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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사 장기CP와 일괄신고제 무력화 [thebell note]

피혜림 기자공개 2020-09-07 15:03:11

이 기사는 2020년 09월 04일 07:5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장기 기업어음(CP)은 오랫동안 국내 자본시장에서 장·단기 금융시장을 왜곡하는 주범으로 지목받았다. 경제적 실질은 회사채와 다름 없지만 단기물 형태를 띤 탓에 장기물이 적용 받아야 하는 정보비대칭성 해소 절차를 비껴갔기 때문이다.

회사채와 CP간 상이한 신용등급 체계 탓에 투자정보 제공 측면에서도 미흡함을 드러냈다. 회사채 등급은 AAA~D까지 20개로 세분화 됐지만 CP 등급은 A1~D까지 12개 노치(notch)로 구성된다. 장기물이지만 단기신용등급을 받다보니 정확한 신용위험을 가늠하기 어려운 구조다.

시장의 비판에도 여신전문금융회사(여전사)는 적극적으로 장기 CP를 활용했다. 현재 10조원에 육박하는 장기CP 잔량 중 여전사 물량이 60%에 달했다. 전체 CP 잔액(약 64조원)의 10% 가량을 차지한다.

2016년 조달한 CP부터 현재까지 발행물이 쌓이다보니 잔액이 꾸준히 증가했다. CP라고 이름 붙이기조차 애매한 만기 구조의 기업어음이 수년간 모습을 드러냈다. 신한카드와 삼성카드, 롯데카드, 미래에셋캐피탈 등은 CP 잔량의 70% 이상이 장기 기업어음이다.

더욱이 여전사는 일괄신고제도를 통해 회사채 시장에서도 일종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일괄신고제는 채권 발행이 잦은 기업이 수요예측 등의 과정 없이 신속하게 자금조달에 나설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한 제도다. 이를 활용해 회사채를 발행하더라도 편의성 측면에서 장기 CP와 비교해 불리할 게 없다.

여전사 장기 CP는 일괄신고제의 취지도 희석하고 있다. 일괄신고 기업은 금융당국에 향후 일정 기간 내 조달할 금액을 한번에 신고해야 한다. 조달 계획을 밝히면 금융당국이 해당 한도 내에서 발행 편의성을 인정해 주는 형태다.

반면 장기 CP는 일괄신고 발행물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에서 비껴갈 수밖에 없다. '일괄' 신고 이상의 자금 조달에 나서는 수단으로 장기 CP가 활용된다. 사실상 조달 수혜는 누리면서도 일괄신고제를 무력화하는 모습이다.

여전사 측은 투자 저변을 넓히기 위해 장기 CP가 필요하다고 반론한다. 회사채 발행만으로는 흡수할 수 없는 CP 투자 기관으로 수요층을 확대하겠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여전사는 단기금융 시장에서 장기 CP만 찍는 게 아니다. 투자 저변 확대는 전자단기사채(STB)와 '만기 1년 이내'라는 정의를 충족한 CP 발행으로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장기 CP만을 담는 투자 기관이 있다면 그 역시 금융시장 교란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여전사들의 장기 CP 조달 행렬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6월 롯데카드를 시작으로 메리츠캐피탈과 현대커머셜 등이 발행했다. 이달 신한카드도 만기 4년물 장기 CP를 찍는다. 일괄신고제로 조달 편의를 얻은 여전사가 자본시장법상 사각지대까지 활용하는 현상에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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