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 기사는 2009년 04월 09일 16:4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얼마 전에 자신을 주식투자자라고 밝힌 사람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A회사의 신용등급이 없네요. 우리나라 대표기업이자 상장사인데 신용등급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신용평가를 잘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일반투자자 입장에서 그런 반응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 신용평가를 받는 대상은 회사채나 기업어음 등 직접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차입하려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간혹 자체적인 신용도 파악을 목적으로 신용평가를 받는 경우가 있기는 하나 거의 드문 것이 현실이다.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 보았다. 상장사라는 기업들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회사들이다. 그리고 이들 기업은 영업실적 등에 대한 공시, IR활동 등 투자자보호를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회사의 신용도를 명쾌하게 파악할 수 있는 신용등급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사실이 더더욱 불만스러울 것이다.
신용평가가 투자자 혹은 자본시장의 니즈(Needs)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 원칙에도 불구하고 실제는 회사채시장을 비롯한 직접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차입하는 경우 필수적 요건으로 신용평가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채무증권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의무화에 따라 신용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신용평가를 통한 투자자 보호라는 관점에서 지분증권 투자자는 자연스럽게 외면당하고 있다.
실제 제도적 의무사항이 아닌 경우로서 투자자의 요구에 의해 신용평가가 이루어진 경우는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자본시장이 아직까지도 소비자 중심의 시장이 아닌 생산자 중심의 시장임을 반증하는 명확한 사례다. 불특정다수 투자자의 요구가 너무도 쉽게 묻혀지고 있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는 기업들 중 신용등급을 부여받고 있는 회사는 전체의 20% 수준에 불과하다. 현재의 제도하에서 기업어음이나 회사채를 통해 자금조달을 하지 않는 회사는 신용평가를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회사의 신용도를 알리고 싶지 않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IMF 외환위기 이후 공시제도를 강화하고 회계투명성을 높이려는 다각적인 노력의 결과 상장사에 대한 정보가 과거에 비해 훨씬 풍부해졌고 그 투명성도 상당히 개선되었다. 그러나 정보의 양과 투명성에 대한 불만은 여전한 것 같다. 또 투자대상 기업의 실질을 파악할 수 있게끔 하는 정보를 접하기가 어렵다는 볼멘소리도 자주 듣게 된다.
물론 상장사에 대한 기업분석 정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보획득을 위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면 증권사의 기업분석 리포트를 비롯한 분석정보를 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기업분석 정보가 제공되는 기업은 업종대표기업에 국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관점 역시 성장성과 주가전망에 치중되어 있다. 신용평가를 받지 않은 경우 투자대상기업의 리스크나 신용도에 대한 분석정보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주식시장의 안정화를 위하여 장기투자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고들 한다. 장기투자는 기업에 대한 리스크분석이 기본이다. 성장성에 대한 전망과 함께 장기적인 리스크분석이 이루어져야만 장기투자가 가능한 것이다. 인프라가 없는 상황에서 장기투자를 주장하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직접금융시장의 중요한 축이 되고 있는 주식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상장기업에 대한 신용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투자자에게 기업의 신용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합리적인 투자의사결정을 유도하는 한편, 효율적인 투자자 보호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신용평가의 효용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기업의 사업 펀더멘털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정보 및 신용도와 관련된 정보가 제공됨으로써 합리적이고 장기적인 투자관행이 정착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안정적인 발전을 가능케 할 것이다. 또한 주식시장의 안정화는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조달 가능성을 높임으로써 기업의 자금조달 여건을 개선시킬 수도 있다.
아울러 기업 가치를 결정하는데 있어 신용도가 중요한 요소가 되므로써 기업가치의 재조명은 물론이거니와 건전경영 풍토를 정착시킨다는 측면에서도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처럼 신용평가는 투자자, 기업, 금융시장 모두가 Win-Win 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방편인 것이다.
물론 기업입장에서는 그 효용이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효용보다는 신용평가를 받는 과정과 그 결과가 일반에 공개된다는 사실이 상당한 부담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금융시장의 안정화, 자금조달 여건의 개선, 신용도에 의한 기업가치의 재조명, 건전경영 풍토의 정착 등 신용평가를 통한 다양한 효익을 가장 직접적으로 누릴 수 있는 대상이 바로 기업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당장은 귀찮을 수도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의 효용을 생각한다면 투자자의 Needs를 반영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신용평가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서브프라임사태 이후 신용평가의 신뢰성을 높이고자 정책당국은 물론이거니와 신용평가사들 역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신용평가의 신뢰성을 높이려는 다양한 노력을 통하여 금융시장의 중요 인프라로서의 역할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신뢰할만한 신용평가가 이루어지고 그 용도가 다양해진다면 신용평가는 금융시장 발전에 크나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신용평가라는 사회적 자산의 쓰임새가 너무나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업에 신용평가에 대한 부담을 안길 수 있다는 우려보다는 신용평가의 저변을 확대시킴으로써 신용평가가 금융시장의 안정적인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는 측면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칼럼니스트 소개]
[학력 및 경력]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원
1994 한국 P&G
1995 ∼ 한국기업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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