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칼텍스 과잉투자에 고전 "고도화 장비 팝니다" 적자 전환·부채 증가...GS그룹에도 재무적 악영향..
이 기사는 2009년 02월 23일 08:4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 달 초 몇몇 국내 정유사 장비 구매부서에 뜻밖의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자는 동종업체인 GS칼텍스. "그 쪽도 고도화 투자하고 있죠? 혹시 장비 받을 생각 있습니까?" 수화기 너머 들려온 제안에 담당자들은 영문을 몰라 당황했다.
GS가 이미 건설한 고도화설비를 판다는 것인지 아니면 주문한 장비를 넘기겠다는 것인지 아리송했다. 추측은 곧 후자에 몰렸다. 전라남도 여수에 건설 중인 설비를 인수하는 건 사업적 매력이 없거나 불가능한 제안이기 때문이다.
담당 직원들은 몇 차례 대화가 오간 뒤 제안의 요지가 GS의 장비 주문계약을 인계받는 내용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GS가 지난해 5월부터 여수에 건설하던 제3 중질유공장 중 유동식접촉분해시설(FCC) 공장 건설을 중단키로 한 여파였다.
고도화 투자를 준비 중인 기업들은 어차피 발주할 장비라면 GS가 포기한 것을 할인받는 게 이득이라는 계산을 했다.
하지만 거래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경유나 등유라면 몰라도 휘발유 고도화 시설은 유가가 100달러 아래로 떨어진 상황에서는 수지가 맞지 않는다.
더구나 치열한 생존 경쟁에 돌입한 정유업계가 라이벌의 부담을 덜어주는 건 스스로 승부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황금알을 낳는 설비로 여겨졌던 FCC 건설은 금융경색으로 인해 졸지에 과잉·중복 투자가 돼버렸다.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를 바라볼 때는 벙커C유를 휘발유로 둔갑시키는 고도화 설비투자가 업계의 보루였지만 이제는 애물단지인 셈이다.
기존 시설이야 위험이 없지만 조단위 자금과 막대한 금융 비용을 단기적으로 감수해야 하는 신설 투자는 문제가 심각하다. GS그룹의 캐시카우인 GS칼텍스는 2000년 이후 사상 처음으로 지난해 832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이 회사의 순이익은 2002년 3000억원을 돌파한 이후 2004년 8460억원으로 정점을 찍고 2007년까지도 6320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 이런 추세는 2011년까지 5조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집행한다는 계획이 호기롭게 진행되면서 급격히 무너졌다. 1년 만에 단기차입금은 1조431억원이나 증가했고 동시에 1조935억원의 사채가 늘어났다. 공장을 짓느라 갑자기 조단위의 빚이 생긴 것이다.
물론 5년 이상 호황을 누린 GS칼텍스의 펀더멘털은 크게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2조5622억원의 현금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당장 유동성 이슈가 불거질 상황은 아니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다만 일선 실무급들의 체감지수는 예사롭지 않다. 실제 새로 만들어지는 프랜차이즈 주유소에 지급되던 보조금이 올해부터 갑자기 끊겼다.
경쟁사들은 GS칼텍스가 점포 경쟁에서 이탈하자 우려가 현실화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위기가 시작되기전 인천정유를 인수해 확실한 우위를 확보한 SK에너지나 규모가 작더라도 고도화율이 가장 높은 에쓰오일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GS칼텍스가 비상장사여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고는 하지만 국제신용평가 기관에게는 예외가 없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지난해 12월 이 회사의 장기신용 등급 전망을 안정적(stable)에서 부정적(negative 외화 무담보 BBB+, 단기기업신용 A-2)으로 강등했다.
경기침체로 인한 산업 전망 악화와 공격적인 투자가 등급전망 하향 이유다. S&P는 1년내 차입금이 줄지 않고 부채비율이 45%를 넘어설 경우 등급을 내리겠다고 경고했다. 신용등급이 낮아지면 금융비용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GS칼텍스 입장에서는 이러한 우려가 당장 그룹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룹 지주사인 GS홀딩스는 지난해 3분기까지 영업이익(940억원)이 전년(2798억원) 같은 기간보다 66.4%나 줄어들었다.
자회사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GS칼텍스의 지분법 평가익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지주사는 지난 1월 15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해 만기도래한 기업어음(CP) 등을 막았다.
그룹 오너인 허창수 회장이 최대주주(12.15%)인 또 다른 주력 계열사, GS건설의 실적도 좋지 않다. 지난해 같은 기간 미분양 사태와 관련된 1910억원의 손실을 실적에 반영해 세전이익(-227억원)이 적자로 돌아섰다.
GS칼텍스와 GS건설의 회복이 전제되지 않고는 그룹 전체의 실적 개선이 요원하다. 이 때문에 주력사의 어려움을 예상한 GS가 포스코를 등지면서 과도한 가격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포기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수적인 경영 컬러를 가진 최고경영진의 선택이 최악은 막았다는 분석이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GS그룹에 대한 유동성 우려는 유가 급락시기에 투자부담이 가장 컸던 GS칼텍스의 충격이 그룹 전체에 미칠 영향이 다소 과장된 것"이라며 "다만 단기적으로 최고 경영진이 예고했던 인수합병(M&A) 전략은 '재무적 안정' 이후로 미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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