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8년 08월 29일 08시16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자승자박(自繩自縛). 사전에서는 이 말을 자신의 언행 때문에 자기가 속박당해 괴로움을 겪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자기가 주장한 의견이나 행동으로 말미암아 난처한 처지에 놓일 때 주로 쓰이는 한자성어다.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취임 100일을 맞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생명보험사의 즉시연금 미지급 사태와 관련해 물러서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이는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이 즉시연금 관련 미지급액을 일괄 지급하라는 금감원의 권유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보험사들은 법정공방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금감원도 현장검사 등 강경대응 방침을 세웠다. 윤 원장은 "소송과 제재(검사)는 별개"라면서 보복 프레임에 걸리더라도 할 일은 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이들 보험사에 대한 종합검사 가능성에 대해서도 "필요하다면 욕을 먹더라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금감원은 왜 강경대응에 나서는 것일까. 표면적인 이유는 '소비자 보호'다. 속내를 들여다 보면 과거 자살보험금 사태와 비교해 보험사들의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한화생명 등 보험사들은 지난해 자살보험금 사태에서 금감원과 맞서다 최고경영자(CEO) 제재 등으로 '혼쭐'이 났다. 그 결과,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금을 줄 필요가 없다는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보험사들은 이사회를 열고 미지급 자살보험금을 지급했다. 이 때문에 이번 즉시연급 미지급 사태와 관련해서도 보험사들이 더 큰 부메랑을 맞기 보다는 금감원의 권고를 수용할 것으로 예측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다. 보험사들은 금감원의 권고를 수용하기 보다는 법정공방을 선택했다. 즉시연금 미지급금을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였다. 불과 1년여 만에 기조가 바뀐 셈이다.
그렇다고 최종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 구성에 큰 변화가 있던 것도 아니다. 일부 사외이사 교체가 있었지만 이사회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칠 수준은 아니다.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모두 사내이사 3명과 사외이사 4명 등 7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돼 있다.
금융업계에선 이 같은 결정이 금감원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는 평가다. 시계추를 올해 초로 돌려보자. 금감원은 금융회사의 이사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경영진에 대한 견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며 이사회 중심의 거버넌스 체계로 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간 대주주나 경영진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크다 보니 일반주주나 금융소비자의 이익이 침해될 우려가 컸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외이사들이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이사회, 특히 사외이사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어쩌면 금감원이 지적한 것과 같이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사외이사들이 거수기 역할만 했다면 금감원의 권고대로 사태가 일단락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사외이사들이 단순 거수기 역할에서 벗어나 경영진을 견제하고 이사회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리고 이 같은 변화를 요구하고 제도적으로 옭아맨 곳이 금감원이다.
"이사회 중심의 거버넌스를 강조했던 것이 오히려 즉시연금 미지급 사태에서 금감원에게 독이 됐다. 금감원이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진 상황이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전직 금감원 부원장의 말을 흘려 들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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