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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위기 터지자 외화자산 회수 불가능 단기차입 중심 조달구조가 화 불러

황은재 기자공개 2009-09-16 10:38:32

이 기사는 2009년 09월 16일 10:3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7개 시중은행은 지난해 9월말 현재 2000억달러가 넘는 외화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었다. 외화 유동성부채를 웃돌아 지표상으론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리먼사태가 터지자 국내 은행들은 달러가 없어 쩔쩔맸다. 미국과 유럽의 외화조달 시장은 완전히 막혔고 외국 은행들의 차입금 상환 요구가 빗발쳤다. 100% 가능하던 외화차입금 만기연장률은 20%대로 뚝 떨어졌다.

은행들은 고작 1000만달러를 얻기 위해 그동안 쳐다보지도 않던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와 중동 국가로 날아갔다. 그나마 공모채권을 발행한 게 아니라 고금리를 지불하고 사모로 조달했다.

넉넉한 외화유동성 관리지표는 숫자에 불과했다. 외화자산은 만기가 돼도 회수할 수 없었다. 일부 수출입 기업에서 무역금융을 회수하자 정부가 만류하고 나섰다. 외화대출은 기업들이 갚지 못하는 일이 속출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연장해 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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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국내은행의 대외채무 현황..2006년1분기 이후 단기대외 채무가 장기 대외채무 규모를 넘어섬.

◇ 컴퓨터·전화기까지 팔아 외화조달

올해 1월 수출입은행이 리먼 사태 이후 막힌 외화조달 길을 열었고 뒤이어 산업은행도 조달에 성공했지만 리보(Libor)금리에 6.20%의 가산금리가 붙었다. 불과 1년전만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금리였다.

img2.gif조달비용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조달하느냐 못하느냐만 관심이었고 조달에 실패하면 그날로 은행 문을 닫아야할 것 같은 위기 상황이었다.

외화조달을 위해 사무용 자산까지 매각했다. 신한은행은 컴퓨터와 전화기 등 IT 제품을 팔아 5000만달러의 외화를 조달했다. 매각한 자산을 다시 임대하는 조건(Sale&Lease Back)이다.

쓸 수 있는 수단은 모두 동원됐다. 서랍 속에 넣어두고 사용하지 않았던 MTN 프로그램도 다시 꺼냈다. 국내에서 원화로 조달한 자금이 스왑시장을 통해 달러로 둔갑하기도 했다. 어떻게 하든 달러만 구하면 됐다. 국민은행이 발행한 커버드본드는 수수료와 이자 등을 합하면 총 조달비용이 연 8%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말레이시아는 국내 은행들의 대표적인 조달시장으로 등장했다. 선진 시장에서 조달이 되지 않자 대안으로 이슬람금융의 중심지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6월 3억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한 하나은행을 비롯해 시중은행 가운데 말레이시아를 다녀오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 자산의 고정화..외화유동성 위기 키웠다

외화 유동성이 마른 데는 단기차입이라는 부채구조의 문제였지만 외화자산의 문제도 컸다. 무역금융과 외화대출에 쏠려 있는 외화자산은 고정자산에 가까워 만기가 돼도 상환되지 않아 외화유동성 경색을 심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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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 무역금융 분기별 증가율추이, 금융위기 확산전까지 큰 폭 증가

은행들은 우선 신규 무역금융부터 중단했다. 올해 6월말 현재 시중은행의 무역금융규모는 30조5746억원으로 9개월 사이에 17조원이나 줄었다. 무역금융이 급격하게 늘었던 하나은행은 절반 이상 줄였고, 신한은행도 40% 가량 축소했다.

외화대출은 은행의 발목을 단단히 잡았다. 외화대출은 싼 값에 돈을 빌려와 돈장사를 했던 은행과 낮은 이자만 본 차입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급증한 상품이다.

금융위기로 원화가치가 급락하면서 환율이 급등하자 외화대출자들의 상환 부담이 커졌다. 돈을 빌릴 때는 100엔당 900원이었는데 갚을 때가 되니 100엔에 1600원이 돼 갚을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고금리에 외화를 조달해 버티고 있는 은행으로서는 외화대출자들의 차환 요청이 달갑지 않았지만 '못 갚겠다'는 으름짱을 이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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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엔(100엔)/원 환율 추이, 리먼사태 이후 급등

한국은행도 지난해 12월 원화사용목적의 운전자금 외화대출 상환 기한 연장을 폐지했다. 대신 한·미 통화스왑 자금을 은행에 빌려줬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외화대출은 만기가 돌아와도 상환받을 수 없는 고정자산에 가깝다"며 "환율이 오르면서 상환능력이 떨어진 대출자들이 차환을 요청했을 때 은행이 들어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차환이 되면 은행은 다시 그만큼을 조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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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 은행 B/S 상 외화대출규모 추이 단위 : 억원

그렇다고 팔만한 외화유가증권도 많지 않았다. 외화자산 중 고작 10% 정도를 외화증권으로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시장 경색으로 시장성이 떨어지는 증권들이 많았고 다들 팔겠다고 하는 마당이어서 가격은 헐 값이 됐다. 앞서 관계자는 "은행들이 보유한 유가증권 가운데는 시장성이 의심되는 증권들이 있다"고 말했다.

금융시장이 다시 경색되면 외화유동성 위기는 재발하고 같은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다. 감독원이 중장기 차입을 늘릴 것을 주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통해 현지 은행을 갖는 게 최선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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