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3년 08월 29일 16:4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 얼마 전 만난 코스닥 상장사의 H대표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 찍어줄 곳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신주인수권(워런트)은 적어도 반은 넘겨줬으면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줄곧 비상장사를 운영하다 상장사를 인수한지 얼마 되지 않은 H대표는 자신의 지분율이 높지 않다는 점을 늘 꺼림칙해했다. H대표 회사의 주가는 최대주주의 경영권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기관들의 외면을 받은 탓에 작은 악재에도 널뛰기를 반복하는 상태였다. 개인적으로 보유한 현금이 많지 않은 H대표는 결국 싼 값에 워런트를 취득하는 방식으로 지분을 늘리겠다고 마음 먹었다.# 왠만해서 불평불만을 하지 않는 H증권사의 K부장이 분리형 BW발행을 금지하는 법안을 놓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법을 만들어도 되느냐"며 목청을 높였다. K부장은 기아차를 비롯해 분리형 BW로 기사회생한 기업들의 사례를 들며 자금사정이 어려운 기업들에게 분리형 BW만큼 좋은 자금조달 수단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K부장이 근무하는 H증권의 기업금융팀은 중소·중견기업 BW발행으로 괜찮은 실적을 거두는 곳으로 소문나 있다. 분리형 BW 발행이 금지된 탓에 자기자본계정을 통한 BW 투자로 짭짤한 수익을 거둬 온 H증권은 하루아침에 '밥그릇'을 빼앗기게 됐다.
# 검찰 수사관 C계장은 BW라는 말만 들어도 치를 떤다. 뭇사람들보다 정의감이 남다르고 다소 거친 구석이 있는 C계장은 "일단 '비따블유' 찍겠다는 기업은 무조건 째려본다"고 했다. C계장에게 BW는 '악마가 만든 종잇조각'이나 다름없다. 오랫동안 금융 범죄를 수사해 온 C계장이 BW발행과 유통 구조를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주가조작이나 불법증여, 기업 인수합병(M&A) 을 둘러싼 범죄 피의자들 중 상당수가 BW에 손을 댔다는 게 C계장이 BW를 혐오하는 이유다. 그래서 C계장은 분리형 BW 발행을 금지하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어느 누구보다 반기고 있다.
# 상장사들의 BW 발행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요 며칠 동안 증시가 마감된 오후 3시를 기점으로 하루에도 수십 개 기업들이 BW발행을 공시하고 있다. 이사회 결의일 기준 이달 28일까지만 BW발행이 가능한 까닭이다. 이사회 결의일과 공시일 사이에 며칠 동안 여유기간이 있는 만큼 한동안 BW발행 공시는 계속될 전망이다.
분리형 BW발행 금지가 임박한 최근에 발행되는 BW 대부분은 공모가 아닌 사모 형태를 띠고 있다.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가 아닌 특정 금융회사나 기관 또는 개인과 협의 하에 BW를 발행한다는 얘기다. BW의 쿠폰금리는 0%에 수렴하는 경우가 많다. 투자자들에게 주식 전환을 통해 이익을 실현하라는 것과 다름없다. 분리 가능한 신주인수권의 적어도 절반, 많게는 70가 최대주주 혹은 특수관계인 몫이 된다는 점도 비슷하다.
분리형 사모 BW발행이 잇따르는 것은 자금을 필요로 하는 기업, 최대주주, 투자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돈맥 경화'가 생기기 전에 가급적 자금을 쌓아놓자는 생각에, 최대주주는 자기 지분이 희석되는 일을 방지하거나 허약한 지배구조를 강화하기 위해 분리형 BW 발행에 나서고 있다. 투자자는 두번다시 오지 않을 특수가 벌어지고 있는데 마다할리가 없다.
법안 발효를 앞두고 투자은행(IB)업계와 기업들은 하나같이 분리형 BW가 절실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유상증자나 채권발행을 하기 어려운 기업들의 자금조달 환경이 악화될 것이라는 게 이들이 내세우는 이유다. 하지만 편법으로 지분을 취득하려는 기업 오너나 단기 차익을 노리는 기관투자자들이 러시에 합류하는 양상을 보면 오히려 BW발행 금지 법안이 바람직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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