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09년 03월 13일 17:4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직장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상사는 무능한 상사도 아니고 성격이 나쁜 상사도 아닌 '그냥' 부지런한 상사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너무 부지런해 이것 저것 부하직원들의 실무까지 직접 챙기고 간섭하는 부지런함이 오히려 일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거기다 실무를 잘 모르고 부하 직원에게 괜한 부담만 주면 일이 꼬이게 된다.
최근 국내 기관들의 해외 채권 투자에 대한 논란이 딱 그 모양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발행한 채권을 국내 기관들이 대거 사들이면서 진정한 외화 조달의 의미가 퇴색했다는 비판에 청와대가 불끈했다는 후문이다.
청와대는 금융기관을 통해 관련 정보를 대거 수집하고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후속보도를 한 언론들은 외화 유동성이 부족한데 '이게 왠 일이냐'며 달려들어 청와대의 '불끈함'에 힘을 실어줬다.
그런데 언론의 비판과 청와대의 불끈함이 잘못된 방향으로 이 문제를 이끌어 갈 것 같아 전문가들은 벌써부터 걱정이다. 시장의 논리가 정치 논리에 묵살되면서 사태를 더 심각하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국내 기업이 해외 채권을 발행할 때 자국 투자자들이 모이지 않으면 외국 투자들이 불안해 하면서 채권 발행 여부 자체가 불투명해진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외화 조달의 기회마저도 잃게 된다. 그래서 요즘같이 불안한 시장에서는 우리나라 같은 개도국 발행자들이 자국 투자자에 대한 채권 배정 비율을 높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발행된 멕시코 정부의 20억달러 규모 채권은 40%가 자국에 배정됐다. 수출입은행 직전에 발행된 필리핀 정부채도 33%를 자국 투자자들이 매입했다.
자국 투자자들이 참여하지 않을 경우 해외 채권의 발행금리가 높아진다. 자국 투자자를 포함해 전체 투자자가 많이 몰리면 발행자의 협상력이 커져 발행금리가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자국 투자자들이 발행시장에서부터 참여할 수 없는 국내 시중은행 외화 채권 발행의 경우 리보(LIBOR) 기준 가산금리가 800bp를 훌쩍 넘고 있어 발행 자체가 가로막혀 있다. 해외채권 주관사들은 자국 투자자들이 배제될 경우 국내 발행자들이 최대 100bp의 금리 손해를 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문제를 간파한 감독당국은 국내 투자자들의 참여를 높이는 쪽으로 규정을 개정하려 하고 있다. 이미 지난 2월부터 유통시장에서의 참여를 사실상 허용했다. 하지만 발행시장 참여가 제한돼 있어 국책은행과 공기업 외 일반 기업 해외 채권 발행에는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발행시장에서부터 국내 투자자들의 참여가 가능하도록 추진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실무'를 잘 모르는 청와대는 산업은행·수출입은행 채권 논란으로 잔뜩 '뿔'이 나 있는 것 같다. 관련 규정을 바꾸려는 감독당국은 '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보다 세심하게 시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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