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도 운용 손실…관리 사각지대 [ELS의 비밀] ④항셍 급락 여파...BIS 영향
김기정 기자공개 2016-09-09 10:02:15
[편집자주]
저금리 시대의 투자 대안으로 각광받던 ELS가 골칫덩이 신세로 전락했다. 투자자 뿐 아니라 이를 발행하고 운용하는 증권사의 생사를 가를 정도로 큰 손실을 안겨주고 있다. 금융당국도 위험 관리 등 다양한 이유로 ELS 시장을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ELS 시장의 격변 속에서 어떤 비밀들이 숨겨져 있는지 파헤쳐본다.
이 기사는 2016년 09월 05일 17:2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해 홍콩항셍지수(HSCEI) 급락으로 주가연계증권(ELS) 헤지 운용 손실이 급증하자 증권사들은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실적 악화는 물론이고 증권업 전반의 건전성을 해친다는 문제제기도 곳곳에서 이어졌다. 금융감독당국은 자체 운용 현황을 파악하고 관리·감독을 위한 수단을 내놓았다.헤지 운용에 몸담고 있는 곳은 증권사뿐이 아니다. 몇몇 시중은행은 금융위기 이전부터 운용을 이어오고 있다. 시장이 태동하기 이전부터 선점을 원했던 곳이 시중 은행들이었다. 한때 증권사보다 컸던 운용 규모는 금융위기 이후 크게 줄어든 상태다. 그러나 지난해 HSCEI 급락 여파가 은행권에도 고스란히 전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위험을 무시하고 넘어갈 정도로 적지는 않다는 게 업계 안팎의 평이다.
◇ELS 시장 선점 원했던 시중은행…금융위기 이후 규모 축소
애초 ELS 시장에 눈독을 들였던 곳은 증권업계가 아니라 은행업계였다. 2003년 증권거래법 시행령에 따라 ELS가 국내에 첫 선을 보이기로 했을 무렵, 시중은행들은 이미 관련 조직 정비를 마친 상태였다. 외국계 투자은행(IB)의 쏠쏠한 수익원이었던 ELS 발행 및 운용을 통해 비이자수익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금융감독당국은 증권사만 ELS 발행이 가능하다는 지침을 내렸고, 은행권은 사업 철수 대신 자체 헤지를 택했다. 국내 증권사가 외국계 IB에 ELS 헤지 운용을 위임하는 백투백 헤지(Back-to-back hedge) 업무를 시중은행이 맡은 것이다. 트레이딩 업무는 별도 라이선스 없이 은행권도 할 수 있는 분야다.
국민은행, 외환은행, 신한은행 등 대다수 시중은행이 자체 운용에 뛰어들었다. 당시 은행권 헤지인력과 규모는 증권사보다 컸다. ELS 1세대로 분류되는 초창기 은행권 자체 헤지 인력 중 일부는 증권사로 이직하기도 했다. 여전히 은행업권과 증권업권 간 헤지 인력 이동은 비교적 왕성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때 수 조원 대에 달하기도 했던 그 규모는 현재 크게 줄어든 상태다. 막상 운용에 돌입해본 결과 '리스크 대비 리턴'이 기대만큼 크지 않다고 시중은행들은 절감했다. 외국계 IB가 시장 장악을 위해 공격적으로 프라이싱(pricing)을 하자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은행권이 헤지 운용 규모를 줄이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규제 강도가 대폭 강화됐고, 시중은행은 스스로 보다 엄격하게 리스크 관리에 나섰다.
◇HSCEI 급락 시중은행에도 여파
현재 우리은행, 하나은행, 기업은행 등 시중은행이 헤지 운용 업무를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의 경우 지난해 홍콩항셍지수(HSCEI) 급락으로 손실 규모가 급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우리은행은 지난 2012년부터 3년 간 국내외 주요 지수가 큰 낙폭 없이 호조세를 이어가며 운용수익이 증가하자 헤지 규모를 늘렸다. 지난해 하반기까지만 해도 그 규모는 1조 원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중대형 증권사와 맞먹는 규모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HSCEI가 떨어지자 국내 증권사들과 마찬가지로 손실 폭이 확대됐고, 헤지 손실은 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끌어내린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했다. 지난해 6월 말 14%였던 우리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은 9월 말 13.38%로 0.72%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기간 1만 4000대였던 HSCEI는 9000선까지 급락했다. 현재 운용 규모는 수 천 억 원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감독당국은 몇 년 전부터 은행권의 자체 헤지 현황을 주기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다만 검사의 주 대상은 ELS 발행 주체인 증권사다. 감독당국은 주로 증권사의 자체 헤지와 백투백 헤지의 비중, 백투백 헤지 대상 등을 기준으로 현황을 들여다보고 있다. 백투백 헤지 대상으로서의 은행 현황이 파악되는 셈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시중은행은 자산 규모가 크기 때문에 전체 자산에서 자체 헤지에 투입되는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은 편"이라며 "ELS 발행 및 헤지 현황은 자본시장국에서, 은행의 건전성 등 부문은 은행국에서 업무를 맡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업계 안팎에서는 시중은행의 ELS 자체 운용이 시대에 역행한다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발 방지를 막고자 리스크 관리에 보다 무게를 싣고 있는 국제적 움직임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볼커룰 시행을 통해 대형은행의 자기자본 투자를 제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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