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0년 01월 02일 10: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977년은 할리우드에서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1편(에피소드 4)이 개봉되었던 해다. 한국에서는 국민소득 1000달러, 수출 100억 달러가 달성되었던 해이기도 하다. 그해 6월 25일에 고려정공이 탄생했다. 현대정공의 모태가 되었던 회사다. 현대자동차써비스의 휠, 범퍼 생산 시설과 컨테이너 제작라인을 인수해서 출발했다. 7월에 증자하면서 ‘현대’ 브랜드를 사용해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현대정공으로 사명을 변경했다.초대 대표는 정몽구 회장이었다. 컨테이너 제조사로 성장을 시작했는데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수출 붐을 타고 급성장했다. 1980년에 컨테이너 10만대 생산을 달성했고 이듬해 세계 1위에 올랐다. 1978년에는 디젤전기기관차를 국내 최초로 생산했던 현대차량을 흡수했다. 현대차량은 현재의 현대로템 창원공장이다.
1984년 서산방조제 공사 최종 물막이에 동원되었던 VLCC도 현대정공이 가지고 있던 고선박이다. 현대정공은 1983년 11월에 인천제철로부터 고선박 해체사업장을 인수해서 철강 부족을 보충하고 고철 수출도 시도했었다. 그때 해외에서 수명이 다한 VLCC를 들여다 놓았던 것을 아산이 활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선사업은 저임금 후진국형 사업이어서 1988년에 종료했다.
1986년에 당시 대통령 전용 기차와 철도청장용 기차 다음으로 고급이었던 전설의 새마을호 열차를 선보였고 1989년에 현대헬기 1호기가 출고되었다. 현대정공의 항공사업은 1994년 현대기술개발로 분리된 후 현대우주항공이 되었다가 오늘날의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일부가 된다. KAI는 1999년에 현대, 삼성, 대우의 각 사업 부문이 합쳐져서 탄생한 것이다.
5공 신군부가 취했던 자동차공업통합조치(1981.2.28.조치)가 1987~89년에 해제되어 자동차산업 규제가 완화되자 1991년 9월에 국내 오프로드의 대명사인 4륜구동 갤로퍼를 제작했다. 일본 미쓰비시자동차의 기술을 라이선스로 가지고 왔다. 미쓰비시의 파제로가 원형 모델이다. 차 모양이 성실해 보이는 것이 현대의 캐릭터와 잘 맞았다. 아산이 서산 간척사업을 할 때 타던 차다. 서산농장 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다.
당시 88올림픽의 여파인 저달러, 저금리, 저유가의 이른바 ‘3저’ 경제의 호황으로 레저붐이 일면서 갤로퍼도 같이 호시절을 맞았다. 1992년에 국내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해버렸다. 경쟁업체 쌍용자동차가 큰 타격을 받았는데 쌍용은 독일의 메르세데스-벤츠와의 합작으로 1993년에 무쏘를 출시할 때까지 많이 고전했다. 1992년에는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갤로퍼 대장정’광고가 인기를 끌었다.
현대정공의 갤로퍼는 컨테이너사업을 벗어나려는 사업다각화 전략의 일환이었는데 아산은 당시 정세영 회장이 경영하던 현대차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쟁관계를 만들기 위해 현대정공에 자동차 사업을 허락했다. 현대차는 4륜구동 프로젝트가 없었기도 해서 계열사 간 충돌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판매와 A/S는 역시 정몽구 회장의 현대자동차써비스가 대행했다. 1995년에는 미니밴 싼타모도 나왔다.
아산이 현대정공을 특별히 육성한 이유가 결국 정몽구 회장으로의 자동차업 승계를 염두에 두었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자동차 부문에서 정세영 회장의 공로와 비중, 그리고 나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바로 정몽구 회장에게 자동차를 맡기기는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대정공으로 정몽구 회장에게 기계와 자동차 부문 실적과 내공을 더 쌓을 기회를 만들어 준 셈이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0년 현대그룹의 계열분리 시 자동차 부품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사업을 전반적으로 조정하는 과정에서 현대차와 기아차의 부품 생산 부문을 양도받고 갤로퍼(2003년까지 생산되었다) 등 자동차 생산 부문은 현대차에 넘겼다. 오늘날의 현대차 울산 제5공장이다. 중공업사업 부문은 현대위아로 보냈다. 사명도 현대모비스로 변경하고 유서 깊은 컨테이너사업도 접었다. 현대자동차써비스는 1999년 현대차에 흡수되었다.
그 후 현대모비스는 동력계통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고부가가치 모듈 생산업체로 성장했다. 글로벌 7위다. 2016년에 현대차가 글로벌 3위에 올랐을 때는 4위였다. 아산은 회고록에서 “자동차 부품 공업은 세계의 황금 시장이다.. 나는 자동차 부품 공업으로도 세계 시장 경쟁을 꿈꾸고 있다”고 했다(이 땅에 태어나서, 159). 또, “자동차의 전자화는 장차 자동차 사업의 성패를 가늠할 궁극적 핵심 요소가 될 것이 분명”하다고도 했다(위의 책, 293).
아산의 회고록은 약 20년 전인 1998년에 나온 것이다. 애플의 아이폰이 2007년에 나왔고 지금은 전 세계적인 디지털화 시대다. 현대차도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을 지향하기로 했다. 부품과 모듈의 중요성이 한층 높아졌다. 미래를 예측한 것까지는 아닐 수 있어도 아산의 안목과 결과적인 혜안이 놀랍다. 현대모비스는 미래 전략적인 측면, 기술적인 측면, 지배구조 측면에서 향후 미래 현대자동차그룹의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best clicks
최신뉴스 in 전체기사
-
- [북미 질주하는 현대차]윤승규 기아 부사장 "IRA 폐지, 아직 장담 어렵다"
- [북미 질주하는 현대차]셀카와 주먹인사로 화답, 현대차 첫 외국인 CEO 무뇨스
- [북미 질주하는 현대차]무뇨스 현대차 사장 "미국 투자, 정책 변화 상관없이 지속"
- 수은 공급망 펀드 출자사업 'IMM·한투·코스톤·파라투스' 선정
- 마크 로완 아폴로 회장 "제조업 르네상스 도래, 사모 크레딧 성장 지속"
- [IR Briefing]벡트, 2030년 5000억 매출 목표
- [i-point]'기술 드라이브' 신성이엔지, 올해 특허 취득 11건
- "최고가 거래 싹쓸이, 트로피에셋 자문 역량 '압도적'"
- KCGI대체운용, 투자운용4본부 신설…사세 확장
- 이지스운용, 상장리츠 투자 '그린ON1호' 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