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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바이오 클러스터 기행|대전]K-바이오 기원 LG사단, 20년 지나도 굳건한 네트워크⑤박순재 알테오젠 대표 "LG 출신 자부심 계승…선배들 역할 중요"

대전=차지현 기자 공개 2024-05-03 08:52:01

[편집자주]

바이오 클러스터의 아이콘 미국 보스턴. 한 세대 이상 구축된 각종 신약개발 인프라는 세계 내로라하는 바이오텍들이 보스턴을 '글로벌 바이오 메카'로 지목하는 배경이다. 한국의 보스턴을 꿈꾸는 바이오 클러스터들 또한 아직 초기 단계지만 각자의 역량과 매력을 앞세워 기업 유치에 혈안이다. 산학연 그리고 임상 병원의 유기적 연계가 갖춰진 전국 각지의 'K-바이오 클러스터'를 찾아 경쟁력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5월 02일 08:5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바이오 업계에 도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LG가 잘한 일은 국내 우수한 바이오 인재들을 한데 불러모은 점, 오너의 지지 하에 오랜 기간 전폭적으로 지원한 점 그리고 적정한 시기에 이들을 '풀어준 점' 세가지라는 얘기다.

당시 리스트럭쳐링(Restructuring) 과정에서 LG그룹을 빠져나온 연구진들은 앞다퉈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이른바 'LG사단'으로 불리는 이들은 현재 국내 바이오업계를 주름잡는다. 더벨은 맏형으로 통하는 알테오젠 박순재 대표이사를 만나 K-바이오에서 LG사단이 갖는 의미와 역할을 들어봤다.

◇LG 구조조정 당시 구축된 LG사단, 지금도 네트워크 '끈끈'

국내 바이오 역사는 LG사단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현재 내로라하는 바이오텍 상당수가 LG 출신이 설립한 곳이다. 1세대 바이오텍으로 거론되는 크리스탈지노믹스, 리가켐바이오, 제노스코, 알테오젠 등이 해당한다. 브릿지바이오, 지아이이노베이션, 수젠텍, 파멥신, 펩트론, 와이바이오로직스, 오름테라퓨틱 등도 LG 출신이 세운 걸로 유명한 업체들이다.

국내 대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제약사업에 진출했다. 역사는 LG화학이 충남 대덕연구단지 내 LG바이오텍연구소를 설립한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SK그룹 등이 1980년대 후반에 바이오 사업에 진출한 것과 비교하면 8년가량 빠른 시도였다. LG그룹 2대 회장인 고(故) 구자경 명예회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가파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선두주자로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LG그룹이 항암·항체 관련 사업을 접기로 한 2000년대 초 대규모 인력 이탈이 생겼다. 회사를 떠난 연구원들은 바이오텍 창업에 나섰다. 직접 창업한 이들만 추산해봐도 대략 40명에 달한다. 창업하지 않고 바이오텍으로 옮겨가 C레벨급에 있는 이들까지 합하면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난다.

모두 뿔뿔이 흩어진 데다 창업붐 시기 대비 약 20년이 지났음에도 LG 네트워크는 굳건하다. 정기적으로 오프라인 모임을 갖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서도 지속해서 교류 중이다.

박 대표는 "LG생명과학 연구소 출신들이 주축이 된 갈라파고스라는 친목 모임을 일 년에 한 번 개최하고 있다"면서 "대전 지역 LG생명과학 출신 모임을 비정기적으로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모임은 꽤 개방적인 분위기다. 특정 분야에 한정하지 않고 바이오산업과 관련된 모든 내용이 논의 주제가 된다. 각자 회사가 다른 만큼 경영 상태 등을 공유하는 비중이 큰 걸로 전해진다.

박 대표는 "개인적으로 만나는 시간에 각자의 경험에 기반한 자문을 자유롭게 하는 편"이라면서 "특정 주제를 가지고 있진 않고 자신이 속한 조직의 사업 진행 현황 및 일반적인 한국 바이오 업계의 제반 사항에 대한 폭 넒은 내용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과거에는 LG 출신 바이오 회사들을 방문해 연구개발(R&D) 진척 상황 및 회사 현황 등을 공유하는 모임이 있었다"면서도 "현재 이런 성격의 모임은 중단됐다"고 덧붙였다.

◇최남석 박사로 뭉친 후배 바이오텍, '글로벌 성과' 속속

명맥이 견고하게 이어질 수 있는 배경엔 고(故) 최남석 박사가 있다. 최 박사는 럭키중앙연구소 연구소장부터 LG화학 부사장, 기술연구원장을 지내며 수많은 인재를 육성해온 인물이다. LG생명과학의 산파이자 LG 출신 후배들 입장에선 정신적 지주와도 같다.

그는 과거에 구애받지 말고 새로움을 추구하라고 늘 강조했다고 한다. LG 출신 연구자들 중 창업에 도전한 이들이 유독 많은 것도 후배들이 그의 정신을 계승한 덕분이다. 사람을 중시하는 문화 역시 그가 입버릇처럼 말했던 메시지다.

최 박사의 정신에 대한 강한 공감대. 이는 오랫동안 자발적으로 후배들이 똘똘 뭉치는 힘이 됐다. 신약개발을 향한 뜨거운 열정, 과학자로서 정직함, 서로 밀고 끌어주는 상생 분위기로 요약되는 LG사단의 특징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LG그룹의 R&D 문화는 데이터를 조작하거나 숨기지 않는 등 정직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20여년간 수없이 많은 교류의 결과물이 최근 들어 속속 나오고 있다. 리가켐바이오, 알테오젠, 오름테라퓨틱 등이 글로벌 빅파마에 자사의 기술을 이전하는 빅딜 성과를 냈다. LG사단 출신이 세운 바이오텍 중 상장사는 10곳을 훌쩍 넘어섰다. 기업공개(IPO)를 대기 중인 후배 기업들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LG사단 OB가 주축이 돼 후배 바이오텍을 돕기 위한 펀드를 조정한 행보도 눈에 띈다. 지난해 4월께 리가켐바이오·알테오젠·수젠텍·펩트론 등 바이오텍 네 곳과 기업은행은 235억원 규모로 IBK-솔리더스 바이오 투자조합을 결성했다. 투자 혹한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후배 기업들을 돕겠다는 취지였다.

박 대표는 "LG 출신 연구원을 중심으로 국내 바이오 1세대라는 자부심이 현재까지 계승돼 왔고 LG가 국내 바이오 선두주자였음에도 지난 10여년 동안 신약개발 사업에서 대규모 투자나 실적이 없는 상황에서 LG 연구소 출신들이 개인적인 차원에서라도 국내 바이오산업의 선도(leading) 역할을 하는 바이오텍을 육성하자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 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해서 LG사단 같은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수도권에 집중된 R&D 역량이 분산돼야 국내 업계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의 중심에 위치하면서 R&D 여건을 다 갖춘 대전이야말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하는 바이오 클러스터라고 강조한다.

박 대표는 "현재 한국은 수도권 집중화 및 과밀 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런 상황이 더욱 가속화되면 바이오텍의 탄생이나 성장은 기대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면서 "대전 바이오 생태계의 발전은 국내 바이오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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