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시장 '아세안(ASEAN)'을 잡아라 [고영경의 Frontier Markets View]
고영경 박사공개 2016-05-09 17:53:05
[편집자주]
바야흐로 저성장의 시대다. 기업들은 다시금 성장의 기회를 얻기 위해 새로운 시장으로 눈을 돌린다. 최근 십여년간 글로벌 경제 성장과 물가 안정을 견인해 온 중국도 과거와 같은 고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이머징 시장이 더 이상 아니다. 이제 글로벌 기업들의 눈은 그 다음 시장인 프론티어마켓으로 향한다. 아시아 프론티어 마켓의 중심부 말레이지아 쿠알라룸푸르 현지에서 경영학 교수로 재직하며 이 시장의 성장과 가능성을 지켜봐 온 필자가 이 시장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가려고 한다.
이 기사는 2016년 04월 21일 11:4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근 중국 경제성장의 둔화, 유럽의 경기침체와 더불어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가중되면서 인도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이 서둘러 진출한 데 이어 최근에는 한국기업들의 관심이 부쩍 커졌다.한국 기업들이 경쟁하듯 이 시장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동남아시아 지역은 한국의 제2위 교역대상국임에도 불구하고 인건비가 싼 생산기지나 휴양지로만 여겨져 왔다. 필자가 말레이시아의 대학으로 부임했던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밀림과 빈민촌을 떠올리며 불쌍한 눈초리로 바라보던 사람들이 많았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인데, 그만큼 현지의 실상을 전달할 정보가 부족했던 것이다.
최근 분위기는 사뭇 달라져 있다. 중국의 고성장에 대한 믿음이 차츰 사그러들면서 아세안에 대한 특집기사와 다큐멘터리 방송이 여기저기 나오고 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이 지역에 현지조사를 나오는 기업체들이 증가하고 있고, 삼성, 엘지, 현대가 아닌 다양한 브랜드들이 눈에 많이 띄기 시작했다.
아세안 지역이 이머징 마켓 가운데서 부각되는 이유는 거대한 인구규모와 정치적 안정성에 기반한 높은 경제성장률 때문이다. 아세안 지역은 2014년 기준 6억3000만명으로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고, 2030년에는 7억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남미와 아프리카, 중동지역 등이 정치적 불안과 원자재 가격하락에 따라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상태인데 반해, 아세안 지역은 상대적으로 정치·경제적으로 안정돼 있다.
개방의 물결에 늦게 동참한 미얀마에서도 평화적인 정권 이양이 이루어졌고, 대규모 시위를 불러일으킨 총리 스캔들에도 불구 말레이시아의 자본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다. 각종 통계를 보더라도 아세안 지역의 잠재력은 확연히 드러난다. 아세안 지역 GDP는 2014년 2.57조 달러로 2007년 대비 거의 두 배 증가하며 세계 7위를 기록했다.
지난 2년간의 세계경제 둔화 기조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이 지역 경제성장률은 전세계 평균을 훌쩍 넘겼으며 2016년 역시 높은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2015년 12월 31일 아세안 경제공동체가 공식 출범함으로써 단일시장으로서의 잠재력을 드러냈다. 아세안 경제공동체는 98% 이상 관세를 철폐하는 등 교역 자유화를 통해 2030년까지 세계 4위의 경제블록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세안은 인프라 개발과 소비 증가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우리나라 기업들과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브루나이를 제외한 7개 국가는 여전히 산업화에 필수적인 인프라 구축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인프라 개발 분야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일찍이 터를 닦으며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얀마 행정수도인 네피도에 위치한 국제컨벤션센터는 중국의 도움으로 2010년 완공되었고, 시장 개방을 준비하기 위한 미얀마 정부 세미나는 일본이 지원해왔다.
최근 일본은 아시아개발은행(ADB)을,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앞세우며 아세안 인프라 구축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제공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은 태국의 고속철도 사업에서 각각 한 구간씩 수주했고, 인도네시아 고속철도 사업은 중국이 차지했다. 일본은 미얀마의 틸라와 산업단지를 정부와 공동개발하기로 합의했다.
아세안 인프라 개발 참여에 관한 한 한국은 상대적으로 후발주자다. 개발 지원 규모면에서도 중국과 일본에 한참 뒤쳐져 있다.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도 사업의 경우 양국의 합의가 이루어진 때가 2013년인데 한국컨소시엄은 2015년 10월에야 구성됐다. 당연히 수주 전망이 밝지 않다.
그렇다고 향후 1조 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아세안 인프라 개발 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다. 육상 및 항만교통, 발전소와 상하수도 시설, 도시개발, 산업단지, 통신망 등 다양한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가 여전히 유효하며, 양국의 지나친 영향력 확대를 염려하는 각국 정부의 균형정책을 적절히 이용한다면 내실 있는 성과를 기대해 볼 만하다.
아세안의 소비시장은 더 주목해야 할 요소다. 아시아개발은행은 아세안 국가 GDP가 2030년까지 매년 6%~7.9%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이 지역인구의 50% 이상이 30세 미만의 청년들이며, 매년 500만명 이상의 인구가 중산층에 새로 편입되며 2020년에는 중산층이 4억 명에 달할 것 예상된다.
빠른 도시화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도시화는 내수 소비시장을 성장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한국이나 일본의 고령화 사회가 맞닥뜨린 소비절벽과는 정반대로 이 지역의 두터운 청년층이 소비의 중심 축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결혼하고 살림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유아용품을 소비한다. 더 이상 저렴하기만 해서도 안되고 품질도 좋고 브랜드 인지도도 있어야 지갑을 연다. 이들은 이미 전통시장보다는 현대화된 쇼핑몰과 온라인 마켓에서 트렌디한 상품을 구매하는데 시간을 쏟고, 취미생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이라도 이 지역을 바라보는 한국 내 시각이 '휴양지와 저임금 공장지대'에서 '젊고 왕성한 소비시장'으로 변화했다는 점은 대단히 고무적이다. 아세안 지역을 찾아오는 한국기업들의 과감한 도전과 선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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