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1년 05월 19일 18:1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근 크레딧 시장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기업을 꼽으라면 두산그룹과 STX그룹이다. 두산그룹은 중공업과 건설의 PF문제와 밥캣 인수금융의 리파이낸싱 문제가 핵심 관심 사안이다. STX그룹 역시 STX건설의 유동성 부족과 해운·조선업의 불황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크레딧 시장에서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당사자인 기업에서는 시장의 우려에 대해 당연히 과장됐다는 입장을 보인다. 특히 크레딧시장처럼 보수적인 투자자를 만나면 양쪽의 시각은 첨예하게 대립하게 마련이다. 회사채를 살 때 최우선적으로 검토할 일은 아무래도 '돈 떼일 가능성'이 얼마나 있느냐일 테니까 말이다.
서로 설득이 어려운 발행사와 크레딧시장의 중간에 신용평가사가 있다. 발행사가 누구에게나 노출할 수 없는 정보를 신용평가사에는 제공하는 이유는 자신들에 대한 디스카운트를 '신용평가'의 언어로 해소시켜 달라는 것일 게다. 투자자가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과 평가보고서에 의존하는 이유는 자신들과 같은 시각을 견지하고 있지만 보다 풍성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보다 객관적인 가이드라인을 설정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신용평가사는 발행사 눈치를 지나치게 많이 본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최근 두산그룹과 STX그룹에 대해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STX그룹은 지난 12일 한신정평가를 창구로 비공개 크레딧 IR(기업설명회)을 개최했다. 사실 한달 전 우리투자증권에서 같은 행사를 연 적이 있어 참여희망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뭔가 새로운 특별한 것이 나오겠다는 기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두시간 넘게 진행된 IR을 듣고 나온 시장참가자들은 불만이 많았다. 그룹은 자신들의 성과를 부각시키고 견해를 강조하는데 힘을 쏟았다고 한다. 질의응답이 무려 1시간 40분이나 진행됐는데도 참가자들은 시원스런 답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결국 일방통행식 IR이 된 셈이다.
비공개 IR이라고는 하지만 한신정평가는 심할 정도로 언론의 접근을 막았다. 출입을 제한한 것이야 이해할 수 있다고 하지만 IR과 관련된 어떤 내용도 기사화하지 말 것을 종용했다.
IR에서의 발표내용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우습게도 비공개를 요청했다는 STX그룹에서 선선히 자료를 제공한 것이다. 한신정평가가 '절대 줄 수 없다'고 했던 그 자료를 말이다. 자료는 STX그룹이 자신들의 성과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보통의 IR보고서와 전혀 다를 바 없었다.
IR을 했지만 STX그룹이 거둔 성과는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크레딧시장의 우려는 지속되고 있다. 중간에 있어야 할 신용평가사라는 여과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탓일 거라고 기자는 보고 있다.
18일 저녁 두산그룹의 지주회사 ㈜두산의 신용등급을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한신정평가가 거의 동시에 상향해 공시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등급 상향 자체가 쇼킹한 뉴스였다. 최근 상당한 구조조정 노력을 하고 있고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두산그룹은 굵직굵직한 크레딧 이슈가 있는 곳이다. '아무도'라고 해도 좋을만큼 두산의 신용등급 상승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평가사들은 상당 기간을 치열한 토론으로 보낸 후 등급상향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에서도 반대여론이 많았다는 뜻이다. 취재를 해 보니 평가를 직접 담당한 당사자들 사이에서는 등급 상향에 반대가 많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등급이 상향된 것을 보면 평가 외적인 면, 이를 테면 영업확대나 고객과의 관계 유지에 대한 압박이 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정기평가 시즌이니 비슷한 시기에 평정에 돌입했을 테고 자료도 비슷한 때에 받았을 것이다. 그러니 동시에 등급이 발표된 것을 이해해야 할까.
두산그룹은 신용평가사에 빅 클라이언트(big client)다. 계열사 대부분 신용등급을 보유하고 있고 채권발행 규모도 큰 편이다. 등급 상향 압력에 약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세 평가사는 두산그룹이 정한 마지막 날까지 등급 공시를 미뤘다. 그리고 막판까지 몰려서야 동시에 등급을 올렸다. 스스로 상향의 논리가 부족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고 발행사에 대해, 그리고 다른 평가사에 대해 눈치를 본 것이라고 이해한다.
STX그룹의 사례에서는 불필요한 루머를 키운 측면도 있다. STX건설의 구조조정에 대한 소문이 그것이다. 진상은 강덕수 STX그룹 회장이 외부에 구조조정 컨설팅 회사를 만들 계획이라는 것이었다. 한신정평가가 IR의 결과에 대해 '노 코멘트'로 일관하지만 않았더라면 소문은 금새 수그러들었을 것이다. 한신정평가의 정보 차단이 과연 STX그룹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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