주도권을 뺏긴 일본은 재무성 등 정부 대표들로 구성된 실사단을 오는 16일부터 국내로 파견해 하이닉스에 대한 보조금 지급여부를 조사할 계획이다. 삼성전자와 일본, 대만 사이에 낀 하이닉스는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하이닉스 매각을 '생존 경쟁'에서부터 지켜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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