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5년 12월 16일 10:2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제가 국내 GP들에게 드리는 첫번째 충고는 "제대로 된 협상 상대를 고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기업이 나섰다 해도 M&A 과정에서 펀드 GP를 대등한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싶으면 협상을 중단하고 철수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 기업은 애초에 펀드와 정상적인 M&A 거래를 할 생각이 없었을 겁니다.기업이 정상적인 M&A 거래를 원한다면 매물이 필요한 인수 대상인지, 적정한 가격이 어느 수준인지만 고민하면 그만입니다. 같은 매물이라면 상대방이 확실한 오너가 있는 기업이든 펀드 GP든 협상이 달라질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안 그런 경우가 왕왕 목격됩니다. 금호고속 M&A 협상 당시 원매자인 금호아시아나는 매각자인 펀드들의 기대수익률을 살뜰히도 따졌다고 합니다. "이 정도 쳐주면 섭섭치 않게 버는 것 아니냐"는 식입니다. 대체 M&A 밸류에이션을 기업가치와 상관없이 매각자의 취득원가에 몇퍼센트 차익을 얹어주는 식의 셈법으로 하는 예가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요? 거래가 무산되긴 했지만 현대백화점이 동부익스프레스 인수 협상을 벌일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합니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야 그 방식이 매물의 본래 가치보다 현저히 싸게 살 수단이 된다면 안할 이유도 없겠죠.
두번째 드리는 충고는 "아무 생각이 없으면 처음부터 하지 말라"는 겁니다. 경영진이 탁월해 아무 관여 안해도 기업가치를 쭉쭉 올려준다면야 굳이 나설 일 없겠죠. 바이아웃 투자가 아닌 기존 기업의 성장자금(growth capital)을 대는 투자가 이런 식이라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손댈 거 없는 좋은 기업은 투자 기회를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 마냥 어렵습니다. 이미 건실하게 돌아가고 있기에 굳이 자본비용이 상대적으로 많이 드는 에쿼티 투자를 받을 동기가 크지 않을 것이고, 이마저도 투자자들이 긴 줄을 늘어 서있을 게 뻔합니다.
그렇다면 결국 손을 대야 하는데, 뭘 어째야 기업이 좋아질 것인지에 대해 아무 개념 없이 투자를 감행하는 것이라면 곤란한 일입니다. 다른 GP들 하는 것 처럼 경영은 전문가에 맡기고 재무는 틀어쥐고 있으면 대충 잘 굴러갈까요? 누가 그러더군요. 국내 GP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쓰는 투자전략이 바로 '스프레드 앤 프레이(Spread and Pray)'라고.
제가 드린 첫번째 조언의 근저에는 '국내 기업들이 GP들을 은연 중에 업신여긴다'는 관념이 깔려있습니다만, 이게 실은 자업자득인 부분도 있다는 말씀을 감히 드립니다. 사람 간의 일이 그렇지 않습니까. 존중을 받으려면 그만한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우선입니다.
지금까지 국내 사모투자 시장에서 활동해 온 GP들에 대한 평가는 과연 어떻습니까. 개중에 치밀한 협상과 투자, 탁월한 투자 성과 등으로 실력을 입증해 보인 GP들도 물론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아직 멀었습니다. 투자 방식에 대해서도 "고리대부업이랑 뭐가 다르냐"는 비아냥도 숱하게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한국 자본시장에 의미있는 화두라도 던졌습니까. 한국 기업 소유 구조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가능성을 보여준 투자라도 어디 있었나요. 뭐 돈 벌자고 하는 일인데, 꼭 그래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요. 이 분야가 돈이 된다는 소문에 아무 준비 안된 분들이 아무 개념 없이 뛰어드는 모습들을 종종 보아 왔습니다. 물론 훌륭한 이력과 배경을 가진 분들이 많긴 하더군요. 그런 이력을 아무나 가질수는 없는거겠죠. 다만 시장은 사모투자 '그까이꺼' 아무나 할 수 있는거구나 생각할겁니다.
이런 저런 충고를 드리다보니 다소 불편한 언사들도 섞인 거 같아 후회도 밀려오는군요. 이게 다 한국 사모투자시장에 대한 저의 애착 때문이라 여기시고 너무 노여워 마셨으면 합니다. 느리지만 그래도 세상은 전진해 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국내 GP 여러분들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또 많이 성장하셨습니다. 올해보다 내년을 더 기대하게 되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겠죠. 2016년 한해도 건승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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